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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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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하고 급진적인 시간

[KIN] 한 게임 하실래요?/
게임하면 왜 시간이 빨리 가나?
등록 2011-03-18 11:22 수정 2020-05-03 04:26

신선놀음에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할 때 하는 말이다. 옛날에 신선은 바둑을 하며 놀음을 즐겼지만, 오늘날 속인은 게임을 하며 놀이를 즐긴다. 바둑을 하든 게임을 하든, 도낏자루가 썩는 것은 똑같다. 나무꾼은 신선이 선물한 환약 탓에 도낏자루만 썩혔지만, 우리네 인생은 청춘까지 덤으로 썩히기 일쑤다. 어쩌면 그리 절묘한 타이밍에 대작 게임이 쏟아지는지, 인생의 중요한 순간이 닥칠 때마다 발목을 잡는다. 게임을 하는 순간에는 세상 모르고 하다가, 게임을 하고 난 이후에는 세상에서 속절없이 낙오한다. 악마의 묘약이라도 있는 것인지, 왜 그토록 시간이 빨리 가는 것일까.

게임하면 왜 시간이 빨리 가나?

게임하면 왜 시간이 빨리 가나?

반대 방향에서 실마리를 찾아보자. 가장 지루하게 시간이 흘러가는 형식을 떠올려보자는 것. 그것은 비디오예술이다. 예를 들어, 백남준의 이나 앤디 워홀의 같은 작품을 보자. 전자는 초기에 제목만 나올 뿐, 이후 아무것도 영사되지 않는다. 아니다, 아무것도 찍혀 있지 않아서 그렇지, 필름의 물리적 흔적 같은 것이 영사되기는 한다. 워홀의 작품은 전자보다 친절해 보인다. 인물이 있고 사건이 있기 때문이다. 남자 한 명이 등장해, 1시간 동안 무엇인가 줄기차게 먹는다. 조금 낫지만,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다. 뭐랄까, 같은 말을 반복해서 말하는 바람에 정작 그 말은 사라지고 순수한 음만 남는 것처럼, 사건 자체가 소멸해버리기 때문이다. 먹는 게 중요한 게 아닌 것이다. 그러자 남는 것은 사건 없이 흘러가는 시간밖에 없게 된다. 바로 그 순간, 시간 자체가 의식되기 시작한다.

사실, 공간도 시간도 그 자체로 감지하기 어렵다. 전자는 무엇이 채워진 상태(장소)를 통해서, 후자는 무엇이 진행된 상태(서사)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경험한다. 비디오예술은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 서사를 없애거나 죽이거나 꼬아놔서, 익숙한 시간의 흐름을 교란한다. 그리고 시간을 ‘출현’시킨다. 시간의 의식은 비디오예술의 공적인 것이다. 물론, 이것은 전위대의 몫이었고, 할리우드는 정반대의 방식을 개척했다. 잘 만든 영화를 생각해보자. 한정된 시간에 사건을 짜임새 있게 배치해, 관객의 감정을 능수능란하게 조였다 풀었다 한다. 관객은 상영하는 내내 손에 땀을 쥐고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른다. 그러나 잘 만든 영화라도, 순간순간 지루할 때가 있다. 그것은 이완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끝없이 긴장만 추구해서는 보기만 하는 관객이 버텨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면 게임은 어떨까? 비디오예술과 정반대며, 영화보다 급진적이다. 게임은 한순간도 헛되이 쓰지 않고, 촘촘히 사건을 배치해놓는다. 아니, 놀이자가 사건을 ‘수행’해나간다. 게임이 허용하는 지루한 순간조차 놀이자가 집중해서 조작을 해야 넘어간다. 결국, 스스로 게임을 파하고 쉬는 수밖에 없다. 그나마 이것도 혼자 하는 게임일 경우나 해당되지, 여럿이 하는 다중접속게임을 할 때는 마음대로 쉬지도 못한다. 무리를 꾸려야 게임을 속개할 수 있는 탓에, 게임하는 것 이외의 시간도 필요하다. 최소한의 친목이 마련돼야 하기 때문이다. 놀이자가 바쁜 것은 당연하다. 게임의 임무도 해야 하고, 그에 필요한 무리도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흔히 게임을 하느라 시간을 소모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해보면, 한정된 시간을 놀이자만큼 치열하고도 합리적으로 수행하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 시간이 화살처럼 흐르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김상우 기술미학연구회 회원

*‘한 게임 하실래요?’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애독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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