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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쓰리라, 손바닥을 활짝 펴고

손바닥문학상 수상자들 수상 이후 글쓰기를 어떻게 이어갔나
등록 2018-10-13 17:41 수정 2020-05-03 04:29
제1회 손바닥문학상 대상 수상자 신수원씨. 류우종 기자

제1회 손바닥문학상 대상 수상자 신수원씨. 류우종 기자

“손바닥문학상이 벌써 10회예요?”

10월8일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에서 만난 신수원(55)씨가 ‘놀람 반 반가움 반’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신씨는 제1회 손바닥문학상 대상 수상자다. 여성 노동자의 고공농성을 다룬 소설 ‘오리 날다’로 상을 받았다. 이 작품은 제786호 표지를 장식했다. 이를 계기로 2013년에는 ‘오리 날다’ 등 단편소설 9편을 묶어 소설집 (아고라 펴냄)를 펴냈다.

신씨의 글은 노동과 투쟁의 현장에서 나고 자랐다. 17살에 서울 구로구 구로공단에 있는 전자제품 조립 공장에 취직했다. 그곳에서 노동자가 돼 노동조합 활동을 했다. “내가 일한 곳은 장기 투쟁 사업장이었다. 투쟁이 6~7년 정도로 길어지니 그것을 기록해야 했다. 파업 일지를 쓰고 노조 활동 홍보물을 만들었다.” 그래서 부당해고 된 뒤 철탑 위에서 농성하는 노동자의 이야기 ‘오리 날다’는 그가 보고 경험한 것들을 이야기에 녹여내 생동감 넘치는 작품으로 탄생했다.

손바닥문학상을 받은 40대를 지나 50대 중반에 접어든 신씨는 ‘스토리텔러 느리’라는 이름으로 ‘치유의 글쓰기 강좌’를 한다. “일상에서 글과 자유롭게 만나고 글을 쓰는 경험에 관해 이야기한다. 누구에게나 쉼이 되는 글쓰기를 위해 수업한다. 이렇게 글을 매개로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소통하고 있다. 새로운 삶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글 쓰는 노동자로 사는 삶</font></font>
제5회 손바닥문학상 가작 수상자 이슬아씨. 류우종 기자

제5회 손바닥문학상 가작 수상자 이슬아씨. 류우종 기자

2010년 제2회 손바닥문학상 작은 손바닥 부문 가작 수상자인 희정은 ‘기록 노동자’로 글을 쓰고 있다. 대학 청소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기 위해 힘든 싸움을 벌이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그들의 투쟁을 글로 남겼다. 그게 기록 노동의 시작이었다. 그 후 반도체 직업병 노동자들을 만났고, 일하다 다치고 병든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졌다. 그 기록을 모아 책 (2011), (2014) 등을 펴냈다.

희정씨는 손바닥문학상을 받은 뒤 필자로도 활동했다. ‘2011 만인보’라는 꼭지를 맡아 다양한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만인보’라는 이름처럼 다양한 분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다양한 목소리를 글로 적는 훈련을 한 그 힘으로 기록 노동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다.” 그때 만난 디자인 작업을 하는 장애인, 노숙인 지원을 하는 활동가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세상에서 소외된 목소리를 기록하는 희정씨는 “논픽션을 다루는 공모전이 별로 없는데 손바닥문학상은 픽션과 함께 논픽션도 공모하는 상이라 더욱 의미가 있다”고 했다. 그는 “손바닥문학상처럼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긴 논픽션 글 공모가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제5회 손바닥문학상 가작 수상자 이슬아(26)씨는 ‘연재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글을 계속 쓴다. 올해는 학자금 대출 2500만원을 갚기 위해 시작한 ‘일간 이슬아’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월 구독료 1만원을 받고 평일 매일 한 편의 수필을 구독자의 전자우편으로 직접 발송했다. 페이스북과 블로그, 인스타그램으로 이씨의 창작물을 지켜본 이들 중 대부분이 구독자가 되어주었다.

이씨는 손바닥문학상의 “황홀한 응원” 덕분에 계속 글을 쓸 수 있었다고 한다. 이씨는 자신의 누드모델 경험을 담은 논픽션 ‘상인들’ 이야기를 세상에 펼쳐 보였다. “처음 공모전에 낸 작품이 상을 받아 너무 기뻤다. 글 쓰는 걸 쭉 좋아해도 된다고 확인받는 계기였다.”

여러 문학 공모전 중에서 손바닥문학상에 응모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씨는 “문학상이라는 말에는 위엄과 권위가 느껴진다. 그런데 그 앞에 ‘손바닥’이라는 소박한 단어가 붙으니 ‘나도 도전할 수 있구나’라는 용기가 났다. 내가 쓰려는 이야기가 너무 작고 겨우 내 몸 이야기밖에 못 쓰는 터라 자신이 없었는데, 손바닥문학상이라는 이름이 비교적 문턱이 낮고 모두에게 열려 있는 느낌이었다.”

이씨는 글쓰기를 하며 자신의 세계가 확장되는 느낌이란다. “주어가 나인 경우만 쓰다가 이제 다른 사람이 주어인 글을 쓴다. 그런 글을 쓰려면 타인의 입장에서 살아보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는 왜 이런 행동을 할까 고민도 하게 된다.”

손바닥문학상 수상을 경력으로 글쓰기 수업도 시작했다. 그 덕에 초등학생부터 어른들까지 다양한 세대의 글을 만났다. “초등학생들 글에는 기발하고 참신한 발상이 담겨 있다. 하지만 중·고등학교에 올라가면 글이 경직된다. 평범하고 딱딱하다. 그걸 풀어주고 솔직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한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문장이 얼마나 폭력적인지도 이야기한다.”

이씨는 올해 책 출간 작업을 하느라 바쁘게 보냈다. 10월에 만화와 에세이를 담은 (문학동네 펴냄)와 ‘일간 이슬아’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쓴 글을 모은 독립출판물을 펴낼 예정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오래된 꿈이 다시 꿈틀거렸다 </font></font>
손바닥문학상 수상자들 김소윤씨, 이혜재씨, 김영석씨(왼쪽부터). 김소윤 제공/ 이혜재 제공/ 김영석 제공

손바닥문학상 수상자들 김소윤씨, 이혜재씨, 김영석씨(왼쪽부터). 김소윤 제공/ 이혜재 제공/ 김영석 제공

일과 육아를 함께 해나가던 김소윤(38)씨는 잊고 지냈던 창작의 꿈을 떠올렸다. 손바닥문학상 수상이 그 계기가 됐다. 김씨는 2010년 제2회 손바닥문학상 큰 손바닥 부문 대상 수상자다. 손바닥문학상 이외에도 잇따라 당선의 기쁨을 누렸다. 2010년 신춘문예에 등단하고, 2011년에는 제1회 자음과모음 ‘나는 작가다’에 장편소설 가 당선됐다. 올해에는 제주4·3평화문학상 소설 부문에 당선됐다.

문예창작을 전공한 김씨는 대학 졸업 뒤 8년이라는 시간 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일하랴 두 아이 키우랴 하루 24시간이 모자랐다. 해가 갈수록 창작에 대한 목마름이 심해졌다. “당시 어떤 책에서 ‘인생의 키워드를 잡아서 노력한 사람은 실패할 수 없다’라는 구절을 봤다. 그걸 보고 다시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에 몇 줄이라도 쓰겠다고 마음먹었다. 두 줄, 석 줄, 넉 줄… 그렇게 쓴 글이 모여 한 편의 소설이 됐다.”

김씨는 “손바닥문학상에 응모할 때에는 쓰고 싶다는 마음만 앞섰다면, 지금은 쓰기보다 많이 읽는다”고 했다. 조급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더 잘 쓰기 위해 읽는 것이다. 이제 글쓰기는 고통이라기보다는 즐거운 작업이다. 글은 평생 함께할 동반자 같은 느낌이다.

김씨는 “매일 조금씩 글을 쓰고 그걸 검토하면서 탈고에 이르는 기쁨이 나에게는 행복이자 삶의 원천”이라며 “앞으로도 계속 작품 활동을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워킹맘’ 이혜재(36)씨 역시 ‘손바닥’을 통해 “오래된 꿈이 다시 꿈틀거렸”단다. 이씨는 2017년 제9회 손바닥문학상 가작 수상자다. “손바닥문학상은 내 일상의 전환점이 됐다. 일하며 아이 키우며 글쓰기와 점점 멀어졌다. 자신감이 없어지고 불안했다. 그때 손바닥문학상 수상으로 큰 힘을 얻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관점을 </font></font>

이씨는 지난해 워킹맘의 불안한 일상을 그린 ‘가위바위보’라는 작품을 썼다. “워킹맘인 내 경험을 글로 쓰고 싶었다. 이 이야기가 타인에게 공감받을 수 있을지도 궁금했다.”

청소년 책을 만드는 출판사에서 일하는 이씨는 청소년의 일상을 담은 소설을 쓰고 싶다. “아무래도 나와 내 주변 이야기로 된 글을 먼저 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안 쓴 새로운 이야기를 들여다보고 글로 담고 싶다. 어쨌든 계속 쓰고 싶다.” 그래서 날마다 쓰려고 노력한다. 이씨는 일을 끝내고 아이를 재우고 모든 스위치를 끄고 노트북 앞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 “하루 30분, 1시간. 글을 쓰는 그 시간에 마음이 평온해진다. 그때야말로 온전한 나의 시간이다.”

제9회 손바닥문학상 가작 수상자 김영석(42)씨는 “손바닥문학상 수상이 계기가 되어 현재 활발하게 문학 활동을 벌이고” 있단다. 직장을 그만두고 글 쓰는 삶을 선택했다. 그동안 청소년 대상 글쓰기 특강을 하고 노인층을 위한 인문학 강의도 했다.

김씨는 가끔 타임머신 타고 퇴사하기 전으로 돌아간다면 어땠을까를 상상한다. “높은 연봉을 받고 집도 사고 그런 삶을 살았을 것이다. 진급하기 위해 경쟁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렇게 글을 안 쓰는 삶은 재미가 없었을 테다.”

김씨는 안정적인 직장에 다닐 때와 달리 경제적으로 불안정하지만 삶의 만족감은 커졌다. 살아가기에만 급급하지 않고 성차별 등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그 문제에 대해 사유하는 연습을 한다. 사회를 보는 시선은 깊어지고 넓어졌다. 글쓰기는 그런 사유의 시간을 통해 성장하게 하기 때문이다. 요즘 김씨는 문학은 무엇인지, 어떤 글을 써야 할까라는 다양한 물음표를 자신에게 던진다. “소설에서 예전이나 지금이나 다루는 주제는 비슷하다. 사랑, 죽음 등. 이런 것을 어떤 새로운 관점으로 보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무엇이든 써라 </font></font>

김씨는 “그저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내가 소설을 통한 세상과의 소통을 꿈꿀 수 있게 됐고 더불어 실제 문학이란 창구를 통해 세상과 교류하고 있다. 나처럼 손바닥문학상에 관심 가진 많은 사람에게 조금이나마 자극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제1회부터 제9회까지 손바닥문학상의 이야기를 촘촘히 채운 수상자들. 그들은 손바닥문학상으로 받은 ‘따뜻한 응원’을 기억했다. 꼭 움켜쥔 이야기의 손바닥을 펼쳤던 그들이 이제 다른 누군가에게 그 따뜻한 응원의 손바닥을 내민다. 불안에 지지 말고 두려움에 무릎 꿇지 말고 무엇이든 써라. 손바닥이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것이니.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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