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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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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와 D 사이에는 C가 있다

탄생(birth)과 죽음(death) 사이에는 수많은 선택(choice)이… 어떤 삶을 살겠는가
등록 2013-03-23 11:09 수정 2020-05-03 04:27

2010년 2월 어느 날 1면에는 눈길을 끄는 두 가지 톱뉴스가 실렸다. 하나는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미국이 첫 금메달을 땄다는 소식이고, 다른 하나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과 현지인 사이에 포격 사건이 일어났는데 최소 10여 명이 죽거나 다쳤다는 소식이었다. 한쪽에는 원색의 스키복을 입은 젊은 노르딕스키 선수가 환호를 받으며 골인하는 사진이 실렸고, 다른 한쪽에는 완전군장을 한 젊은 군인이 모래 방벽 뒤에서 총구를 겨누는 사진이 클로즈업돼 있었다. 스키 선수와 군인, 그들은 모두 동년배의 동시대인이다. 하지만 누군가 금메달을 목에 거는 날 다른 누군가는 포탄에 맞아 피를 흘리고 있었다. 두 젊은이의 같은 날 다른 삶이 하나의 신문지면에서 너무나 선명한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더욱 극명하다. 사하라 코끼리를 취재한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본 장면이다. 생존 환경이 비교적 좋은 남쪽 사바나 지대에서 태어난 코끼리는 드넓게 펼쳐진 초원에서 마음껏 풀을 뜯어먹고 물장난을 치며 엄마·아빠 코끼리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한편 같은 날 더 건조하고 혹독한 북쪽 사막에서 태어난 코끼리는 처음부터 끝없는 굶주림에 신음했고, 급기야 물을 찾아 이곳저곳 사막을 건너던 중 푹 쓰러져 그 비쩍 마른 몸을 다시는 일으키지 못한다.

김현정 제공

김현정 제공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진료실을 다녀간다. 저마다 아픈 사연을 안고 와 무엇인가 필요한 것을 얻어간다. 다짜고짜 약을 달라는 사람도 있고 의뢰서나 진단서를 써달라는 사람도 있다. 조근조근 설명 듣기를 원하는 사람도 있고 다른 병원에서 미처 찾지 못한 희한하고 신통방통한 해결책을 보여달라는 사람도 있다.

57살 남자, 광범위 회전근개 파열을 진단받았다. 지난해 산악자전거를 타다가 세게 넘어졌다. 얼마 전 할리데이비슨 동호인들끼리 미국 대륙 횡단을 다녀왔는데 그때 또 한 번 모질게 넘어졌다. 그때부터 팔을 위로 쳐들지 못한다. 스포츠 애호가라고 한다.

또 다른 57살 남자, 광범위 회전근개 파열을 진단받았다. 지난해 아는 형한테 몹시 맞았다. 얼마 전 시설에 사는 사람들에게 또 한 번 모질게 맞았다. 그때부터 팔을 쳐들지 못한다. 알코올 애호가라고 한다.

46살 여자, 미국 보스턴에서 이삿짐이 도착해서 정리를 좀 했더니 어깨가 아프고 목이 결린다. 병력을 살펴보니 ‘골퍼스 엘보’ 때문에 여러 차례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 평소 허리도 안 좋고 가끔 무릎도 아프다고 한다.

또 다른 46살 여자, 매일 12시간씩 미싱을 한다. 30년째다. 어깨가 아프고 목이 결린다. 병력을 살펴보니 미싱 바늘에 손가락을 찔려 여러 차례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 평소 허리도 안 좋고 가끔 무릎도 아프다고 한다.

세계는 편평하지 않다. 자연은 결코 우리를 편평하게 대하지 않는다. 이 세상 누구도 부모를 고르거나 자기가 원하는 모습을 택해 태어나진 않는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우리에게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바로 오늘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거다.

여기 37살 동년배의 동시대인 두 사람(사진)이 있다. 한쪽은 척추 곡선이 날렵하게 살아 있지만, 다른 한쪽은 배가 나오고 여기저기 살이 붙고 척추 곡선이 뻣뻣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오늘 어떤 음식을 얼마나 먹었는지, 얼마나 몸을 움직이고 운동을 했는지, 얼마나 즐겁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았는지, 그런 하루하루가 모이고 쌓여서 그 결과가 나의 현재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10년 뒤, 20년 뒤의 내 모습을 만들어갈 것이다.

알파벳 b와 d 사이에 무엇이 있는가? 무수한 c가 있다고 사르트르는 말했다. 탄생(birth)과 죽음(death) 사이에는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있는 무수한 선택(choice)이 있다. 어느 삶을 살겠는가? 전적으로 내 자신의 선택이다.

서울시립동부병원 정형외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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