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가고 혼자 남은 엄마를 위한 하루 세 끼니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강원도에서 밥을 하며 지낸다. 아빠가 가고 혼자 남은 엄마가 말라가기에 그러기로 했다. 웬만하면 가벼운 아침을 포함해 두 사람 몫의 세 끼니를 다 만든다. 밥을 하면 하루가 다 간다. 아주 중요한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느낀다. 이상한 일이다. 새삼 여태까지 내가 수도에서 일어나는 일만을 중요하게 여겨왔다는 걸 알겠다.
장을 따로 보지 않아도 냉장고에 재료가 넘친다. 집에는 냉장고가 세 대 있다. 냉장실과 냉동실로 나뉘는 양문형 냉장고가 하나, 반은 냉동실로 쓰는 김치냉장고가 하나, 허리에 못 미치는 키의 작은 냉장고가 하나. 아빠는 홈쇼핑과 인터넷쇼핑의 애호가였다. 세 냉장고가 모두 아빠가 생전에 사 모은 음식으로 꽉꽉 차 있다.
지분이 가장 높은 것은 냉동 음식이다. 나는 그렇게나 많은 음식이 얼렸다 먹을 수 있는 줄 몰랐다. 엘에이(LA)갈비·뚝배기불고기 등 양념된 고기와 고깃국, 스타 셰프의 얼굴이 포장지에 그려진 햄버그스테이크와 마녀수프, 북경오리 키트, 조기·굴비·가리비살·꼬막살·문어·순살게장·명태식해·어리굴젓 등 바다 음식 라인, 낱개로 포장된 각종 찰떡, 강릉의 유명 빵집에서 온 땅콩크림빵·육쪽마늘빵·바게트, 강릉과 원주의 유명 중식당에서 튀기기 전 상태로 포장해온 만두, 전국 유명 제과점에서 택배로 받은 단과자와 케이크, 코스트코 같은 대형마트 출신의 화이트롤과 냉동피자, 아직 다 적으려면 한참 남았다. 아빠는 좋아하는 음식이 바닥을 보이면 그때부터는 초조해서 손을 잘 못 대겠다고 말하곤 했다. 꼭 쟁여놓아야지만 비로소 마음이 편안하다고. 정작 먹을 때는 한두 입이면 물린다고 손을 들 거면서도 그랬다. 냉동실에는 아빠의 시간이 그대로 보관돼 있다. 냉동실을 열 때마다 그 음식들이 품고 있는 냉기가 젖은 얼굴로 달려든다.
한편 냉장고의 다른 칸에는 엄마가 산 신선한 채소와 곡물이 있다. 애호박, 단호박, 청오이, 꼭지를 따서 깨끗하게 씻어놓은 고당도 방울토마토, 비트, 양배추, 당근, 사과, 감자, 무, 양파와 대파, 보리, 현미, 혼합 잡곡, 강낭콩, 검은콩, 병아리콩, 팥, 옥수수. 엄마가 좋아하는 소박하고 풋풋한 음식의 밑바탕이기도 하고, 암환자인 아빠의 식습관을 개선하려 챙겨놓은 식재료이기도 하다. 아빠가 좋아하는 음식은 하나같이 암도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정상세포는 좋아하고 암세포는 싫어하는 음식을 찾기란 아주 어려웠고, 그중에서 다시 아빠가 그나마 넘길 의지를 보이는 음식을 찾기란 더 어려웠다. 암환자의 식이요법을 다룬 책을 세 권이나 샀지만 엄마는 그 책을 몇 장 쓰지 못했다. 밥을 지을 때마다 삶과 죽음을 빠듯하게 계량해야 했을 엄마가 더는 냉장고 근처에서 시간을 보내지 않았으면 해서 나는 당분간 그녀와 살기로 마음먹었다.
한동안은 찬 음식과 덜 찬 음식을 조합해 따뜻한 음식을 만들었다. 꽁꽁 언 레토르트 갈비탕에 이웃집 김치만두를 넣고 끓이다가 신선한 달걀을 풀고 파, 김, 참기름 몇 방울을 떨어뜨려 그럴듯하게 만든 만둣국. 꽁꽁 언 엘에이갈비에 물을 붓고 감자와 당근을 넉넉히 추가해 푹 끓여 만든 짜지 않은 갈비찜. 처치 곤란의 고기제품을 조금 정리하고 나서는 엄마 취향에 딱 맞춘 채소음식을 만들었다. 엄마는 뭉근한 열기로 부드럽게 무른 채소를 참 좋아한다. 방망이로 두드려 작게 쪼갠 애호박을 채 썬 양파와 함께 들기름에 볶다가 새우젓 한 스푼을 넣고 끓이면 끝나는 애호박젓국을 벌써 다섯 번이나 해먹었다. 들깨칼국수 키트에 들어 있던 짭짤한 들깨가루소스는 시금치나물에도, 무나물에도, 고비나물에도 넣어서 잘 써먹었다. 오이탕탕이와 당근라페, 양배추김샐러드도 식탁에 자주 오른다. 늘어놓고 먹기가 영 귀찮을 때는 메밀묵무침 한 접시 또는 따끈한 모두부에 김치 한 접시만 식탁에 두고도 잘만 한 끼를 때운다.
매일매일 다른 모습의 식탁을 볼 때, 목과 혀에 새로운 식감, 새로운 맛이 닿을 때, 엄마는 갑자기 운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이 재료를 이렇게도 쓰는지 몰랐어. 문어가 이렇게 부드러울 수 있는지 몰랐어. 무화과를 이렇게 예쁘게 자를 수 있는지 몰랐어. 이렇게 해주었다면 아프지 않았을까? 이렇게 해주었다면 잘 먹었을까? 엄마에게 바치는 밥인데 엄마가 자꾸 아빠 생각만 해서 억장이 무너진다. 요즘 그녀와 나는 억장은 실존한다는 말을 즐겨 쓴다. 무너진 억장을 밥으로 세운다. 그리고 또 무너진다. 모래성을 쌓고 부수듯.
아빠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먹은 밥은 내가 한 밥이었다. 엄마와 동생과 점심을 먹고 아빠의 얼굴을 보러 어두운 방으로 들어갔다. 침대로 다가서는 내 기척에 긴 잠에서 깬 아빠가 새삼 나를 반가워했다. 내가 어제부터 집에 있었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듯했다. 손을 만지작거리며 밥은 먹었느냐고 묻기에, 우리는 방금 엄마가 좋아하는 미역국에 애호박젓국에 꼬막무침까지 차려서 얼마나 잘 먹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잘했네, 너무 잘했네, 맞장구친 그는 아주 희미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나도, 차려주세요. 그때 그가 목으로 넘기려고 하는 음식은 암환자용 음료, 레몬꿀물, 포도당 사탕을 녹인 물, 이렇게 세 액체 정도가 전부였다.
곧장 부엌으로 가서 미역국에 흰밥을 풀어 미역죽을 만들었다. 믹서로 갈아야 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그가 보고 싶어 하는 건 우리가 먹었다는 그 밥, 밥 같은 밥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먹지 못해도 볼 수는 있도록 방금 전 점심식사를 그대로 차렸다. 엄마의 부축을 받아 식탁에 앉은 그는 큰 결심을 한 듯 숟가락을 꼭 쥐더니 쌀알이 다 살아 있는 미역죽을 푹푹 떠서 목으로 넘겼다. 고형의 무엇이 목구멍에 닿을 때마다 타는 듯 괴로운지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그런데도 그는 애호박젓국과 꼬막무침까지 크게 한 술씩 떠먹고 나서야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그 짧은 식사를 모두가 숨죽이고 가만히 관람했다. 얼마나 신이 났던가. 혹시 기적일까 바랐던가. 다음날 아빠는 떠났다. 먹고 싶은 만큼 먹을 수 있는 세계로. 아니면 먹고 싶음으로부터 자유로운 세계로. 나는 내가 그에게 잘해주었다고 철석같이 믿었다. 그의 영정 사진 앞에 어제의 미역죽을 올려놓으면서 다르게 말해야 함을 알았다. 내 밥을 맛있게 먹어주어서, 내게 잘해주어서 고마웠노라고 말해야 함을.
받아주는 것도 주는 거야. 나는 그런 말을 습관처럼 써왔고 그 말은 아빠에게서 왔다. 머리가 크면서는 넙죽넙죽 받으면서 생색까지 내는 사람이 될까봐 그 말을 좀 덜 쓰게 되었다. 또는 아주 확실하게 내가 주는 쪽일 때, 내 아량과 배포를 과시하기 좋은 타이밍일 때만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내 밥을 받아주는 엄마를 보면서 요즘은 그 말만이 유일하게 진실하다고 느낀다. 매일 세 번, 아침과 점심과 저녁에, 나와 닮은 여자의 입속으로 한 숟갈씩, 한 숟갈씩, 힘겹게 사라지는 무르고 푸른 채소들, 그것을 볼 때마다 가장 곱고 낮은 절을 그녀에게 올리고 싶어지기에.
안담 작가
*냉장고와 도마 앞에서 하는 생각들. 사라지고 나타나는 한 그릇의 음식에 대해 씁니다. 출출할 때 참고하세요. 4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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