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일흔일곱 살 남자, 그는 다리가 잘린 채 누워 있다. 지난주에 왼쪽 다리 절반 정도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았다. 당뇨병을 오래 앓아왔는데 1년 이상 약을 안 먹고 그냥 지냈다고 한다. 응급실 도착 당시 혈당이 500까지 치솟았다. 다리는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발가락과 발등이 검게 부풀어올랐고 발목에서는 피부가 녹아 흘러내리고 있었다. 더 무서운 것은 열이 오르며 전신에서 패혈증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시간이 별로 없다. 당뇨가 심하고 쇠약해진 노인이 패혈증을 견뎌내기란 정말 위태롭거나 지난한 길이다.
남자는 마누라부터 찾았다. 부인도 몸이 안 좋아 등을 구부정하게 하고 다닌다. 부랴사랴 둘째 사위가 달려오고 큰딸이 경남 진주에서 올라왔다. 여섯 살 난 손주도 엄마 손을 잡고 따라왔다. 가족들은 상황을 이해했다. 생명을 구하려면 다리를 잘라야 한다는. 하지만 정작 환자 본인은 이대로 죽어도 좋으니 다리를 자르지 않겠다고 한다. 남자의 눈빛에서 단호함을 읽었다. 말로는 설득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남자에게 일어나 바닥에 두 발을 딛고 서보시라고 했다. 지금 두 발로 혼자 설 수 있다면 자르지 않아도 좋다고. 남자는 양쪽에서 부축을 받아 있는 힘을 다해 일어섰다. “이제 손을 놓을 겁니다. 혼자 서 있어보세요.” 그러나 남자는 버티지 못하고 이내 주저앉았다. 이제 자신의 상황을 인식하고 받아들인다. 그리고 수술에 동의한다. 남자의 얼굴에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누군들 다리를 자르고 싶으랴? 자를 수밖에 없을 때 의사도 속에선 울고 있다.
수술을 마치자 열이 떨어지고 빠른 회복을 보였다.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겼다. 혼자 앉는 연습을 하고 누워서 다리 들기 연습을 하고 휠체어 타고 병원 내부를 산책한다. “장인 어르신이 해병대 출신이시라 고집이 엄청 세세요. 대장암 수술 받으실 때도 안 받겠다고 얼마나 난리치셨는지 몰라요.” 다리의 상처를 소독하다가 사위가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귀신 잡는 해병이셨다고 들었어요. 역시 회복이 빠르십니다.” 순간 남자의 눈에서 자부심이 반짝 빛난다. “수영 잘하시겠어요.” “웬걸요. 이이 수영 하나도 못해요.” 곁에서 할머니가 깔깔 웃는다. “수영 못해도 해병대 잘할 수 있어.” 할아버지가 힘주어 말한다. 두 사람의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남자는 10년 전 대장암 수술을 받은 이후 배에 구멍을 내서 변을 익숙하게 빼고 있다. 이제 남자에게는 항문도 없고 왼쪽 다리도 반절밖에 없다. 하지만 다리 없이 걷는 일, 이마저도 익숙해질 것이다. 그러고도 남자는 거뜬히 존재할 것이다.
일흔일곱 살 또 다른 동갑내기 남자, 10여 년 전 퇴직하고부터 택시 운전을 시작했다. 언제부턴가 운전석에 오래 앉았다가 일어나려 할 때면 힘이 들었다. 엉덩이가 아프고 다리가 저리기도 하고 일어서서도 바로 걸을 수 없었다. 척추관협착증 초기 증세다. 약을 안 먹고 버티다 최근에는 가끔 먹기 시작했다. 센 약은 운전에 방해되어 먹지 않는다. 남자는 착잡한 얼굴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젊어서 사르트르의 책을 보다가 ‘인간은 걸을 수 있을 때까지 존재한다’는 구절을 읽고 ‘이건 아니지’ 했어요. 그런데 나이를 먹어 잘 걷지 못할 것 같은 일을 직접 겪으니까, ‘아아, 사르트르가 이래서 그 말을 했겠구나’ 이제는 수긍이 갑니다.” 남자는 깊이 한숨을 내쉰다. 용기를 주고 싶다. “인간이 몸을 움직여야 산다는 것은 맞습니다. 한데 지금은 걸을 수 없어도 인간답게 충분히 존재할 수 있는 시대라고 봅니다. 그러니 너무 미리 걱정하지 마세요.”
인간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몸이 죽기도 전에 겁에 질려 지레 마음부터 죽는다면 너무나 안타깝다. 두 다리가 없어도 의족을 차고 달리는 육상선수 오스카 피스토리우스가 있고 두 발이 없이도 미래의 축구선수에 도전하는 소년 가브리엘 무니스가 있다. 네 손가락밖에 없는 피아니스트 이희아가 있고 또한 그녀의 용기를 이어받아 절단한 팔꿈치로 피아노 연주에 도전하는 최혜연이 있다. 아마도 인간존재의 한계는 자기 자신만이 답할 수 있는 문제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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