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캐주얼 게임’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는지 모르겠다. 헐렁한 티셔츠에 구멍 난 청바지 차림의 캐릭터가 등장하는 게임이 아니라,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가볍고 단순한 게임들을 말한다. 말하고 보니 좀 우습다. ‘부담없는 게임’이라니, 게임은 원래부터 부담없는 ‘놀이’가 아니던가. 하지만 놀이라도 잘하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다. 잘한다는 건 연타와 콤보를 자유자재로 날리는 고수가 되거나 갈고닦은 유닛 컨트롤로 적진을 유린하는 지존이 되는 것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비디오게임을 하는 사람들도 좋은 게임을 하고 싶다. 멋있는 그래픽을 보고 싶고, 심오한 이야기를 듣고 싶고, 복잡하지만 잘 구성된 시스템을 경험하고 싶다.
세상에 처음 태어날 즈음 비디오게임은 캐주얼이라는 이름조차 무색할 정도로 어설프고 단순했다. 하지만 그건 하드웨어의 문제였지 그것을 창조한 사람들의 수준 때문은 아니었다. 믿기 힘들겠지만 비디오게임의 초기 역사는 위대한 해커들의 역사였으며, 이들을 추종하는 열혈 팬들의 숭배와 광신의 연대기였다. 9편의 타이틀을 모두 끝내고 나서야 그 방대한 세계관을 섭렵할 수 있었던 게리엇의 나 끈질기게 던전 앤드 드래곤의 복잡한 시스템을 고수하던 ‘바이오웨어’의 롤 플레잉 게임(RPG)이 한 사례다. 1960∼70년대 일부 록 음악이 그랬던 것처럼 한때의 비디오게임은 한편으로 대중에게서 유리된 하드코어 게이머를 위한 하드코어 디자이너들의 공간이었다.
대충 스토리만 따라가는 데 50시간, 모든 퀘스트와 미션을 클리어하는 데 100시간 이상 걸리는 비디오게임은 확실히 살짝 맛이 간 사람들이 아니라면 쉽게 덤벼들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웃자고 시작한 게임에 죽자고 달려들어야 한다면 이건 ‘부담’도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하지만 비디오게임은 비교적 최근까지도 이런 하드코어 게이머의 카리스마가 나름 인정되는 공간이었다. 디자이너들은 좀더 높은 난이도와 복잡한 시스템을 추구했고, 게이머들은 그 고통을 기꺼이 즐거움으로 받아들였다.
시간은 흐르고 인심은 변하기 마련이다. 이미 게임의 중심은 캐주얼로 넘어간 지 오래고, 그나마 게이머들의 존경과 선망으로 유지되던 하드코어 게이머들의 공간 역시 점점 줄어들고 있다. 따라서 게임 한 판에 들이는 시간과 비디오게임의 호흡 또한 짧아지고 있다. 하지만 비디오게임 산업은 오히려 호황이다.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으려면 부담을 줄여야 한다. 처음에는 닌텐도 DS나 PSP와 같은 휴대용 게임기와 휴대전화에 들어가는 모바일 게임에서 시작했지만, 이제는 거실 한가운데에 모셔져 있는 콘솔마저도 캐주얼에 침식당하고 말았다.
캐주얼이 대세가 되었다는 건 한편으로 비디오게임 자체가 캐주얼이 돼버렸다는 걸 의미한다. 비디오게임은 어떤 면에서 늘 ‘타자’의 문화였다. 그것은 골방에 박혀 있는 폐인 혹은 오타쿠의 문화로서만 적극적 의미를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비디오게임은 모든 사람들의 손에서 짧고 빠른 리듬에 맞춰 켜졌다 꺼졌다 하기를 반복한다. 댄스가수를 무시하고 록과 메탈만이 음악을 제대로 듣는 유일한 방법인 것처럼 떠들던 재수 없는 친구들처럼, 의 시스템이 아니면 역할수행게임(RPG)이 아닌 것처럼 강변하던 친구들 또한 이제 그 자취가 묘연하다. 대세 캐주얼은 게임하기의 권능을 하드코어 게이머라는 카리스마적 존재들로부터 회수해 우리에게 되돌린다. 본래부터 게임은 모든 사람의 것이었으니까.
박근서 대구가톨릭대 교수·언론광고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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