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모두의 팔레스타인’, 오카 마리·고야마 사토시·후지하라 다쓰시 지음, 옥창준 옮김, 서해문집 펴냄, 2026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명백히 존재하는 책임을 모두의 것으로 만들어버림으로써, 결과적으로 그 누구의 것도 아니게 만들어버리는 듯해서다. 모두에게 조금씩 잘못이 있다고, 그러니 다들 죄책감과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말은 때로 위험하다. 아주 가벼운 책임만을 나눠 짐으로써 문제를 ‘털어버리려는’ 조급함이 읽히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문제가 “우리 모두의” 것이라 선언할 때는 신중하고 조심스러워야 한다. 아랍문학과 팔레스타인 연구자인 오카 마리, 폴란드사를 전공한 고야마 사토시, 식량과 농업 정책을 중심으로 나치즘을 연구하는 후지하라 다쓰시가 함께 쓴 ‘우리 모두의 팔레스타인’(옥창준 옮김, 서해문집, 2026)이 드물게 그런 책이다. ▶세 지은이의 이력만큼이나 한국어판 추천사를 쓴 이들의 면면도 독특하다. 임지현, 한정숙, 전진성 모두 굳이 분류하자면 ‘서양사’ 전공자다.◀
세 지은이는 오늘날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 문제가 곧 ‘세계사’ 그 자체이며, 일본과 불가분하게 얽혀 있다는 점을 촘촘하고 정교하게 드러낸다. 일본의 괴뢰국인 만주국에서 영화배우로 데뷔하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중국의 전범재판에 회부되기도 했던 야마구치 요시코는 1970년대 이스라엘을 찾았다. 오랜 세월 그곳에 살아온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쫓아내고 건국한 이스라엘에서 그는 곧바로 중국인을 몰아내고 세워진 일본의 만주국을 떠올렸다.
그렇다면 한국은 우크라이나, 팔레스타인과 어떻게 연결돼야 하는가. 임지현은 추천사에서 세 지은이가 “‘제국의 지식인’이라는 위치성에 대한 통절한 비판”이 있었기에 책을 쓸 수 있었다고 평했다. 어째서인지 내게는 이 말이 세계의 다양한 지역에서 벌어지는 문제로부터 죄의식과 책임감을 가지려면 우선 ‘제국의 지식인’이어야 한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 폴란드와 팔레스타인 사이의 연결을 느끼기 위해서는 이들 모두를 조감할 수 있는 위치에 서야 한다.
▶이런 고민을 의식한 탓일까,◀ 세 지은이는 제국이나 지배자가 아닌 식민지와 피지배자의 책임 역시 중요하게 다룬다. 열강의 지배를 받던 시절, 폴란드 작가 볼레스와프 프루스는 영국이 지배하는 아프리카에 새로운 폴란드를 건설하자는 주장을 펼쳤다. 유대인의 이스라엘, 일본의 만주국과 크게 다르지 않은 ‘정착민 식민주의’였다. 실제로 1930년대 폴란드는 골치 아픈 유대인을 내보낼 후보지로 프랑스령 마다가스카르를 고려했는데, 이곳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자 차라리 폴란드인을 정착시키자는 제안이 나오기도 했다.
반대로 팔레스타인에 정착한 유대인이 처음부터 제국주의, 식민주의자였던 것은 아니다. ‘피에 젖은 땅’이라 불린 동유럽과 러시아에서 혁명운동을 했던 이들은 압제와 맞서 싸우며 혁명에는 폭력이 필수적이라는 인식을 체화해갔다. 이는 폴란드나 우크라이나 등 동유럽의 다른 민족은 물론, 지구 저 반대편 한국의 혁명가도 공유하는 생각이었다. 독립을 향한 열망과 다른 민족을 향한 폭력은 별개가 아니었다.
추천사를 쓴 임지현과 전진성이 평생 해온 이야기도 이런 것이었다. 한국의 역사가 유달리 특별하거나 비참하지 않다고, 한국 역시 지배받고 억압당한 만큼이나 지배하고 억압해왔다고, 그 점에서 한국사는 세계사라고 말이다. 이제는 연결을 말해야 한다. 오카 마리는 왜 많은 일본인이 ‘우크라이나 문제’에는 분개하는 반면 ‘팔레스타인 문제’에는 침묵하는지 질문한다. 한국의 상황은 일본과도 다르다. 팔레스타인과 우크라이나가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말할 수 있기 위해서라도, 제대로 된 연결의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유찬근 대학원생
*유찬근의 역사책 달리기는 달리기가 취미인 대학원생의 역사책 리뷰.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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