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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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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살 시청의 참담한 뒤안길

문화재위의 보존권고를 정면으로 무시한 서울시,
새로 지어질 건물을 둘러싼 욕망들
등록 2008-09-10 14:07 수정 2020-05-03 04:25

82살 먹은 옛 서울시청사는 은퇴 뒤 참담한 노후를 맞았다. 자신을 둥지 삼았던 시청 공무원들의 포클레인에 척추였던 태평홀이 깨어져나갔다. 사적 가지정으로 추가 철거는 막았지만, 건물은 산송장처럼 변했다. 서울시장과 관료들이 민원업자로 돌변한 8월26일 벼락 철거 뒤 월북작가 박태원(1909~1987)의 을 펼쳐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근대 건축사를 말할라치면 감초처럼 꺼내드는 소설. 작가는 1930년대 당시 경성부청이던 시청 앞에서 펼쳐진 룸펜 구보의 산책길을 이렇게 써놓았다.

82살 시청의 참담한 뒤안길

82살 시청의 참담한 뒤안길

“어디로- 그는 우선 부청 쪽으로 향하여 걸으며 아무튼 벗의 얼굴이 보고 싶다, 생각하였다… 어디로- 구보는 한길 위에 서서, 넓은 마당 건너 대한문을 바라본다… 그 빈약한, 너무나 빈약한 옛 궁전은, 역시 사람의 마음을 우울하게 하여주는 것임이 틀림없었다….”

구보는 도시 가로 확장으로 궁역이 쪼그라들고 전각도 헐린 덕수궁을 일제 통치의 위세 등등한 상징이던 부청에서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은 곧 망국의 아픔을 지닌 작가의 시선이었다. 문학평론가인 최원식 인하대 교수는 평론집 (창비, 2001)에서 “경운궁이란 이름마저 빼앗긴 대한제국의 중심 궁전을 경성부청 쪽에서 바라보는 그 우울한 각도는 이 작품을 해석하는 열쇠”라고 뜯어보았다. 박태원은 시청사가 70여 년 뒤 거꾸로 우울한 각도의 시선에 노출되는 대상물로 뒤바뀌리라는 것을 예감했을까.

시청사 무단 철거는 공공기관이 문화재위의 권위에 반기를 든 첫 선례라는 점이 두렵다. 국민들은 문화유산을 지키는 최후 보루인 문화재위를 제쳐놓고 공공기관이 이해관계에 따라 문화재를 철거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서울시는 문화재청 심의를 받지 않고 지난 5월 태평홀을 허물고 옛 청사 외벽을 해체하는 콘셉트의 새 청사 공사를 시작했다. 설계자 유걸씨는 “옛 청사는 새 시대에 맞는 효용가치를 지녀야 하며 그것이 보존의 길”이라고 리모델링론을 펼쳤다. 청사의 외관 보전 방식을 둘러싼 건축계와 문화재계 사이의 논쟁과 담론이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현장의 건축동네는 침묵했다. 논의가 숙성될 짬도 주지않고 시청 쪽은 자의적 철거를 강행했다. 태평홀은 일제시대 부회가, 해방 뒤 서울시의회와 시장 주재 회의가 열렸던 곳이다. 일제의 경성 시가지 확장안을 비롯해 전쟁 뒤 수도 복구 및 영동 개발안, 지하철 건설 등 숱한 역사적 도시계획들이 이 공간에서 태어났다. 카이저수염의 김상돈 전 시장이 “서울시는 복마전”이란 사자후를 토했고, 박정희 쿠데타군이 몰려와 민선 시정을 접수했던 현장이다. 이런 역사적 내력이 넘쳐나는 공간을 명품 문화도시의 이름으로 지워버리려 한 오세훈 시장의 두 얼굴을 시민들은 청사를 볼 때마다 기억하게 될 것이다.

태평홀 철거라는 치명적 쟁점이 있었는데도, 시청은 5월 신청사 착공을 강행했다. 문화재위가 2006년 6월 이래 신청사 신축안의 심의를 위해 문화재청 및 서울시청과 2년 이상 논의를 거듭해왔는데도, 이런 신청사의 문제점을 철거 때까지 용인했다는 건 납득이 가지 않는다. 문화재위는 항아리형, 태극형 등의 고층 신청사안을 심의하면서 거듭 퇴짜를 놓았다. 그러다 지난해 3월16일 시쪽의 네 번째 신청사안을 유례없이 조건부로 통과시켰다. 89.2m로 설계된 당시 신청사안의 높이를 한 층 정도 낮추고 옛 청사와 일정한 공간 거리를 확보하는 조건이었다. 당시 언론들은 통과의 배경으로 광화문과 서울성곽 복원에 시쪽 협조가 필요했던 유홍준 청장이 오 시장과 긴밀한 사전 협의를 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는 청장이 심의 나흘 전 위원들과 만찬하면서 “잘 부탁한다”는 회유성 압력을 넣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일부 시민단체들은 “위원들이 압박성 회유를 받고 안을 통과시켰다’고 비난했다. 결국 관용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오 시장이 통과된 안을 디자인이 좋지 않다고 틀었고, 서울시는 지난 2월 4명의 건축가를 지명해 다시 설계 공모를 했다. 그 결과 문화재위 권고와 달리 태평홀 철거를 콘셉트에 넣은 유걸씨의 13층짜리 설계안이 당선됐다. 지난 5월 문화재위 심의를 받지 않고 신청사를 착공하면서 갈등이 심화됐고 철거까지 이른 것이다.

사후약방문격이지만, 조건부 통과는 시쪽의 명분만 세워준 격이 되지 않았느냐는 비판이 나온다. 문화재위는 이후 태평홀 등 청사의 주요 부분 보존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신청사 설계 공모 심사에 필수 지침으로 관철시켜야 했는데, 그 부분에서 통찰력의 한계를 드러냈다는 지적이다. 건축사가인 안창모 교수(경기대)는 “조건부 통과 당시 덕수궁 앞 고층 청사 높이 규제가 핵심 관건이었고, 태평홀 등의 시설 철거는 이후 설계 공모 과정에서도 쟁점이 되지 못했다”며 “문화재위가 앞날의 갈등을 제대로 내다보지 못했던 셈”이라고 자탄했다.

만신창이 시청사는 앞으로 정식 사적 지정을 위한 타당성 검토를 받는다. 그 수순이 한 치라도 어긋나면, 300건 넘는 등록문화재의 운명은 바람 앞 등불이 된다. 문화재위원들은 시청사 무단 철거의 전말이 명백히 그 불길한 전조였다는 것을 모를리 없을 것이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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