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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엔 잔인한 문명이란 각성

시드마이어의 문명5
등록 2010-10-20 11:22 수정 2020-05-03 04:26
시드마이어의 문명5

시드마이어의 문명5

‘악명’이 자자한 (이하 )가 드디어 출시됐다. 많은 사람이 이 소식을 듣고서 한탄을 금치 못했다. 순식간에 사람들을 ‘시간여행자’로 탈바꿈시키기 때문이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게임을 한 번 만 더 하다 보면 1시간이 하루가 되고, 한 달이 되고, 급기야 한 해가 지나가기 때문이다. 농담처럼 들리는가. 젊은 남성이 득실거리는 커뮤니티 게시판에 가보라. 거기에 을 시작했다고 글을 올리면, 각종 탄식이 줄을 이을 것이다. 그 가운데 압권은 이거다. “문명하셨습니다.” 마치 ‘운명’처럼 들리는 이 말은 ‘현실에서 운명했다’는 뉘앙스를 풍기며, 의 진가를 한 줄로 요약한다. 그러니 을 잘 아는 사람으로서는 말릴 수밖에. 자기가 빠져 있으면서도 말이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에 빠지는 것일까? 사실, 진행하는 방식만 생각하면 조금은 의외다. 비교적 ‘구식’인 주고받기 방식이기 때문이다. 장기를 생각하면 쉽겠다. 1분 1초 집중과 반응을 요하는 실시간 방식에 비해, 구조상 몰입감은 떨어진다. ‘간격’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간격 때문에, 은 실시간 시뮬레이션 게임과 다른 몰입감을 선사한다.

해답은 각본과 구조에 있다. 예를 들어 공상과학(SF) 세계관을 차용한 는 세계관을 몰라도 게임을 할 수 있다. 전투의 전술인 ‘빌드’만 잘 짜면 그만이다. 세계관 때문에 몰입이 방해받는 게임도 있다. 연작은 오랫동안 미소 냉전을 배경으로 삼다가, ‘제네럴’ 판본에 이르러 중국과 이슬람을 등장시키는 바람에 팬들의 원성을 샀을 뿐만 아니라, 자기네 게임의 전통과 균형까지 무너뜨렸다.

반면에 의 목적은 ‘세계’다. 도끼로 싸우는 원시시대부터 우주선을 날리는 과학시대까지 스스로 문명을 구축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기만의 ‘이데올로기’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 ‘간격’은 여기서 효과를 발휘한다. 모든 나라를 침략해 세계를 지배할 것인가, 과학문명을 최대한 구축해 우주로 진출할 것인가, 선진문화를 구축해 행복한 사회를 건설할 것인가 등 은 몇 가지 행로를 제시한다. 이에 따라 사람들은 자기가 어떤 길을 걸을지 하나하나 심사숙고해 선택한다.

자, 이렇게 보면 문명만큼 윤리적이고 교육적인 게임은 없는 것 같다. 자율적으로 선택해 자신의 세계를 일궈가니까. 그러나 명심하자. 지금 하고 있는 건 ‘게임’이라는 것을.

게임은 알고서 꾸는 꿈이다. 물론 다른 점도 있다. 보통의 꿈은 선택도 통제도 못하지만, 게임이란 꿈은 자신의 뜻대로다. 또한 닮은 점도 있다. 게임이란 꿈에서도 현실을 넘어서 ‘쾌락의 원칙’이 승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무엇인가 기묘하게 엉켜든다. 현실을 넘어서는 ‘쾌락’의 잠재력이 소진된 것일까. 이란 게임에서 쾌락의 원칙은 현실의 원칙과 똑같기 때문이다. 어떤 목표를 설정하든 결국 최단 시간에 최대 효율을 추구하는 ‘생산력 싸움’이란 것. 전쟁만 그런 게 아니라 행복도 그렇다. 몇 가지 과제를 완수해 문화수치를 확보하면 간단히 끝난다. 본질은 그대로인 것이다. 결국 과정과 수단에 대한 성찰이 없는 도구적 이성의 왕국이란 얘기다.

은 차디찬 현실을 위해서 윤리의 가면을 친절하게 벗겨준다. 세상이란 그런 곳임을 ‘스스로’ 인정하게 만든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시켜도, 다른 나라를 약탈해도, 어쩔 수 없는 ‘이유’를 입에 떠먹여준다. 인류는 ‘문명’에서도 게임에서도 살육과 약탈을 일삼는 ‘철기시대’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김상우 기술미학연구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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