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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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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겁게 싸우고 심마니 된 철의 노동자

등록 2026-10-16 08:50수정 2026-10-21 10:54
김희준씨가 산에서 채취한 버섯을 들어 보이고 있다. 김희준 제공

김희준씨가 산에서 채취한 버섯을 들어 보이고 있다. 김희준 제공


강원도 원주에 사는 김희준(62)씨는 시설관리(청소) 노동자다. 아침 7시에 출근해 오후 4시에 퇴근한다. 부업은 심마니다. 주말엔 평창과 인제 일대의 산을 누빈다. 틈틈이 채소 자급용 텃밭도 일군다. 전생엔 ‘철의 노동자’였다. 그는 만도기계(HL만도) 노동조합 위원장과 민주노총 금속연맹 부위원장 등을 지낸 노동운동가 출신이다. 2026년 10월14일 오후 퇴근하는 그를 전화로 만났다.

―정년퇴직 뒤에도 여전히 바쁜 것 같다.

“2024년 12월 말 퇴직했다. 막상 퇴직하고 나니 할 게 없더라. 국민연금 수령 유예 기간은 너무 길고. 퇴직 전에 조경기능사 자격증도 따고 흙집 짓기도 배웠는데, 환갑 넘은 사람은 아예 쓰질 않더라. 실업급여가 끊긴 뒤 주중엔 청소노동자로 일하고, 주말엔 옛 동료들과 산에 가서 산삼을 캔다. 집 근처에서 텃밭도 400여 평 일구고 있다. 가끔 술도 마셔야 하고. 바쁘다, 진짜 바빠.(웃음)”

―심마니 생활 준비를 꽤 오래 했다고.

“2012년 회사가 파업을 빌미 삼아 직장폐쇄를 선언한 뒤, 기업노조를 만들어 금속노조(옛 금속연맹) 탈퇴를 전제로 조합원들을 선별 복귀시켰다. 비상대책위를 꾸려 조합원을 만나고 다녔는데, 복원이 쉽지 않았다. 그 무렵 아내의 권유로 지역 대학 평생교육원에서 약용식물관리사 교육을 받았다. 알고 보니 약초 캐러 다니는 동료가 꽤 많더라. 그때부터 주말엔 동료들과 산에 다니기 시작했다.”

―노동운동에 뛰어든 계기는.

“스무 살 때인 1984년 금형공으로 만도기계에 입사했다. 당시엔 방위산업체에서 5년간 사고 없이 근무하면 병역면제 혜택을 줬다. 조금만 찍혀도 군대에 가야 한다는 강박감이 엄청 컸다. 잔업·특근·철야 마다치 않고 코피 흘려가며 열심히 일했다. 1987년 6월 항쟁 직후 이어진 7·8·9 노동자 대투쟁 때 만도에도 노조가 만들어졌다. 당시 우리의 핵심 요구는 ‘임금 30% 인상, 두발 자유화, 인간답게 살고 싶다’ 등이었다. 병역특례 기간을 무사히 채운 뒤 노조 대의원에 출마해 당선됐다. 그때부터 노조 전면에 섰다.”

―해고 경험도 있지 않나.

“1998년 정리해고 반대 투쟁 때 노조 사무국장이었다. 노조 집행부까지 몽땅 해고됐다. 해고 3년째인 2000년 재입사 형태로 원주공장에 복직하라는 결정이 내려졌다. 민주노총 금속연맹 부위원장으로 활동하던 때여서, 임기를 마친 뒤 복직했다. 생산직으로 복귀하고 싶었는데, 회사가 공장에서 멀리 떨어진 연구소 실험실로 발령을 냈다. 자동차 부품 내구성을 테스트하면서 노동운동 전반을 되새길 수 있었던 시기다. 2005년 노조 지부장에 당선됐고, 2009년엔 민주노총 강원본부장을 맡았다.”

―퇴직을 앞두고 다시 노조위원장으로 나섰는데.

“말년에 ‘어용노조’ 한다고 조선 팔도에서 온갖 욕 다 먹었다.(웃음) 2012년 노조가 깨진 뒤 한동안 약초나 캐러 다니고 있었는데, 함께 노조활동을 했던 후배들이 ‘우리가 들어가 바꾸자’며 기업노조에 대거 가입했다. 그리고 내게 위원장 출마를 간곡히 요청했다. 어쩔 도리가 없었다. 2021년 9월 ‘어용노조 위원장’으로 당선된 직후 기업노조의 깃발과 강령부터 폐기했다. 그런데 회사가 곧바로 노조 하나를 더 만들더라. 적절히 대응도 못하고 임기만 채웠는데, 후임자가 결국 금속노조 재가입을 성사시켰다.”

―2026년 7월 에이치엘(HL)만도 경기 평택공장에서 20대 비정규직 노동자가 끼임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정규직의 위험을 비정규직에게 떠넘겼다. 너무나 안타깝다. 노조가 약해지면 회사는 안전에 대한 투자를 등한시한다. 또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덮으려고만 한다. 2012년 노조가 깨진 뒤 다수파가 된 기업노조는 조합원들에게 산재 신청 대신 치료비를 대주는 공상 처리를 선택하라고 요구하고 다녔다. 그래서 통계상으론 산재가 줄어든 것으로 나온다. 비정규직이란 제도 자체가 없어져야 한다.”

―한겨레21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퇴직한 사람으로서, 한겨레21이 젊은 세대와 우리 같은 베이비붐 세대의 가교 구실을 해주면 좋겠다. 자녀 세대와 얘기해보면, 삶의 목표부터 모든 사안에 대한 관점이 다르다. 우리 세대에겐 사회적 정의감 같은 게 중요한데, 자녀 세대는 자신과 가족 생각에만 머문다.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함께 꿈꿀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내가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는 아니고.(웃음)”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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