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 선수가 문화의 벽을 넘었다면, 이승훈 선수는 인종의 벽을 넘었다. 아시아인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던 스피드스케이팅 장거리 종목에서, 남자 선수가 그것도 쇼트트랙에서 ‘방금’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향한 선수가 단숨에 장벽을 넘고 금메달을 획득한 것은 놀랍고 놀라운 일이다. 그렇게 인종의 벽을 넘어서는 선수들 덕분에 그들만의 올림픽이었던 겨울올림픽이 모두의 올림픽이 되어가고 있다. 편집자</font>
피겨스케이팅은 피겨의 여제 카타리나 비트와 함께 한반도에 도착했다. 1985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세계피겨선수권대회 여자 싱글에서 카타리나 비트가 경기를 마치고 한국에 왔다. 비트가 쇼에서 마이클 잭슨의 에 맞춰 은반 위에서 문워크를 선보였을 때, 그것은 대개의 한국인에게 피겨에 대한 시원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저게 정말 스포츠 맞아? 의문을 표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정말 저런 스포츠도 있구나, 놀라는 이들이 많았다.
얼마나 오래 들었나,“출전했지만 아쉽게…”그리고 이따금 피겨의 영웅들은 한국의 안방에 찾아왔다. 겨울올림픽이 끝나면 다른 종목은 몰라도, 피겨는 비록 심야의 녹화방송일지라도 한국 텔레비전에도 나왔다. 애국가가 울리기 전에 어쩌다 마추친 그대들의 연기는 밀려오던 졸음마저 확 쫓아버릴 정도였다. 남자 싱글도, 페어 경기도 경기를 볼 때면 황홀경에 빠졌지만, 무엇보다 꽃 중의 꽃은 여자 싱글 경기였다. 그래서 그 남자 선수들의 이름은 잊었지만, 그 여성들의 이름은 잊히지 않았다. 옥사나 바이울, 이토 미도리, 크리스티 야마구치, 미셸 콴, 타라 리핀스키, 이리나 슬루츠카야, 사샤 코언, 아라카와 시즈오카…. 이렇게 올림픽의 은반을 수놓은 여성들의 이름은 4년에 한 번씩 보아도 쉽게 잊히지 않았다. 올림픽 피겨 여자 싱글 우승자의 이름은 세계인이 알게 된다는 말이 허언이 아니다.
한국 선수가 올림픽에 출전했단 소식이 들렸다. 그러나 중계를 볼 때면, 언제나 한국 해설자는 말했다. 한국의 아무개 선수가 출전했지만, 아쉽게도 프리 경기에 출전하지는 못했다. 올림픽에 출전해도 쇼트 프로그램 24위 안에 들어야 프리 경기 출전권을 준다. 그래서 언제나 “아쉽게도” 한국 선수가 프리를 뛰는 모습은 보기 힘들었다. 메달권, 그것은 언감생심에 가까웠다. 한국 선수가 되겠어, 저렇게 되려면 저변도 넓어야 하고 문화적 토양도 있어야 한다는데, 언감생심 한국 선수가 피겨에서 메달 경쟁을 벌이는 모습은 상상도 하지 않았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일본이 어떤 종목의 강국으로 떠오르면, 유사한 체격 조건의 한국도 그 기술을 벤치마킹해 짧으면 5년, 길면 10년의 시차를 두고 그 종목의 세계적 강자로 떠오르는 경우가 있었다. 멀리는 여자 배구가 그러했고, 가깝게는 스피드스케이팅이 그러하다. 그러나… 피겨만은 그렇게 되리란 기대를 하지 않았다. 벽은 높고도 높았다.
기습처럼 김연아가 찾아왔다. 2006년 겨울이었다.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우승했단 소식이 들렸다. 중계 화면을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김연아 선수가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을 때도, 의심은 걷히지 않았다. 미디어가 아무리 저렇게 떠들어도, 사실 주니어에서 우승한 선수가 시니어에서 정상에 오를 확률은 높지 않다고, 피겨를 보아온 사람으로 속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파이널 우승이라니, 그러나 그것은 기적의 시작에 불과했다. 다음해도 김연아는 그랑프리 우승을 거머쥐었고,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잇따라 동메달을 따냈다. 그리고 마침내 2009년 겨울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시상대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다. 그래도 의심에 의심은 걷히지 않았다. 설마… 올림픽까지?
잠시만, 그러는 사이에 김연아 열풍이 불었다. 세계적인 매니지먼트사와 계약을 했고, 텔레비전만 켜면 광고에 김연아가 나왔다. 우유로 시작해 은행과 자동차를 거쳐 에어컨과 화장품…. 어느새 그는 올림픽 참가자 중에 가장 높은 수입을 올리는 선수가 되었다. 그렇게 그는 한국 자본주의의 은유가 되었다. 선진국이 되었단 자부심을 서둘러 ‘고급’ 스포츠에서 최고가 되는 것으로 확인하고 싶은, 한국 사회 욕망의 아이콘이 되었다. 더구나 라이벌은 일본인 선수. 게다가 한국을 그 대열에 끼워주지 않으려고 한다는 의심을 받는 서구인 심판이 있었다. 김연아의 금메달은 일종의 한국 사회의 인정투쟁 같은 것이었다. 세계에서 일류로 인정받고 싶은 인정투쟁 말이다. 그래서 승냥이들이 외국 방송의 중계 영상을 퍼오며 김연아가 거기서도 최고로 인정받는 것을 증명하고, ‘유나킴’ 대신 ‘김연아’로 불린다는 사실에 유독 자긍심을 느끼는 이유도 김연아를 통한 인정투쟁의 맥락과 닿아 있다.
됐고, 그렇다고 그것이 김연아의 잘못은 아니다. 단지 그는 자신의 목표를 향해 달렸을 뿐. 오히려 놀라운 것은 하고 싶은 게 너무도 많았을 10대가 한 치의 흔들림 없이 토론토의 칩거 생활을 묵묵히 받아들였단 사실이다. 사실 김연아는 2009년 세계선수권 우승 등으로 이미 물질적으로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2010년 시즌에도 갈수록 세계 최고점을 경신하는 모습에서, 묵묵한 구도자처럼 자신의 길을 가는 모습엔 뭐랄까 비범한 기운이 있었다. 그렇게 개천에서 용이 나기 어려운 시절에, 서민 가정 출신의 여성이 스스로의 힘으로 성공 가도를 개척하는 모습에 응원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성공의 대가도 부익부 빈익빈, 가장 성공한 자에게 광고도 수입도 몰아주는 한국에서 김연아는 수혜자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응원을 멈출 수는 없었다.
‘대인배 김슨생’. 김연아 팬의 이름인 ‘승냥이’들은 피겨 여왕을 그렇게 부른다. 이들은 ‘김연아 갤러리’라는 성소에 모여 “연아느님, 연렐루야”를 외치고, 일부는 올림픽을 앞두고는 “또한 연아와 함께”로 끝나는 연아의 기도문을 외운다. 심지어 여기엔 아침마다 금메달 기원 기도를 올렸다는 중년 여성도 적잖다. 아르헨티나에 마라도나교가 있다면, 조금 과장하면 한국엔 김연아교가 생겼다. 농담을 더하면, 지금 여기에 박지성교, 박태환교는 없지만 김연아교는 있다. 이렇게 김연아 팬덤은 유독 뜨겁다. 대인배 별명에서 드러나듯,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김연아의 태도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 올림픽에서 증명됐듯 라이벌의 완벽한 연기 뒤에도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보는 이를 ‘떡실신’하게 만드는 강심장에, 타인과 경쟁이 아니라 자신에게 집중하는 모습에 팬들은 ‘넘어진다’. 이렇게 김연아 팬덤엔 스포츠 선수의 기능을 넘어선 인간적 태도의 코드가 있다. 그래서 아사다 마오도 응원하고, 미국을 “쌀국”으로 부르며, “삼성과 연아의 윈윈 관계”를 모르지 않는 개념 승냥이도 ‘승냥승냥’ 한다.
비록 서구 중심이긴 하지만, 김연아는 지구촌 곳곳에 중계되는 스포츠 이벤트에서 한국인 최초로 주인공이 되었다. 지금 한국이 원하는 그것을 그는 주었다. 일본 〈NHK〉 해설자는 세계 기록을 경신한 김연아의 올림픽 프리 경기 점수가 나오자 “아무도 가보지 못한 곳까지 갔다”고 했다. 그렇게 한국의 팬들은 김연아와 함께 서너 해 동안 이전에 누리지 못한 기쁨을 누렸다. 아나운서는 김연아 선수의 쇼트 경기가 끝나자 “비현실”(unreal)이라고 말했다. 단순히 그날의 연기만이 아니라 김연아와 함께한 시간은 정말로 꿈같았다. 다시 오지 못할지도 모르는 꿈 말이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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