비디오게임은 잘 알려진 대로 히긴보섬의 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의 존재가 알려지기 전까지 비디오게임의 창시자는 스티브 러셀이었다. 러셀은 PDP-1이라는 컴퓨터로 라는 2인용 슈팅게임을 만들었다. 러셀의 게임은 많은 면에서 히긴보섬의 게임보다 ‘본격적’이었다. 일단 비디오게임이라는 개념을 정립하고 이를 대중화했다는 점에서 는 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는 초기 비디오게임 문화의 정점에 서 있었다.
원래 러셀은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모형기차 동아리의 일원이었다. 모형기차를 움직이고 선로를 이동하며 차단기와 신호등을 통제하는 프로그램과 장치들을 만들어 자랑하는 일이 이 동아리의 주요 활동이었다. 러셀과 그의 동료들은 이러한 동아리 활동 가운데 자연히 ‘컴퓨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 위대한 기계를 가지고 장난감 기차나 조작한다는 게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좀더 놀라운 일을 해보고 싶었다.
러셀은 PDP-1으로 프로그램을 짜기 시작했다. 당시엔 자기디스크나 플래시메모리 같은 기록 장치가 없어서, 프로그램은 종이테이프에 구멍을 뚫어 표시하는 방식으로 기록되었다고 한다. 러셀은 하루 종일 작업한 결과를 연구실 책상 서랍에 넣어두었다. 그러면 동료들은 그의 테이프를 보고 조언을 하거나 직접 손을 보기도 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결과가 였다. 러셀은 자신의 작업 결과를 모두에게 공개했고, 모두는 그의 작업 결과를 더 나은 방향을 이끌기 위해 생각과 능력을 보탰다.
게임이 완성된 이후에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게임의 소스 코드는 모두에게 공개돼 있었고 모두는 게임을 개선하기 위해 여전히 이렇게 저렇게 궁리하고 있었다. 어떤 이는 좀더 현실적인 물리엔진을 추가했고, 어떤 사람은 이 게임을 네트워크를 통해 대전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모두의 생각을 보태고 모두의 노력에 힘입어 게임은 더욱 좋아질 수 있었다. 처음 게임이 생겼을 때의 분위기는 이랬다. 게임은 모두의 힘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모두를 위한 것이었다.
러셀의 작업과 그로부터 비롯된 초기의 비디오게임 문화는 ‘해커’의 전통과 깊은 관련이 있다. 실제로 러셀을 비롯한 초기 비디오게임 제작자들은 모두 해커였으며, 따라서 해커의 전통과 문화에 깊게 공감하고 있었다. 이들에게 게임은, 그리고 그것이 속한 ‘디지털’이라는 기술의 세계는 모두를 위해 열려 있을 때 비로소 그 이념과 이상에 다가갈 수 있는 것이었다. 이러한 생각은 비교적 최근까지 비디오게임 문화의 가장 중요한 미덕이었다.
비디오게임을 시장에 끌어들여 자본에 종속시킨 놀런 부슈넬조차도 이점에서 어떤 ‘흔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자본은 기어코 해커의 전통을 해체하고야 말았다. 해커들의 문화야말로 상품화와 시장 논리에 맞서는 위험한 발상이기 때문이다. 가끔 해커의 망령이 모골을 송연케 하는 놀라운 게임들이 존재하지만 이는 대세가 아니다. 현대의 게임산업에서 해커적 발상은 돌출적이며 위험천만한 행위로 간주되고 있다. 게임 ‘자본’은 게임하는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한다. 자본엔 ‘잉여’가 중요하고 사람에겐 ‘재미’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박근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언론광고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