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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세는 몇명이었나

등록 2005-07-12 00:00 수정 2020-05-02 04:24

▣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최고 권력자 주변에는 항상 실세가 있고, 그와 관련된 모임이 존재하게 마련이다. 노무현 대통령 임기가 반환점에 근접한 현재 참여정부의 최고 실세는 누가 뭐래도 이해찬 국무총리다.
이해찬 총리가 최근 실세로 더욱 주목받게 된 것은 여권의 콘트롤 타워인 ‘11인회’의 존재가 알려졌기 때문이다. 11인회는 매주 토요일 오후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 모이는 당·정·청의 핵심인사 11명의 비공식 모임을 일컫는다. 열린우리당에서 노 대통령의 정치적 대변자인 문희상 의장, 원내 사령탑 정세균 의원, 정책위원회의장 원혜영 의원 3명, 정부쪽에서 여권의 잠재적 대권주자인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을 비롯해 정동채 문화관광부 장관, 청와대에서 문재인 민정수석, 이강철 시민사회수석, 김병준 정책실장, 조기숙 홍보수석이 참여하는 이 모임 주재자는 이해찬 총리다. 토요일마다 모여 2~3시간씩 국정 전반의 핵심 의제를 놓고 해법과 대처 방안을 모색하지만, 배석자도 없고 관련 기록도 남기지 않아 더욱 베일에 쌓여 있었다. 그러나 지난 6월24일 오후 열린 ‘11인회’에 노무현 대통령이 갑자기 나타나 ‘열린우리당·민주노동당과의 연정’ 추진 의사를 밝히면서 이 모임의 위상과 실체는 더욱 확실히 드러났다. 노 대통령은 이날 저녁 윤태영 청와대 제1부속실장에게 “내가 그 모임에 가서 할 얘기가 좀 있다”며 11인회에 불시에 참석했지만, 참여정부 임기 후반부에 정치권을 뒤흔들 만한 큰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더욱이 7월 중순부터는 새로 입각한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참석하면서 12인회로 개편될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여권 안에서는 “11인회에 들어가아 진짜 핵심”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 그곳에 가야 최고권력자의 의중과 향후 정치 일정을 정확히 꿰뚫을 수 있고 명실상부한 실세로 안팎에 공인된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이해찬 총리가 주도하는 11인회 이전에 ‘8인회’ ‘이광재 국정상황실장 중심의 연세대 3인방 모임’ 등 실세 모임의 존재 여부가 논란이 된 적이 있다.
2003년 6월에 불거진 ‘8인회’ 논란은 청와대에 공식 회의체인 수석·보좌관회의가 있지만 주요 정책과 공기업 인사 등 주요 사안을 사전 조율하는 핵심 인사 8명의 비공식 회의가 존재한다는 의혹에서 출발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문희상 비서실장·이정우 정책실장·유인태 정무수석·이병완 정무기획비서관·이광재 국정상황실장·정만호 정책상황비서관·서갑원 의전비서관·윤태영 대변인 등 8명이 매일 아침 청와대의 노 대통령 관저에 모여 주요 현안을 사전 조율한다는 것이 논란의 핵심이었다. 청와대는 당시 ‘8인 모임’의 존재를 강하게 부정했다. 8인회가 실세 모임이라면 참여정부 최고의 실세로 알려진 문재인 민정수석이 빠질 수 있었겠느냐고 항변하면서 8인회는 부정기적인 대통령 일정 조정회의일 뿐이라고 해명한 것이다. 하지만 최고 권력자와 관련된 핵심 정보로부터 소외감을 느끼는 적잖은 여권 인사들은 8인회의 존재를 사실로 여겼다.
이광재 의원이 노 대통령의 오른팔로 불리며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맡고 있던 집권 초반에는 그를 중심으로 한 ‘실세 모임’ 논란이 횡행했다. 특히 이 의원과 연세대학교 동문으로 참여정부의 검찰 개혁을 주도했던 박범계 민정2비서관, 청와대 조직 개편을 도맡았던 전기정 국정프로세스 비서관이 ‘연대 실세 3인방’으로 불리며 온갖 억측에 시달렸다. 청와대 안에서 이들의 힘을 시기하는 목소리가 높았고, 특히 정치인 출신의 한 청와대 비서관이 “밑에 있는 행정관들조차 공공연히 ‘우린 수석이나 비서관에게 보고할 필요가 없다. 광재 형한테만 보고하면 된다’고 말한다”며 “뜻있는 비서관들 사이에 이 문제를 제기하자는 논의가 있었다”고 몇몇 기자들에게 밝히면서 그 논란은 더욱 증폭됐다. 그러나 당시 국정상황실장 핵심인사들이나 박범계 민정2비서관은 “실체도 없는 억측으로 사람을 모함한다”고 해명했고, 그 실체는 확인된 바 없다.
최고 권력자 주변에서는 이렇게 고급 정보에 먼저 접근하고, 주요 정책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실세 모임의 존재가 최대의 관심사였다. 특히 정보에서 소외된 여권 인사들의 경우 실세 모임에 속하고 싶은 욕망과 소외감을 자주 표출해왔다. 그 욕망과 소외감은 어쩌면 현실정치와 권력을 작동시키는 핵심 속성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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