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땅에 도착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룻밤을 묵은 우리 팀은 아침에 호텔을 나서자마자 걸어서 5분 거리의 역으로 향했다. 블라디보스토크 시내를 답사하기 전, 역 앞 러시아 이동통신사 대리점에서 휴대전화의 유심칩을 사기 위해서였다.
블라디보스토크를 제외한 방문 도시들은 모두 초행길이다. 러시아어라고는 고맙습니다라는 의미의 ‘스파시바’ 한마디밖에 모른다. 목적지를 찾기 위해 지도를 검색하거나 간단한 대화를 위한 번역 앱은 꼭 필요했다. 인터넷 데이터 사용이 필수인데 한국 이동통신사의 국제 로밍 데이터를 이용했다간 요금폭탄을 맞게 된다. 넉넉한 데이터 용량과 통화를 할 수 있는 칩을 500루블(약 1만1천원)을 주고 샀다.
그 덕분에 횡단열차 안에서 한국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사진과 문자를 보낼 수 있었고, 북한 노동자들에게 휴대전화를 빌려줘 통화할 수 있게 했다. 불편함도 있었다. 워낙 광대한 땅이라 기지국을 촘촘히 세울 수 없었는지 열차가 정거장을 떠나 도시를 벗어나면 데이터는 불통되기 일쑤였다. 그래도 달리는 열차 안에서 수만 리 떨어진 이들과 실시간으로 소식을 주고받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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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단열차 안 우리 자리는 서로에 대한 호기심을 잔뜩 품은 남북 노동자들의 만남의 광장이 되었다.
북한 노동자 중 최고 연장자로 보이는 이는 자주 휴대전화를 빌렸다. 1967년생, 48살이라고 했다. 남한과 다르게 만으로 나이를 따졌다. 전화를 빌린 이는 건네준 전화를 받아들고는 옆에 앉아 이르쿠츠크 현장의 관계자나 동료에게 전화를 했다.
“여기 지금 어딘지는 잘 모르겠는데 내일 밤에나 치타에 도착한답니다. 탈 없이 잘 가고 있으니까 걱정 마시라요. 울란우데쯤 가면 또 연락하갔습네다.” “야, 만덕이(가명)? 나 성철 형이야. 그래! 너네 아버지랑 너 마누라랑 순안공항까지 나왔더랬어. 뭐라고? 잘 안 들린다고? 야, 나 이거 통화 오래 못해. 남조선 동포한테 빌려서 전화하는 거야. 뭐? 남조선! 응응, 남조선! 열차 안에서 만났어. 자세한 건 만나서 말해줄게. 응! 너네 아버지하고 마누라한테 받은 편지 내가 가져가. 응. 내가 읽어봤는데 별 내용은 없고 평양 가족들은 무탈하니까네 집 걱정 하지 말고 너만 몸 건강히 잘 지내라는 거야. 사진도 한 장 있어. 내가 가져가서 보여줄게. 응. 니 마누라 많이 울었지.”
고스란히 들리는 통화 내용을 안 듣는 척, 창밖으로 흐르는 자작나무숲만 쳐다봤다. 통화가 끝난 뒤 나는 전화기를 빌려쓴 이에게 한마디 했다. “어차피 러시아에 전화 걸 사람도 없으니까 필요하면 아무 때나 맘껏 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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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바롭스크를 떠난 열차는 5시간30분을 달린 끝에 오블루체라는 작은 역에서 15분간 정차했다. 오후 1시, 태양은 작정한 듯 복사열을 내뱉었다. 후끈 달아오른 객차를 탈출했지만 밖이라고 해서 더위를 식힐 공간은 없었다. 승객들은 지친 표정으로 객차가 만들어낸 그늘 아래 서 있거나 쪼그려 앉았다.
승강장에 먹을 것을 파는 러시아 아줌마들이 나타났다. 횡단열차의 정거장에서 볼 수 있는 특이한 풍경이었다. 아이들을 동반한 승객들은 아이스박스를 들고 온 아주머니 주위로 모여들었다. 스티로폼 아이스박스 안에는 초콜릿 맛과 바닐라 두 종류의 아이스크림이 들어 있었다. 상표도 없고 비닐로만 포장됐는데 한국의 놀이공원이나 길거리에서 파는 것과 비슷했다.
남한 일행 한 명이 맛을 보자고 보챘다. 하나에 30루블, 한국돈으로 700원이 채 못 되는 가격이다. 주변에 북한 노동자 몇 명이 있었는데 이들만 사주기에도, 우리 칸의 일행들만 골라 주기에도, 전체에 다 돌리기에도 애매했다. 3개를 사서 남쪽 일행만 하나씩 먹었다. 북한 노동자들은 무심한 듯 눈을 돌렸다. 혀끝에서 아이스크림의 달콤함이 사라졌다.
열차가 곧 출발한 조짐이 보이자 아이스크림 가격은 20루블로 떨어졌다. 열차에 오르기 바쁜 승객들이 다시 지갑을 열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열차가 문을 닫고 출발하자 아이스크림을 팔던 아줌마는 남은 아이스크림을 승강장 바닥에 쏟아부었다. 어차피 이 더위에 곧 녹아버릴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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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가 정차하면 현지 사람들이 여러가지 음식을 판매하러 승강장으로 온다.
횡단열차 안에서의 시간은 묘한 능력을 지녔다. 남북한의 여행자들은 처음 눈을 마주쳤을 때 분단된 땅의 반대편 사람임을 알아챘다. 남북은 벽을 사이에 두고 원수로 지내왔다. 수십 년간 각자의 체제에서 언론·출판·교육·선전을 통해 상대를 부정하는 세례를 받았다. 의심과 불신의 프리즘이 장착되어 있는 셈이었다.
내 자리 맞은편 2층 침대를 차지한 북한 친구는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리며 말했다. “이제야 말하지만 남조선 분들 처음 봤을 때의 기분은 정말 뭐라 말할 수 없었습네다. 얼마나 놀랐든지.” 그것은 남한 일행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같이 밥을 먹고, 담배를 나눠 피우고 농담을 던지면서 처음에는 직업을, 다음엔 나이를, 마침내 통성명을 하면서 하나가 되었다. “가만있자, 그러니까 제가 형님이라 부르면 되갔습네다”라거나 “오래 살고 볼 일이네. 남조선 동생도 생기고. 거, 남조선 소주 한 잔 더 따라보시우, 동생!”이라고 말하며 가로놓인 장막을 걷어냈다.
백야가 만들어준 긴 낮은 대지를 달구고 기온을 올려 여행자들을 괴롭혔다. 냉방이 안 되는 객차 안의 여행자들은 수시로 흐르는 땀을 닦았다. 사람들은 동물원 우리 속의 지친 곰처럼 억지로 낮잠을 청하거나 멍하니 창밖을 봤다. 남북 화합의 현장이 된 우리 자리는 열차 안의 생활 사이클에 따라 적막이 흐르는 공간이 됐다가 북적이는 장터가 되는 걸 반복했다.
그런 순환 속에 조용히 각자의 시간을 갖고 있던 중 이제는 통성명해 이름을 알게 된 유재석(가명) 청년이 말을 걸었다. “노어 회화책 한 번만 더 볼 수 있을까요?” “아무렴요, 언제든 말씀만 하세요.” 벌써 몇 번째 회화책을 빌렸던 청년의 눈에서 내 책을 부러워하는 빛을 보았다. 내 휴대용 회화책은 서울을 떠나기 전 급하게 서점에서 구해온 책으로 방수 코팅 표지에 질 좋은 종이와 선명한 인쇄 상태를 갖추고 있었다. 물론 이 정도의 책은 남한에선 특별한 것이 아니지만 유재석 청년이 가지고 있는 북한에서 제작된 회화책과는 비교할 수 없는 품질이었다.
“이봐요, 유 동지! 그 책 갖고 싶으면 우리 서로 바꿉시다.” 나는 휴대전화에 번역 앱이 있어 책보다 유용하게 써먹고 있었고 집에는 똑같은 책이 있었다. 유재석 청년은 말도 안 된다며 거절했다. 겉보기에도 낡아빠진 책과 새 책의 차이가 분명한데 그 둘을 바꾸는 것은 염치없는 일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면서도 책을 얼마에 샀느냐고 물으며 관심을 놓지 않았다. 나는 거듭해서 재석 청년을 설득했다. “헌책이라도 상관없어요. 북한에서 만들어진 책을 기념으로 갖고 싶어서 그래요.” 청년은 한참을 고민한 끝에 자신의 낡은 로어 회화책을 넘겨주고 내 책을 받았다.
‘머리말’ 뜯고 러시아어 회화책 맞교환유재석(가명) 청년이 가지고 공부하던 러시아어 회화책. ‘인조석미장’ ‘묽은 몰탈’ 등 건설 현장에서 쓰는 용어들이 소개돼 있다.
대신 조건이 있었다. 머리말이 인쇄된 맨 앞장을 뜯는 조건이었다. 나는 그럴 수 없다고 버텼지만 재석도 완강했다. 결국 재석의 뜻대로 머리말을 뜯었다. 머리말에는 “위대한 지도자 김정일 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었다. ‘외국어 학습에서는 회화가 기본입니다’”로 시작하는 문장이 들어 있었다. 새 책을 받은 청년의 표정은 애써 감추고 있었지만 만족감으로 가득 찼다. 옆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다른 북쪽 친구가 책을 빼앗아 보면서 부러운 듯 말했다. “야, 너 이거 횡재했구만! 어케 바꿨던 거야?”
재석 청년에게서 받은 책은 가로 14.5cm, 세로 10.5cm의 크기로 주체 97년(2008년)에 외국문도서출판사가 발행한 것이다. 평양고등교육도서인쇄공장에서 만들어졌다. 종이 재질은 거친 갱지였고 재석 청년이 열심히 공부했는지 많이 낡아 있었다. 책은 건설 노동자에게 특화돼 있어 생활에 필요한 기본 어휘와 문장 외에 “묽은 몰탈, 인조석미장, 이중창문” 같은 용어들과 “작업이 끝난 즉시에 현금으로 지불해주겠습니까?” 같은 공사 현장에서 쓰는 문장들이 들어 있었다. 어쩌면 내가 준 책에 들어 있는 “호텔에서, 공항에서…”류의 내용보다 재석 청년에게 더 필요한 내용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북쪽 친구들이 비슷한 종류의 책을 가지고 있었고 서울에서 가져온 책에는 “열이 나고 머리가 아파요, 배가 심하게 아픕니다” 같은 위급 상황에 필요한 문장과 단어들이 북의 책보다 상세히 들어 있었다. 타국에서 꼭 필요한 내용일 거라고 자위했다.
차장실 벽에 매달린 온도계의 수은주가 거침없이 올라갈 즈음,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으며 남북이 또 침상에 둘러앉았다. 컵라면과 빵으로 연명해온 남북의 여행자들은 상상의 요리 시식회를 가졌다.
“남조선 분들이 ‘평양냉면’ 하면 옥류관이 최고라 하는데 사실 옥류관은 유명만 하지 맛은 별로예요. 더 맛있는 곳이 많아요.” “저는 그저 옥류관 냉면이라도 먹으면 원이 없겠네요.” “하하, 지금 뭐 아무 냉면이면 어떻습네까? 뭐라도 맛있지요.” “그럼 평양에 냉면집 유명한 데 많아요? 나중에 평양 가면 찾아가게.” “옥류관 말고도 평양냉면집 많지요. 싸고 양도 많이 주고요. 제가 있을 때 한번 오시라요. 안내해드릴게요. 동치미 얼음 육수에 겨자 살짝 풀어서리 국물 먼저 한번 쭈욱 마시고 고명으로 얹힌 고기 한 덩어리 먹은 담에 냉면 가락을 입에 넣으면 고저 더위가 싹….”
같은 자리에서 동거하는 36살의 이만수 청년이 평양냉면을 묘사하는 순간 침대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모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옥류관 말고도 맛있는 냉면집 많지요”남과 북의 여행자들은 혹여나 서로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을까 조심했다. 정치적 언급은 애써 자제했다. 그만큼 서로를 배려한 것이다. 그래도 가끔씩 의도치 않게 정치적 문제나 사회 현안 같은 주제들이 던져졌다. 이런저런 화제를 나누다가 북한 노동자 한 명이 세월호 문제를 물어보았다. 남쪽 일행은 세월호 사고를 아는 북한 노동자들이 신기했지만 세계를 강타한 비극적 사건을 아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희생된 학생과 그 가족들을 생각하면 참 안타깝죠. 남한에서는 시민들이 정부에 진상 규명과 사후 대책 마련에 적극 나서라고 시위도 하고 그래요.” “아니, 그럼 박 선생님도 데모합네까?” “예! 당연하죠. 저도 사고 당시 두 딸이 고등학생과 중학생이어서 남의 일 같지가 않았죠.”
나는 휴대전화를 뒤져 광화문의 세월호 대책위 천막과 시위 현장을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북쪽 일행 중 한 명이 관심을 보이며 말을 이었다. “와, 이렇게 혁명투쟁에 나선 분들을 보니까 더 반갑습네다.” “아이고 하하, 혁명투쟁이라뇨. 정부가 잘못할 때 시민들이 저항하는 건 민주주의의 기본적 권리잖아요.” “우리는 데모 같은 것은 상상도 못합네다. 위대한 지도자 동지가 인민들을 잘 돌봐주니까 데모할 일이 없지요.”
다른 북한 친구도 말을 거들었다. “남조선이야 당이 여러 개라 맨날 싸우고 인민들을 보살피지 않지요. 민족도 하나, 조국도 하나, 당도 하나! 우리같이 유일당의 영도력이 인민의 생활을 보장해야 하는데…. 남조선도 우리 공화국처럼 당을 하나만 가지면 좋을 텐데요.”
옆에 앉아 한참 말을 듣던 남쪽 일행이 치고 들어왔다. “좋아요, 그쪽 생각대로 남쪽에 당이 딱 하나만 있다고 칩시다. 근데 그 당이 만약 새누리당이면 어떨 거 같아요?” 또 다른 남쪽 일행의 반응이 즉각적으로 나왔다. “어휴~, 생각만 해도 끔찍해라.” 북쪽 친구는 말문이 막혔는지 머쓱한 표정으로 정리를 했다.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을 못했습네다.”
다음 정차역에 내렸을 때 열심히 주변 마을의 풍경을 향해 카메라 셔터를 난사하고 있는 나에게 남쪽 일행 중 한 명이 말을 붙였다. “형! 나, 궁금한 게 있는데… 북한 사람들은 진짜로 당이 뛰어난 영도력으로 인민들을 보살핀다고 생각하는 거야? 우리한테만 그렇게 이야기하고 속으로는 욕도 하겠지?” “난 솔직히 잘 모르겠어…. 아까 말하는 태도에는 어떤 확신 같은 것도 보였거든. 근데 사람 사는 데는 다 똑같을 거 같기도 하고.”
우상 밑에 깔려 신음하긴 마찬가지어떤 이는 김일성의 신통한 능력을 자랑하기도 했다. 기독교 신자들이 신약성서에 나오는 예수의 기적을 말할 때와 같은 달뜬 표정이었다. 김일성이 어느 마을을 지나다가 감나무를 보고 나무에 달린 감이 모두 몇 개라고 말했는데, 사람들이 실제로 수십 개의 감을 따서 세어보니 딱 맞아떨어지더라는 것이었다.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들고 나뭇잎으로 압록강을 건넜다는 기적은 익히 들어 알았지만 감나무 기적은 처음 듣는 것이었다.
호기심 많은 동자승의 표정으로 이야기를 듣다가 양해를 구하고 객실 연결 통로로 갔다. 발판 밑의 틈으로 선로의 자갈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손에 잡히는 대로 들고 나온 담뱃갑의 비닐을 벗겼다. ‘북극성’이란 담배였다.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붙이고 평소보다 깊게 들이마셨다. 식도가 꽉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타르 함량을 보니 13mg짜리다. 독한 북한 담배 중에서도 제일 센 놈을 가져왔다.
권력자를 숭배하는 북한 사람들이나 돈의 노예가 되어 발버둥치는 남한 사람들이나 우상 밑에 깔려 신음하긴 마찬가지였다. 나도 모르게 한숨 같은 연기를 내뱉으며 고개를 돌렸다. 유리창 밖 건너편 연결통로에서 차장이 인상을 쓰며 내 담배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나는 미소까지 지으며 보란 듯이 여유 있게 한 모금을 더 빨았다. 차장의 손에도 불붙은 담배가 들려 있었기 때문이다.
글·사진 박흥수 기관사·사회공공연구원 철도정책 객원연구위원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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