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비자로 한국에 온 파키스탄 출신 무슬림 사업가 무다사르 알리와 무하마드 아스까르는 한목소리였다. “한국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무슨 종교를 가지고 있는지 관심이 없어요. 그런 면에서는 한국이 세상에서 무슬림이 살기 가장 좋은 나라일 거예요.”
시리아에서 한국에 유학을 왔다가 시리아 난민들을 돕게 된 인권활동가 압둘 와합이 말했다. “‘IS(이슬람 국가) 아니냐, 테러리스트 아니냐’ 할까봐 옆 사람들(한국 사람들) 눈치 보고… 시리아 난민들은 한국 사회에서 얼굴을 노출하지 않고 조용히 살고 싶어 해요.”
이들 모두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정도로 한국 땅에 오래 살았다. 그러나 무슬림으로서 경험한 한국 사회에 대한 평가는 서로 달랐다. 정반대였다. 개인차라고 볼 수도 있다. 무다사르 알리 파키스탄무역협회 회장은 350여 명에 이르는 소속 사업가들과 수시로 교류한다. 압둘 와합 헬프시리아 사무국장도 한국에 있는 시리아인 1200여 명 가운데 400~500명과 늘 채팅방에서 소통하고 있다. 저마다 속한 무슬림 커뮤니티의 정서를 잘 알 만한 자리에 있다는 뜻이다.
같은 무슬림이지만 ‘사업가’와 ‘난민’이라는 집단의 성격 차이로밖에 설명하기 힘든 이런 온도 차는 인터뷰 현장 분위기에서도 고스란히 묻어났다. 7월4일 늦은 오후 인천 연수구, 알리 회장과 인터뷰가 예정된 자리에는 파키스탄 사업가 친구 6명이 거리낌 없이 동석해 ‘친절한 한국’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쏟아놓았다. 같은 날 낮 서울 마포구 당인리, 압둘 와합 사무국장은 인터뷰를 시작하기에 앞서 전화로 어느 기자의 부탁을 어렵게 거절하고 있었다. “어제 (시리아인들한테) 열심히 연락해도 (인터뷰 허락이) 안 돼서… 계속 설득해도….” 압둘 와합 사무국장은 제주도 예멘 난민 사태 이후 여러 언론사로부터 시리아 난민 인터뷰를 연결해달라는 “똑같은 부탁”을 날마다 받지만, 어떤 시리아인도 ‘무서운 한국’에서 선뜻 얼굴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았다.
한국의 두 얼굴최근 인터넷 카페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쿠란(코란)에 있지도 않은 ‘가짜 구절’인 ‘코란에서 가르치는 이슬람의 13교리’를 근거로 제주도 예멘 난민을 거부하는 혐오 주장이 퍼지고 있다. 개인이 속한 국가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에 따른 차별을 뜻하는 ‘GDP 인종주의’란 말이 이미 존재한다. 그러나 똑같은 무슬림인데도 사업가에게는 착하고 난민에게는 무서운 한국 사회의 진심이 정말 반무슬림인 건지, GDP 인종주의인 건지, 그것도 아니면 그저 소득에 따른 사람 차별일 뿐인지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연수구 능허대로에 있는 한 건물 3층에 자리잡은 알리 회장의 사무실에 들어서면 각종 상장과 상패, 트로피가 가득하다. 그중 유독 눈에 띄는 것은 한글로 적힌 ‘삼백만불 수출의 탑’ ‘오백만불 수출의 탑’ ‘천만불 수출의 탑’ 트로피다. 2014년부터 3년 내리 무역의 날에 한국 정부로부터 받은 트로피라고 한다. 알리 회장은 2006년 한국에 투자비자로 들어왔고, 한국에서 중장비와 중장비 부품을 파키스탄으로 수출하는 회사를 운영한다. 2016년 수출 규모가 140억원에 이른다. 알리 회장은 2017년 ‘특별 귀화’를 했다. 알리 회장이 한국 정부로부터 ‘대한민국 국익에 기여할 것’으로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알리 회장이 인터뷰에 초대한 무하마드 아스까르 대표 역시 한국에서 중장비 수출업을 한다. 1990년대 파키스탄에서는 대우중공업 건설 장비가 눈에 많이 보였다. 2001년 한국에 투자비자로 들어와 본격적으로 한국 중장비를 파키스탄으로 수출하기 시작했다. 이날 인터뷰 자리에 나온 무하마드 일리야스 대표(중고차·중장비·차 부품 수출), 콰두스 바티 대표(카펫 수입·요식업), 하민수(하피즈 와히드) 대표(중고차·중고 기계·원단·중고 의류 수출), 샤자드 알리 대표(중장비 매매·수출), 미안 사기르 아흐메드 대표(자동차 수출) 모두 한국에 투자비자로 들어와 살고 있는 파키스탄 출신 무슬림 사업가였다. “한국에는 파키스탄인이 1만2천여 명 살고 있는데, 이 가운데 2천여 명은 사업가”라고 알리 회장이 설명했다. 인천항과 인천공항이 가까워 수출하기 편리하고 출입국도 쉬운 인천에는 파키스탄 사업가들이 많이 모여 살고 있다.
무슬림 사업가 “한국인 종교 편견 없다”알리 회장은 “거짓말 안 하고 진짜”라며 “한국인들은 종교 편견이 없는 좋은 사람들”이라는 얘기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 “파키스탄도 좋지만 (파키스탄 출장 갔다가) 한국 올 때 느낌이 정말 좋아요. 제주도에서 예멘 난민을 반대한다는데, 저는 제주도에 일 년에 두세 번씩 가는데 한 번도 무슬림이라 싫다는 얘기를 못 들었어요. 한국 사람들은 종교 편견도 없고, 저는 한국 사람들과 정말 사이좋게 잘 지내고 있어요.”
아스까르 대표도 “여러 나라에 다녀봤지만, 한국은 누가 어느 종교인지 구분하지 않고 서로 (종교와 무관하게) 인간적으로 마음 편하게 좋게 본다”며 “태어난 나라가 좋다지만 사실 파키스탄과 한국은 (지내기에) 별 차이가 없고, 한국처럼 편한 나라가 없다”고 칭찬했다. 아스까르 대표는 영국·미국에 갔을 때 종교 관련 질문도 많이 받았고, 이슬람과 테러리즘을 연관 짓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기도 했다. 독일과 프랑스도 가봤고 싱가포르에도 가봤지만 한국처럼 편하지는 않다고 했다. 한국 사람들은 “무슬림인 걸 알더라도 상대방을 배려해 앞에서 나쁘게 말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심지어 그는 “제주도 서귀포와 충남 서산에도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많은데, 그들이 종교 때문에 나를 싫어한다고 느낀 적이 없다. 그런데 왜 제주도에서 (무슬림이라는 이유로) 예멘 난민을 반대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지 모르겠다”며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샤자드 알리 대표도 “싱가포르, 홍콩, 독일, 스웨덴, 핀란드 다 가봤는데 한국이 제일 좋다”며 “가끔 술 먹고 반말하거나 외국인한테 그냥 반말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못 배워서 그러신가보다’ 우리가 이해한다”며 웃었다.
파키스탄 사업가들은 일부 한국인이 제주도 예멘 난민을 반대하는 배경에 반무슬림 정서 대신 ‘다른 오해’가 있다고 본다. 알리 회장은 부유한 외국인이 많이 사는 송도 국제도시에 살고 있다. 이웃과 종교 문제로 불편했던 적이 한 번도 없다. 하지만 가끔 세차장에 가면 그가 사업가인 줄 모르는 직원이 “좋은 차 타네요. 나라(파키스탄)에 돈 안 보내요?”라고 물을 때가 있다. 알리 회장이 ‘(준주변 국가에서 온) 외국인과 함께 일해보지 않은 한국 사람들은 외국인이 다 저임금 노동자인 줄 아는구나’라고 느끼는 순간이다. 그는 “잘사는 사람들은 한국에서 살기 좋아요. 인천에도 송도 말고 가난한 지역이 있는데, 거기 사는 파키스탄 분들한테 물어보면 한국에서 살기가 힘들다고 대답할 거예요.”
옆에서 얘기를 듣던 아스까르 대표는 이해를 도우려고 몇 가지 설명을 덧붙였다. 그는 한국에서 폐차시키려는 차량을 오히려 돈 주고 사서 파키스탄으로 수출하고, 한국 업체에 컨테이너 운송료와 렌트 비용을 내고, 한국 정부에 세금도 꼬박꼬박 내고 있다. “한국 대기업들은 (중고를 수출했다가) 클레임(배상 청구) 걸리고 이미지 망칠까봐 손대고 싶어 하지 않는 일을 우리가 하고 있다”며 “파키스탄보다 오히려 한국에 더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데, 한국 사람들이 너무 모르고 외국인들을 막연히 오해한다”고 안타까워했다.
무역협회 소속 무슬림은 ‘성실한 납세자’파키스탄무역협회는 한국 사회에 이런 현실을 알리기 위해 올해 말께 재한 파키스탄 사업가들의 존재를 알리는 프로젝트를 계획 중이다. 무역협회 소속 파키스탄인들이 한국 정부에 낸 납세 자료를 분석해 언론을 통해 알리겠다는 뜻이다. 무역협회 회원들은 1인당 연간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1억원 넘는 세금을 한국 정부에 내고 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 파키스탄은 물론 이주민에 대한 인식도 개선되리라는 기대가 크다.
압둘 와합 사무국장은 인터뷰에서 제주도 예멘 난민 사태와 관련해 “난민 보호를 반대하는 한국 사람들이 잘 이해되지 않지만 ‘우리(시리아인)도 이방인이어서’ 뭐라고 못하겠다”고 했다. 예멘에서 벌어지는 내전과 학살의 비극을 누구보다 공감하는 사람이 시리아 난민이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한국)가 착해서 너희(시리아 난민)를 잘 챙기고 있는데, 다른 친구(예멘 난민)까지 데려오라고 하냐”는 공격을 당하거나 난민심사에 해가 될까봐 조용히 숨죽인 채 살고 있다.
사실 한국에 난민이나 인도적 체류 지위로 머무는 시리아인들도 “한국에서 오래 살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게 압둘 와합 사무국장의 말이다. “음식과 문화 차이가 있는데다 이슬람 혐오가 점점 커지고 있어서 한국에 사는 데 한계가 있다”고 했다. 압둘 와합 사무국장이 유학생 신분으로 처음 한국에 왔던 2009년 말, 한국에 사는 시리아인은 50여 명 정도였다. 이 숫자가 1200여 명으로 늘고 예멘과 이집트 난민 이슈까지 생기면서 “여기저기 가는 곳마다 난민 이야기를 듣게 되고, 난민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생겨서” 점점 더 한국에서 살기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얘기다.
싫어할 수 있지만 거짓은 안 된다압둘 와합 사무국장 역시 요즘 “혹시 공격당할까봐” 걱정될 때가 많다. 전에도 이슬람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전자우편이나 메시지를 받은 적 있다. 개인적 견해인데다 직접 공격하거나 협박하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에 크게 염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은 압둘 와합 사무국장도 “반무슬림 세력이 조직적 체계적으로 움직이고 단체 행동도 준비하고 있어서, 사실 무섭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슬람 싫어하는 건 자유인데, 거짓말은 안 했으면 좋겠다”며 “이슬람을 모르는 한국 사람들이 가짜뉴스를 보면 당연히 무슬림이 싫어지지 않겠느냐”고 답답해했다. 이어 “아메리카노를 마시기 싫은 사람은 안 마시면 된다. 그래도 본인이 싫다고 아메리카노를 술이라고 하면 안 된다”며 일부 종교 지도자들과 국회의원 등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이슬람에 대한 거짓말을 퍼뜨리는 건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꼭 반무슬림 정서 때문이 아니더라도 한국은 난민이 머물기에 그리 좋은 나라는 아니라는 것을, 시리아인들도 잘 알고 있다. 한국에서 드물게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시리아인 4명 가운데 1명은 이미 한국을 등지고 독일로 떠났다. “5~6년 전 유럽으로 간 시리아 난민과 한국으로 온 시리아 난민들의 ‘격차’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각국에 흩어진 시리아 난민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채팅앱으로 정보를 공유한다. 정착한 나라별로 난민들의 삶을 비교할 수 있다. 가령 독일로 간 난민들은 몇 개월간 난민캠프에 머문 뒤 곧바로 주거와 언어·직업 교육, 기초생활비, 의료보험 지원을 받았고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하면 일자리도 찾을 수 있었다. 독일은 “난민이 독일 사회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흡수하는 정책을 폈지만, 한국은 “입국시켜주는 것만으로도 혜택”이라는 관점이라는 게 압둘 와합 사무국장의 설명이다. 더구나 한국에서는 난민 인정을 받은 뒤에도 크게 달라지는 게 없다. 출입국관리사무소의 제대로 된 안내조차 없다. 난민으로 인정받은 시리아인들이 압둘 와합 사무국장한테 연락해 “나 이제 뭐하면 되느냐, 어떻게 살면 되느냐”고 물을 정도다. 이런 이유로 시리아인 가운데는 굳이 어려운 난민 인정을 받는 대신 “의료보험 가입과 운전면허 취득만 허락해주면” 인도적 체류 지위로 한국에 머물다 유럽 등으로 가려고도 한다.
애초 유학생 신분이었고 한국어에 능통한 압둘 와합 사무국장은 다른 시리아인들에 비하면 한국 사회에 잘 정착해 살고 있다. 하지만 1년 전 노르웨이에 정착한 동생을 볼 때면 부러움을 감출 수 없다. 그의 동생은 노르웨이 정부가 발급한 임시 여권으로 전세계를 누빌 수 있다. 반면 그는 “한국에 있는 나는 시리아 여권을 가지고 있고, 지금 갈 수 있는 나라는 터키밖에 없다”고 했다.
무슬림 사업가와 난민이 느끼는 한국 사회의 ‘환대’에는 극적인 차이가 있었지만, ‘반대’에는 한 가지 일치하는 통찰이 있었다. 생활 속에서 실제로 무슬림을 만나는 한국 사람들은 사업가한테든 난민한테든 큰 적대감을 보이는 일이 없으나,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에서 ‘가상의 무슬림’을 만나는 한국 사람들한테서 유독 이슬람 혐오 정서가 강하다는 지적이다.
누가 혐오하는가아스까르 대표는 말했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에 이슬람에 대한 나쁜 소식이 많이 돌아다녀요. 종교 문제가 아니라 정치 문제죠. 무슬림과 친하지 않은 사람들이 나쁜 얘기를 진짜로 믿어버려요. 인터넷에 무슬림 혐오 글 쓰는 사람들 대부분은 무슬림과 개인적으로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에요.” 아흐메드 대표는 “한국 사람들이 100% 다 좋은 사람은 아닌 것처럼 무슬림 중에서도 나쁜 사람이 있을 수 있는데, 미디어에서 테러리즘 같은 것만 너무 크게 보도해서 무슬림 이미지가 안 좋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압둘 와합 사무국장도 말했다. “시리아 분들 옆에 있는 한국 사람들은 거의 착해요. 난민이 싫을 수도 있고 이슬람이 싫을 수도 있지만, 곁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그 사람’(시리아 난민)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니까 걱정이나 두려움이 생기지 않는 거예요. 오히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에 가짜뉴스가 너무 많고, 실제로 무슬림을 모르는 사람들이 식당에서 편의점에서 ‘이상한 시선’으로 쳐다봐요.”
글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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