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굶주림 앞에서

2026년 7월6일 팔레스타인 땅 가자시티의 셰이크 라드완 지역에 있는 전쟁 난민 캠프에서 한 소녀가 지하 배관에서 흘러나온 물로 용기를 채우고 있다. 가자지구는 이스라엘군의 봉쇄와 검문으로 상시적인 물과 식량, 의약품 공급이 구조적으로 차단된 상태다. AFP 연합뉴스
배고파서 죽을 것 같아, 종일 쫄쫄 굶었어. 저녁 식탁을 앞에 두고 잠시 생각한다. 정말 배가 고파서 죽을 것 같은가? 그렇지 않다. 수사적인 과장이다. 그런데도 쫄쫄 굶었다고 말하는 이유는? 사랑하는 이로부터 가여워하는 눈길을 받는 게 기쁘기 때문이다. 서제인 번역가가 옮긴, 팔레스타인 작가 후삼 마루프의 글 ‘배가 고픈데 어떻게 글을 쓰지?’(How do I write when I'm hungry)를 읽고 나서, 곳곳에서 내가 쓰는 ‘배고프다’가 얼마나 넓은 단어인지를 새로 느낀다. 내가 배고프다고 말할 때 그것은 종일 힘들게 일했다는 뜻이다. 당신과의 식사를 기다렸다는 뜻이고, 당신도 이 시간을 기다렸는지 궁금했다는 뜻이고, 당신을 사랑한다는 뜻이다. 마루프가 배고프다고 말할 때 그것은 정말 배가 고프다는 뜻이다. 그가 죽어간다고 말할 때 그것은 문자 그대로 그가 죽어간다는 뜻이다.
“나는 작가다. 아니, 적어도 한때는 작가였다. 이제 굶주림은 내 모국어가 되었다. 나는 배가 고프고, 이 배고픔은 이제 언어보다도 힘이 세다. 기억보다도, 나의 인식 능력보다도, 기록하고픈 욕구보다도 강력하다. 이것은 글쓰기를 그만두겠다는 말이 아니다. 글을 아예 쓸 수 없게 되었다는 고백이다. 내게는 더 이상 나 자신을 표현할 도구가 없다. 더는 가만히 앉아 있을 몸도, 온전한 문장을 끝까지 써낼 정신도 없다.” “밀 한 톨” 들어오지 않는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에서, 작가는 글을 쓸 힘이 없을 정도로 굶주린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가까스로 적는다.
굶주림은 마루프가 사는 나라뿐만 아니라 마루프가 자신 안에 지었을 나라를 허문다. 굶주림은 굶주림을 느끼는 자의 근육과 지방을 먹고, 그의 자아를, 욕구를, 생각과 감정을, 세상을 향한 관심을, 살고자 하는 의지를 먹는다. 그는 세상에 점점 더 적게 존재한다. 나는 그런 배고픔을 모른다. ‘배고프다’는 말을 잘 몰라서 배고프다고 많이 쓸 수 있다. 나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언제 다시 배고픔을 모르게 될지가, ‘배고프다’는 말로 배고픔만을 지칭하지 않을 자유를 언제 되찾을 수 있을지가 궁금하다. 배고프다는 말에 사랑이며 그리움 따위를 담아 옮기는 저녁 식사를, 나를 나로 만드는 생각과 감정이 굶주림에 갉아먹히지 않는 자아의 상태를, 간접성과 은유라는 넓은 영토를, 먹고 마시고 소화하고 표현하고자 하는 몸을, 그 몸을 어떻게 되찾을 수 있을지를.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집단학살을 언제 멈출지를.
은유마저 전쟁 통에 죽어버렸다고 팔레스타인 작가 모함메드 엘쿠르드는 쓴다. “우리 모두가 팔레스타인인이다라는 시위 구호는 은유를 버리고 실질이 되어야 한다.”(‘완벽한 피해자’)고도 쓴다. 구호물자를 실은 배를 타고 봉쇄된 가자로 향하는,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항해는 ‘우리’와 팔레스타인인을 은유적으로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잇는 사례다. 2025년 10월, 활동가 해초가 한국인 최초로 가자구호선단에 올랐다. 2026년 5월20일에는 해초, 동현, 승준 세 활동가를 태운 배가 이스라엘군에 나포됐다. 활동가들을 ‘감옥선’에 끌려가 하루 내내 고문과 학대를 당했다. 5월28일 한국으로 돌아온 활동가들은 이스라엘군의 가혹 행위를 증언하고 이들의 만행을 규탄했다. 또 한국 정부가 표면적으로는 이스라엘을 규탄하면서도 정작 자국민을 보호할 책임을 방기했음을 지적했다.
온라인상에서는 가자로 향했던 활동가들을 향해 비난이 들끓었다. 외교부에 의해 여권 효력을 잃은 해초는 특히나 맹렬하게 공격당했다. 굶주리는 사람을 돕고 싶다면 팔레스타인까지 가지 말고 북한으로 가라는 말. 팔레스타인에 가고 싶다면 한국인이기를 포기하고 한국인으로서 보호받고 싶다면 팔레스타인에 가지 말라는 말. 좀더 온건하게는, 취지는 이해할 수 있으나 보다 대중적 공감을 살 만한 행보를 보이라는 조언까지.
이런 비난은 팔레스타인의 고통을 느낀다는 말을 감각적인 비약으로, 우리는 연결돼 있다는 구호를 수사적인 비약으로, 한국도 이스라엘의 인종학살에 가담하고 있다는 말을 논리적인 비약으로 간주한다. 이을 수 없거나 이어서는 안 되는 것을 이었다는 조롱이다. 실제로 ‘나, 강정, 그리고 가자를 잇다’라는 제목의 기사 아래에는 이런 댓글이 있다. “그만 좀 이어라.” 다른 댓글에 비하면 평이하게까지 보이는 저 댓글이 유독 보기 어려워 고개를 떨구었다. 내 양심에 나 있는 구멍에서도 저와 비슷한 소리가 들린 적이 있기 때문임을 고백한다. 그가 잇지 않았다면, 나도 잇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안전한 방에 앉아 “팔레스타인에 연대한다”고 쓰며, 은유라는 장치가 손쉽게 연장해준 기다란 팔로 나 또한 가자에 손을 뻗었다는 양 자신을 속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해초는 여기와 거기를 은유로 간편하게 잇지 않았다. 해초는 하굣길에 이스라엘군에 살해당한 17살 소녀 리나 알나불시의 이름을 딴 배를 탔다.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부끄러움을 거세당한 이스라엘군이 행하는 폭력을 견뎠다. 비약은 건너뛰는 일인데, 해초는 아무것도 건너뛰지 않았다. 해초의 실천을 통해 우리는 이런 건조한 사실을 알게 된다. 팔레스타인은 본래 시간과 자유만 있다면 날아서도 뛰어서도 갈 수 있는 곳이었다는 것, 육로가 아니라 해로를 택해야 했던 이유는 이스라엘이 육로를 봉쇄했기 때문이라는 것. 한국과 팔레스타인. 누군가의 눈에는 비약이 아니고서는 이을 수 없는 두 나라를 직접 이어본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 그들이 있기에 “우리 모두가 팔레스타인인”이라는 구호는 A와 B 사이의 차이를 건너뛰는 은유이기를 멈추고 A에서 B를 향해 나아가는 항해가 될 수 있다.
어쩌면 유일하게 은유가 아닌 방식으로 ‘배달의 민족’일 세 사람을 생각한다. 배를 타고 파도를 넘는 사람은커녕 빗길에 오토바이를 모는 사람의 고난조차 상상하기 어려운, 구조적 불평등의 부채감을 문 앞에 두는 음료수 한 캔 정도의 사적인 호의로 달래는, 터무니없이 빈약한 연결의 나라에 우리는 산다. 한국인이 정말로 밥에 진심인 나라, 혼자 밥 먹는 사람을 보면 ‘네 입만 입이냐’는 말로 핀잔 주는 나라에 산다면, 어째서 굶주리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 음식을 가지고 가려는 사람들에게 한국인이길 포기하라는 비난이 떨어지는 것일까? 비약도 과장도 없이, 살아 있는 입을 폭탄으로 터뜨리는 폭력에 대항하여, 그 입도 입이라고 말하려는 사람들에게.
안담 작가
*냉장고와 도마 앞에서 하는 생각들. 사라지고 나타나는 한 그릇의 음식에 대해 씁니다. 출출할 때 참고하세요. 4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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