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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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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2초

‘셋로그’에 올라오는 짧은 영상들, 그 안에 담긴 식사와 공부와 그리움
등록 2026-06-11 21:31 수정 2026-06-16 13:40
생성형 인공지능(AI) 챗지피티에 ‘마녀수프를 그려달라’고 입력해 만든 일러스트.

생성형 인공지능(AI) 챗지피티에 ‘마녀수프를 그려달라’고 입력해 만든 일러스트.


엄마, 점심은 먹었을까? 그것이 알고 싶어서 휴대전화를 본다. 그녀가 오후 1시 14분에 찍어 올린 2초짜리 영상 속에는 넓고 깊은 코팅 팬이 있고, 그 안에서 한 무더기의 채소와 두부 몇 점이 자작한 맹물에 잠겨 푹푹 끓고 있다. “단백질이 부족하잖아.” 나는 답장을 보낸다. “잘 보면 고기도 있음~.” 그녀는 해명한다. 말마따나 잘 보니까 불고기용으로 얇게 저민 소고기 몇 점이 언뜻 비치는 것도 같다. 그녀는 이런 심심한 채소 모둠을 질리지도 않고 연속으로 몇 끼니씩이나 먹는다. 어제는 볶았고, 오늘은 끓였다는 차이 정도. 어제는 처음부터 간장을 넣어 볶았고, 오늘은 찍어 먹을 간장을 준비했다는 차이 정도. 희멀건 채소가 조금 질리면 양배추와 닭고기가 들어간 레토르트 토마토수프를 뜯어 냄비에 붓고, 똑같은 채소를 넣고, 물도 좀더 붓고 끓여 두 배로 불려서 종일 먹는다.

엄마 오늘은 마녀수프 먹네, 내가 그랬더니 동생이 ‘미녀수프’가 뭐냐고 묻는다. 정해진(set) 시간에 영상 기록(log)을 올리기 때문에 셋로그라는, 그런데 실은 셋이 해서 셋로그라는 이 최신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정식으로 배포됐을 때, 이미지 기반의 사회관계망서비스는 전혀 하지 않는 동생과 엄마를 냉큼 끌어들인 다음 그룹 제목을 ‘미녀삼총사’로 달아버린 나는 아무래도 미녀가 먹는 수프가 미녀수프 아니겠냐고 이죽거린다. 회사 밥을 먹는 동생은 이미 낮 12시에 직원식당에 앉아 국물이 흥건한 급식 스타일의 닭갈비와 케요네즈 소스를 끼얹은 양배추샐러드, 된장국이 담긴 식판을 찍어 보냈다. 나도 내가 먹고 있는 것을 찍는다. 좋아하는 카페의 포카치아샌드위치. 그리고 그 접시를 올려다보며 침을 흘리는 나의 개. 영상은 개가 흘린 무거운 침이 넓고 보드라운 그 가슴에 뚝 떨어지기 전에 끝난다. 나의 2초, 동생의 2초, 엄마의 2초가 젠가처럼 쌓이고 우리는 더 자세한 설명을 위해 카카오톡으로 자리를 옮긴다. 문자가 성에 안 차면 삼자통화로 이어진다. 아빠가 봤으면 뭐 그리 중요하게 할 말이 많냐고 놀라워했을 것이다.

 

마녀수프와 미녀삼총사

 

지난가을 아빠가 떠났다. 아빠가 없는 세상에도 첫눈이 내리고 강물이 언다는 사실이 버티기 어려워 강원도에서 엄마와 꼭 붙어 겨울을 났다. 세상은 치가 떨리게 여전했고, 또 송두리째 바뀌었다. 나는 이번주에 ‘아빠’라는 단어를 처음 배운 사람처럼 그 단어를 남용하고, 누가 엄마나 아빠가 없다고 하면 반가움에 눈이 커진다. 서울로 돌아온 봄부터는 매일 엄마가 뭘 먹는지 알 수 없게 되었고, 그 생각에 잠기느라 사람들 사이에서 자주 멍해졌다. 그리고 셋로그가 등장했다. 엄마가 뭘 먹는지 보고 내가 뭘 먹는지 보여줄 수 있어서 요즘은 덜 운다. 오늘 뭐 먹었어? 심오하고 커다란 질문들을 다 제치고, 사랑하는 이에게는 왜 이런 싱거운 사실들이 꼬박꼬박 궁금한 걸까? 뭘 먹었다고 하든 대부분 잘했다고 대답하게 되는 그런 하나 마나 한 대화를 할 뿐이면서.

올해 초에 엄마는 돌연 한국방송통신대학원에 입학했다. 글 쓰는 첫째 딸의 까다로운 피드백을 받아 자기소개서를 퇴고할 수 있었다는 이유로 입시 비리를 저지른 것 같다며 괴로워했는데, 의외로 면접장에서 마음이 아주 편했다고 한다. 면접관인 교수에겐 흰머리가 하나도 없고, 지원자인 엄마에겐 검은 머리가 하나도 없어서 문득
쾌활해졌는지도 모른다. 자신을 다 바꾸기 어려운 나이에 진입하면 누군가에게 필요 이상으로 잘 보이려는 마음 또한 비로소 놓아주게 되는지도. 면접관의 호탕한 웃음소리를 배경으로 퇴실했다기에 그건 면접에서 가히 최고의 사인이라고들 한다고 나도 잘 모르는 소리를 지껄였다. 엄마가 은근 유머 감각이 있다니까, 내가 평했더니, 그게 아니라 나이를 많이 먹은 거야, 엄마가 대답했다.

2초씩 엿보는 그녀의 하루에는 학생답게 움직임이 거의 없다. 내가 카페에서 모카포트로 내린 오늘의 커피를 마시며 잠을 쫓고 있을 때 그녀는 리포트를 쓰고 있다. 내가 불광천을 걸으며 행복한 개의 벌어진 입과 붉은 혀를 찍고 있을 때 그녀는 리포트를 쓰고 있다. 내가 두 시간째 불광천을 걸으며 행복한 개의 벌어진 입과 붉은 혀를 찍고 있을 때 그녀는 채소찜을 먹고 잠시 졸음과 싸우다가 리포트를 쓰고 있다. 내가 친구들을 만나 시큼한 와일드비어에 오징어튀김을 곁들이고 있을 때 그녀는 리포트를 쓰고 있다. 내가 새 원고에 착수했을 때도 그녀는 여전히 리포트를 쓰고 있다. 미리 찍어둔 영상을 찍어 올릴 수 없는 프로그램인데도 몇 시간 전의 영상과 방금 찍은 영상에서 다른 점을 찾을 수가 없다. 그 시간쯤 찍힌 나와 그녀의 얼굴은 평소보다도 더 닮았다.

 

은발의 헤르미온느

 

가슴팍에 교재를 안고 안달하는 모양이 영락없는 범생이 같아서 요즘엔 그녀를 헤르미온느라고 부른다. 지난번에는 요행으로 에이(A)를 받았는데 이번 과제를 잘못하면 창피할 것 같다고, 다음주까지 제출해야하는 에세이가 4편이나 된다고, 이제 자기는 망했다고 발을 동동 구르는 이 1학년을 보고 있자면… 흐뭇해서 자꾸 웃음이 난다. 눈부신 은발의 헤르미온느 앞에서 나는 자꾸 어디서 배웠는지 모를 학부모의 말투를 쓴다. 엄마는 한 번도 그런 말투를 쓴 적이 없다. 그렇다면 대체 어디 사는 누구 엄마가 내게 깃들어 ‘그런 불안에 달뜰 수 있는 거 자체가 얼마나 복이야’ ‘나도 학교 다니고 싶다’ 같은 말을 하게 만드는 것일까.

얼마 전 그녀는 나에게 ‘비교와 대조’를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물었다. 상경해서 큰 도서관에 물든 딸들이 다 그렇듯이 나도 틈만 나면 잘난 척을 하는데, 그날은 웬걸 좀 쑥스러웠다. 논술학원에서의 기억을 끌어올려 사용한 지 오래된 목소리로 운을 뗐다. 비교든 대조든 똑같아, 다 공통점에서 출발하는 거야. 공통인 게 없으면 차이도 없어. 학생의 고개가 갸우뚱 기울어진다. 비교하려는 두 책이 청소년소설이란 것 말고는 공통점이 생각나지 않아. 나는 대답한다. 다른 사람 아니고 엄마가 읽었다는 공통점이 있잖아. 엄마한테서 출발해봐. 엄마는 뭘 느껴? 학생은 씨익 웃는다. 나는 그 표정이 뭘 뜻하는지 안다. 그건 자기가 나를 낳았다는 사실이 기쁠 때 짓는 표정이다.

 

엄마한테서 출발해봐

 

그녀가 찍는 하루의 마지막 셋로그는 거의 언제나 요가 시간이 담기고 멘트는 ‘오요완’이다. 오래전부터 이럴 줄 알았다. 그녀가 실은 ‘혼자’에 재능이 있다는 걸 알았다. 오랫동안 엄마에게 자기만의 방이 있기를 바랐다. 혼자뿐인 집에서 괴로워하기 전에 그런 일이 일어나기를 바랐다. 공부를 하니까 너무 좋아. 공부하고 있으면 혼자인 게 무섭지 않아. 그 느낌이 뭔지 나도 정확히 알아서 가슴이 아리다. 책을 오래 들여다보면 어느새 내가 사라진다. 내가 사라지므로 혼자인 것도 사라진다. 내가 책으로 들어가는지 세상이 내 뒤로 물러나는지 모르는 사이에 고통도 저 멀리 물러난다. 책 읽기가 끝나고 다시 혼자가 되면 오늘 뭐 먹었냐고 물어볼 타인이 필요해질 것이다. 나는 그때를 기다리며 여기에 있다. 그녀가 읽는 책 밖에, 그녀가 있는 사이버 강의실 문 밖에. 아빠처럼 뒷짐을 지고 그녀를 기다린다. 곧 혼자인 그녀가 내 쪽으로 걸어올 테고, 그 생각을 하면 나는 어쩐지 그녀와 처음 만나던 날처럼 심장이 뛴다.

 

안담 작가

 

*냉장고와 도마 앞에서 하는 생각들. 사라지고 나타나는 한 그릇의 음식에 대해 씁니다. 출출할 때 참고하세요. 4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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