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18일부터 7월7일까지 19박20일간 이어진 대장정의 대부분은 서민들의 삶이 묻어나는 3등칸을 이용했습니다. 여행은 언제나 그렇듯이 전혀 예상치 못한 일들을 겪게 해줍니다. 특히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나 이르쿠츠크까지 3박4일간 동행한 북한 노동자들을 잊을 수 없습니다. 이 이야기를 포함해 20일 동안 벌어진 일과 시베리아가 품은 역사에 대해 10차례에 나눠 글로 풀어놓게 되었습니다. 숨겨졌던 대륙을 여행하고 싶은 독자는 열차에 같이 올라타주시길 바랍니다.
여행 일정은 이렇습니다. 인천∼블라디보스토크 1박∼열차 내 3박∼이르쿠츠크(환바이칼 철도) 2박∼크라스노야르스크 1박∼열차 내 1박∼노보시비르스크∼열차 내 1박∼예카테린부르크 1박∼열차 내 1박∼모스크바 1박∼열차 내 1박∼상트페트르부르크∼열차 내 1박∼모스크바∼열차 내 1박∼베를린 2박∼인천(지도 참조). _편집자
시베리아 횡단열차 차장에게서 여권과 승차권을 돌려받은 뒤 열차에 올랐다. 앞뒤로 배낭을 멘 나의 모습은 한 마리의 거북이와 같았다. 양손에는 컵라면과 역 앞 슈퍼에서 산 맥주 등이 가득 든 비닐봉지를 들었기에 시베리아 횡단열차 3등칸 6인실 통로는 비좁았다. 출입문을 통과해 차장실을 지나면 통로 양쪽으로 침대가 도열해 있는 구조의 객차가 있다. 여기에선 자연스럽게 들고 나는 사람들의 모습을 서로 살피게 된다. 서둘러 올라타 자리를 잡았는지 객실 안에는 사람들이 꽉 차 있었다. 예약된 자리를 확인하기 위해 침대 번호를 확인하며 통로를 지나려는 순간 입을 벌리고 다물지 못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사람들의 눈도 휘둥그레지긴 마찬가지였다. 아주 잠깐 객차 안에는 정적이 감돌았다. 나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뒤따라오는 우리 일행 2명을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진짜 대박이다!”
열차는 정시에 출발했다. 2015년 6월19일, 블라디보스토크 12시10분발 노보쿠즈네츠크행 207열차는 기적을 길게 울리고 승강장을 벗어났다. 러시아의 모든 열차 시간은 모스크바를 기준으로 정해져 있기에 모스크바와의 시차가 7시간 나는 블라디보스토크의 현지 출발 시간은 19시10분이었다. 열차는 블라디보스토크 시내를 벗어나 북태평양이자 동해의 북쪽 끝과 맞닿은 아무르만의 수평선이 보이는 해안선로를 달렸다. ‘플라즈카르타’라고 부르는 개방형 6인실 객차의 8번째 구획에서 남북의 여행자들은 1층 침대에 마주 보고 앉았다. 서로 눈이 마주칠 때면 헛웃음을 날리거나 창밖의 풍경을 보면서 멋쩍음을 달랬다.
열차는 해안을 벗어나 북으로 머리를 틀어 시베리아의 품으로 향했다. 우리 구역의 북한 여행자들이 벽 쪽에 붙어 있는 탁자 위에 주섬주섬 먹을 것들을 꺼내놓았다. 도시락이었다. 김밥, 전, 김치, 떡 등 각자 싸온 음식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 명이 “저 이거 맛 좀 보시라요. 넉넉히 싸와서 양은 충분히 있습네다”라고 함께 먹길 권해왔다. 의례적인 제안이었지만 순박한 인심이 살아 있었다. 친구가 되려면 밥을 같이 먹는 것만큼 빠른 법은 없다. 나는 덥석 말을 받았다. “남조선은 자본주의 사회라 염치가 없어 거절을 안 합니다, 하하. 우리 북조선 음식 한번 먹어보자구!” 남쪽 일행을 독려해 탁자에 달라붙었다. 함께 먹길 권했던 친구가 잠깐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자리를 내주었다. 드디어 한 식구가 되는 관문을 넘어섰다. 살짝 곁눈질을 해보니 남북의 철도여행자가 어울리는 모습을 주변의 북한 여행자들이 황망한 눈길로 쳐다보고 있었다.
저녁을 함께 먹으며 열차에 탄 북한 여행자들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이들은 24명이 한 팀으로 3년간 이르쿠츠크로 외화벌이를 떠나는 노동자였다. 노동자들은 평양에 살고 있다고 했다. 이날 오후 고려항공편으로 평양 순안공항을 출발한 이들은 블라디보스토크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역으로 이동해 열차에 올랐다. 우리가 먹은 음식은 평양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해외로 일 나가는 아버지와 자식을 위해 가족이 준비한 도시락이었다. 음식이 얼마나 특별하게 만들어졌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식후 디저트로 작게 포장된 초콜릿바를 돌렸다. 입을 앞으로 오므리며 달콤한 초콜릿을 씹는 모습은 남과 북이 다를 바 없었다.
열차 차장이 순회를 했다. 차장은 손짓 발짓으로 승객에게 열차 내 어디에서도 금연임을 강조했다. 열차가 정차 역에 도착했을 때 승강장으로 내려가야만 흡연이 가능했다. 제한된 공간에서 골초들에게 유일한 낙일 수 있는 흡연이 금지된다는 것은 견디기 힘든 일이다. 게다가 무더위는 객실 승객들의 힘을 하염없이 빼앗아가고 있었기에 무엇이든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이 필요했다. 이미 저녁 식사 뒤 객차 연결 통로로 우르르 몰려갔다가 차장에게 들켜서 쫓겨나온 흡연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한 번 더 걸리면 명시돼 있는 벌금을 부과하겠다는 경고를 들었다. 결국 다음 정차 역이 몇 시간 남았는지가 최대의 관심거리로 등장했다.
2시간여를 달린 열차가 정차를 위해 속도를 줄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내릴 준비가 되어 있는 승객들이 담배와 라이터를 챙겨 출입구 쪽으로 줄을 섰다. 열차가 정차한 곳은 우수리스크역이고 정차 시간은 7분이다. 밤 9시가 넘은 시간이지만 햇살은 이른 오후의 느낌이 가시지 않았다. 백야 때문이었다. 열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승객과 승무원,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담배를 입에 물었다. 나는 담배를 하나 빼들고 옆에 서 있는 북한 친구에게 건넸다. “이거 남조선 담배인데 맛이나 보세요!” 그는 담배를 받아들고 신기한 표정으로 살폈다. “남조선 담배들은 이리 얇고 기다란가요?” “아니요, 선생님이 피우고 있는 모양의 담배도 많아요.” 차장이 승차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북한 친구는 내가 준 담배를 귓가에 꽂았다. 그는 다음 정차 역에서 시연한 뒤 맛이 어떤지 알려주겠다고 말하고는 열차에 올라탔다.
우수리스크역을 떠난 열차는 4시간 만인 새벽 1시에 다시 15분간의 정차 시간을 가졌다. 모두들 잠을 자고 있는 줄 알았는데 주섬주섬 일어나 승강장으로 내려섰다. 어둠 속에서 홀로 불을 밝힌 역사가 서 있었다. 열차의 창에서 새나오는 빛이 승강장 바닥에 무늬를 만들어 보였다. 사람들은 며칠 뒤 만나게 될 미지의 세계에 대한 막막함을 담배 연기에 실어 어둠 속으로 날렸다. 갑자기 호각 소리가 들렸다. 역무원이 승강장 가까이에 쪼그려 앉은 사람들을 일으켜세웠다. 잠시 뒤 굉음을 내며 화물열차 한 대가 지나갔다. 아주 긴 열차였다. 마지막 꼬리가 지나가면서 바람과 소리까지 휘몰아 가져갔다. 잠시 휑한 느낌을 갖는 순간 이제는 조금 적응이 된 평안도 말투가 튀어나왔다. “로씨아 놈들 대단하네. 화차가 예순일곱 칸이야.” 옆에 있던 다른 동포가 말을 받았다. “야! 넌 그걸 세고 앉았었네?” 하하하, 꼭 있다. 열차 지나갈 때 몇 량인지 세는 사람.
한국에서야 기껏해야 25량 정도의 화차가 물리는데 시베리아 횡단 화물열차에선 60∼70량은 기본이다. 열차 길이만 해도 1km가 훌쩍 넘는다. 물동량이 많을 때는 100량이 넘는 화물칸을 달고 달리기도 한다. 지금 한반도 남쪽에서는 유라시아 대륙의 꿈을 들먹이며 장밋빛 전망이 만발하지만, 기초 없이 허공에 세우는 집과 다름없다. 남북의 화해와 협력, 소통과 연결 없는 유라시아는 신기루다. 남쪽의 힘있는 정당과 언론, 종교단체들은 남북의 적대적 갈등을 연료로 달리는 열차다. 이들은 대륙의 꿈을 세상 저편에 있는 천국으로 소모시킬 뿐이다. 해방 뒤 남한에서 득세한 친일파가 알리바이로 삼은 반공 이데올로기는 유통기한이 진즉에 지났음에도 폐기되지 않고 있다. 폐기는커녕 사욕을 앞세운 이들에 의해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숭배되고 있다. 대륙 횡단열차의 컨테이너에 부산발 화물이 달리게 하기 위해서는 대결의 이데올로기를 넘어서야 한다. 원한으로 덮은 분단의 상처를 화해와 용서로 치유해야 한다.
열차가 출발하고 객차 안의 불이 꺼졌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침대 모서리에 몸을 일으켜 앉았다. 통로 쪽 침대에 누워 있던 북한 친구 역시 잠이 오지 않는지 어둠 속 창밖을 보고 있었다.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잠이 안 오나봐요?” “예, 아까 좀 기대서 졸았더니 잠이 안 옵네다.” “벌써 고향 생각하면 3년간 어떻게 버티려고요?” “아니 독심술 하시우? 내가 가족 생각을 하는 거이 어찌 알았습네까?”
평양 친구는 어색한 미소로 눈가의 그리움을 감췄다. “나이가 어찌 되나요?” “서른셋입네다.” “결혼은?” “1살짜리 딸이 있습네다.” “아이고, 귀여운 아기 보고 싶어서 어떻게 떠났나?” 서른세 살에 고향을 떠난 평양 청년은 손으로 콧잔등을 한번 훔치고 말했다. “일없습네다. 3년 고생해서 가족들 편하면 그걸로 됐지요.”
청년은 사랑하는 색시와 결혼하자마자 아이를 가졌고 이제 아장아장 걸으며 한창 귀여움을 뿜어내는 아기와 살고 있었다. 그러나 경제적 현실이 눈에 밟히는 가족을 뒤로하게 했다. 머나먼 타지로 떠나는 젊은 가장의 마음은 달리는 열차처럼 계속 흔들리고 있으리라. 과거 눈물 속에 독일행 비행기에 올랐던 남한의 광부들이나 중동으로 떠났던 건설 노동자들의 희망과 회한의 모습이 겹쳐지는 듯했다.
역사를 안고 말없이 흐르는 아무르강짧은 밤을 몰아내고 아침이 왔다. 코발트빛 새벽하늘이 사라지자마자 객실 온도가 급상승했다. 여름의 시베리아 횡단철도 안에서 가장 많이 소모되는 것은 물이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산 물은 이미 떨어졌고 객차 내 간이 매점인 차장실에서 시중보다 비싼 값에 산 물도 바닥났다. 아침 7시30분, 열차는 극동의 가장 큰 거점 도시 하바롭스크에 들어서며 숨을 골랐다. 하바롭스크역에서는 기관차 교체를 위해 비교적 긴 시간인 40분을 정차한다. 횡단열차는 장거리 운행의 특성상 수시로 기관차를 교체하는데 이 과정에 필수적으로 따르는 제동 기능 시험과 간단한 객차 정비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나는 남쪽 일행으로부터 보급품 구매 특명을 받고 역사 밖으로 나갔다. 정확히 6개월 전 똑같은 열차로 같은 시간에 도착했을 때는 아직 어두웠다. 길가에는 겨울왕국처럼 눈이 허리까지 찼었다. 기온은 영하 28℃, 체감 온도가 아닌 실제 기온인 영하 28℃를 경험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혹독한 추위 속에 값을 흥정했던 택시 승강장이 낯익었다. 그러나 6개월을 달린 지구는 찌는 태양 아래 아침부터 사람을 헉헉대게 했다. 지구 역시 태양계의 노선을 따라 굉장한 여행을 하고 있는 셈이다.
역 광장 한편에 있는 매점에서 물을 샀다. 북한 노동자들과 넉넉하게 나눠 마실 생각으로 두 번에 걸쳐 2ℓ짜리 6개들이 팩을 날랐다. 중요한 보급품을 챙기고 나니 한결 여유가 생겼다. 기관차가 힘을 내는 듯하자 객차들이 연결기에서 강철 충격음을 내며 차례대로 끌려갔다. 곧이어 아무르강이 나타났다. 차창에 아무르강 철교의 철제 빔들이 사선의 자취를 남겼다. 수많은 조선의 독립투사들이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흘려보냈을 강물은 말없이 흐르고 있었다.
아침 식사를 마친 뒤 내가 있는 자리에 손님들이 찾아왔다. 우리는 물을 넉넉히 준비한 덕에 북한 노동자들과 나눠 먹었는데 이번에 온 손님들은 물을 원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저기 남조선 담배 몇 개비 바꿔 피울 수 있습네까?”
“물론 되지요. 단, 갑으로 바꿉시다. 갑 대 갑!”
“근데 남조선 담배는 4달러가 넘는 비싼 거라고 들었는데 갑 대 갑으로 바꾸면 손해나지 않습네까?”
“아뇨, 상관없어요. 저야 뭐 기념이니까요. 단, 같은 거 말고 다른 종류의 담배로 가지고 오세요.”
이때부터 내 자리에는 물물교환 장이 열렸다. 사람들은 자기 자리로 뛰어가서 새 담뱃갑을 들고 왔다.
“잠깐, 차례차례! 줄 서시라요.”
‘갑 대 갑’ 교환 담배 장터 열린 시베리아 열차북한말을 흉내 내는 내 모습에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는 북한 노동자들이 줄을 섰다. ‘평화’ ‘고향’ ‘북극성’ ‘꿀벌’ ‘명신’ ‘강선’ ‘압록강’ 등 북한에서 만들어진 담배들이 내 침대 위에 쌓였다. 매매 당사자들과 몰려든 구경꾼들이 시시덕거리며 신나게 거래를 했다. 나는 서비스로 한 갑을 풀어 주변의 구경꾼들에게 돌렸다. 담배 한 개비로도 남과 북은 허물없이 웃을 수 있었다. 다음 정차 역에서는 대다수 북한 노동자들의 입에 남한 담배가 물려 있었다. “이렇게 순한 걸 어드렇게 피우나?” 하면서도 그들은 달게 연기를 빨아들였다. 나는 반대로 평양의 ‘내 고향 담배공장’에서 나온 ‘고향’을 피웠다. 한국의 애연가들이 주로 피우는 니코틴 함량은 1mg인데 ‘고향’은 그 9배인 9mg짜리다. 생각만큼 독하지 않다고 느꼈는데 몇 모금 빨고 나니 머리가 핑 돌았다. 담배 맛은 좋았지만 순한 담배에 길들여진 몸이 감당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담배 장터 이후로 남과 북의 여행객들은 더욱 가까워졌다. 우리는 서로가 궁금해하는 걸 물어보며 시간을 보냈다. 북한 노동자들은 이르쿠츠크로 가는 횡단열차의 여러 칸에 나눠 타고 있었다. 우리가 탄 칸의 24명 말고도 팀이 더 있었다. 팀별로 하는 일이 달랐고 일하는 현장도 달랐다. 우리 객실의 팀원들은 건물 인테리어 담당이었다. 건물 골조가 올라가고 나면 내부 공사를 맡는 일을 한다고 했다. 207열차 안의 북한 노동자들에게는 7호차에 남조선 사람 3명이 탔다는 소문이 쫙 퍼졌다. 우리도 그렇듯 그들도 궁금증이 잔뜩 부풀어올랐을 것이다. 수시로 우리 자리로 방문객들이 찾아왔다. 남쪽 일행은 남자고등학교에 방문한 여고생들처럼 호기심 가득한 환대를 받았다. 정차 역에서도 따로 무리를 짓지 않고 함께 어울렸다. 매점에서 산 코카콜라도 함께 나눠 마셨다. “김 동무, 미제의 쓴물 맛 좀 보시라요!” 하며 콜라를 내밀면 북한 노동자는 어이없게 웃으며 농담도 잘한다며 콜라병을 받았다.
차창 밖으로 시베리아의 자작나무들이 끊임없이 흘렀다. 오랜 시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듯한 벌판에 선 나무들은 1천 가지의 사연을 담고 달리는 열차를 품어주었다. 나는 캐나다 출신 만화가 기 들릴의 평양 체류기 을 읽은 적이 있다. 기 들릴은 어디를 가도 안내원과 함께 이동해야 하는 것이 불만이었다. 금강산 관광을 갔던 이의 경험담을 듣거나 다른 북한 방문기를 봐도 눈에 띄었던 것은 방문자에게는 반드시 안내인이 따라붙었다는 사실이다. 안내인은 가이드 역할도 했지만 일종의 감시자이기도 했다. 당국에서 허가한 방문지나 면담자가 아니면 찾아갈 수도, 만날 수도 없었다. 여행자가 원하는 것은 현지인과 만나 그들의 생활을 경험하는 것이다. 함께 먹고 마시고 이야기하면서 이 행성에 사는 인류로서의 공통점과 지리적·문화적 차이 때문에 드러나는 다른 점을 살펴볼 수 있는 것은 여행이 주는 큰 가르침이자 즐거움이다. 하지만 북한에서는 현지인과의 자연스러운 접촉은 불가능하다. 이런 현실 속에서 우연히 열린 작은 시공간의 틈으로 들어간 것은 대단한 행운이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 안이라는 특별한 공간은 남과 북의 여행자를 자연스럽게 섞어놓았다. 분단 이후 평범한 남북의 노동자들이 스스럼없이 어울릴 수 있었던 적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주저했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조금씩 말이 트였고 마음이 열렸다. 심리적으로 쌓였던 장벽은 금세 녹아내렸다. 무엇보다 같은 말과 글을 쓰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이, 같은 음식을 좋아한다는 사실이 우리가 떨어질 수 없는 형제요 동포라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해방 꿈꾼 선조들의 체취가 밴 철길광복 70년! 어떤 화려한 기념식보다 달리는 열차 안에서 북한 노동자를 만나게 된 사건이 내 가슴을 술렁이게 했다. 분단으로 귀결된 미완의 해방. 70년을 섬 아닌 섬으로 살아온 남쪽 사람들은 대륙의 꿈을 잊은 지 오래다. 시베리아를 달리는 열차 안에서 그들과 나눈 어깨동무가 깊은 잠을 깨웠다. 해방을 꿈꾸며 달렸던 선조들의 체취가 배어 있는 철길 위에서 광복 70년은 새롭게 다가왔다.
“저기… 전화 한 통화만 빌려 씁세다.” 열차의 흔들림에 리듬을 맞춰 휴대전화 메모장에 그동안 지출한 경비 내역을 적고 있는데 한 북한 노동자가 다가왔다. 뒤이어 다른 이가 오더니 북조선 빵이라며 맛을 보라고 가져왔다. 이르쿠츠크까지는 아직도 두 밤을 더 자야 했다. 달려가는 동안 펼쳐질 일들에 대한 기대로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일었다. “그 빵부터 맛 좀 봅세다, 동무!”
글·사진 박흥수 기관사·사회공공연구원 철도정책 객원연구위원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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