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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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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조리는 요리사’ 최강록이 요리하는 법

만들다보면 새벽이 오는 카레… 싱거운 반복 속에서 시간은 지나가리라
등록 2026-01-22 22:52 수정 2026-01-28 06:27
최강록 셰프는 ‘흑백요리사2’ 파이널 미션에서 깨두부를 만들기 위해 팔이 떨어져라 반죽을 휘저었다. 넷플릭스 제공

최강록 셰프는 ‘흑백요리사2’ 파이널 미션에서 깨두부를 만들기 위해 팔이 떨어져라 반죽을 휘저었다. 넷플릭스 제공


 

시간이 잘 견뎌지지 않을 때는 카레를 만들곤 했다. 고형 카레를 풀어 간단하게 만드는 쉬운 카레 말고, 재료 손질부터 완성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최대한 시간이 많이 드는 방향으로 조정한 어려운 카레. 그런 카레를 만드는 일은 고형 카레에 알아서 잘 들어가 있는 재료를 하나하나 원물로 구비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강황가루, 고수씨, 큐민가루, 계피, 카다멈, 팔각, 육두구, 정향, 회향 등 카레에 말고는 도저히 쓸 일이 없을 강한 개성의 향신료들을 모아서 조합하고 있자면 부엌에서 사치스러운 냄새가 난다. 고형 카레 한 팩은 5천원도 안 하고 완성품은 더 바랄 것 없이 맛있다. 그러나 음식이 너무 빨리 만들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자정부터 만들어도 한 시간 정도면 일이 끝난다. 내게 필요한 것은 만들다보면 새벽이 오는 카레다. 눈을 감고 있다기보단 눈꺼풀 안쪽을 노려보고 있을 뿐인 밤에 박차고 일어나 만들기 시작하는 카레. 길고 춥고 지나치게 큰 시간, 단단하게 뭉쳐진 그 시간의 덩어리를 조금씩 지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카레.

칼질로 시간을 작게 작게 썰어낸다

어려운 카레 만들기의 첫 번째 스텝은 언제나 양파를, 많은 양의 양파를 썰기다. 껍질을 벗겨 반으로 가른 양파를 일정한 두께로 썰다보면 건조하고 뻑뻑한 눈에 금방 물기가 차오른다. 기름을 조금 두른 팬에 산더미같이 쌓인 양파채를 넣고 약불에서 하염없이 볶는다. 열을 받으면서 수분이 날아가고 당분을 뱉어낸 양파는 썰었던 양의 반의반도 안 되게 쪼그라들고 잼처럼 달다. 카레는 단맛을 아주 잘 품는 음식이다. 이렇게 달게 볶은 양파로 베이스를 만들고 이후에 망고나 사과, 파인애플 같은 과일을 갈아 단맛을 추가해도 좋다. 그래도 카레는 버틴다. 향신료가 워낙 강해서 추가하고 싶은 것을 몽땅 추가해도 정체성이 잘 깨지지 않는다. 작정하고 카레를 만들 때는 갖은 재료 때문에 부엌이 좁게 느껴진다. 어둑한 부엌에서 양파, 셀러리, 당근, 토마토, 버섯 등에 칼을 대다보면 시간이 참 잘 간다. 칼질은 시간을 작게 작게 나눠준다. 소화할 수 있을 만한 크기로.

그런 카레를 만들 때는 요리사 최강록의 영상을 참고한다. 최강록은 음식을 하는 데 시간을 많이 쓰기로 유명하다. 그를 따라 카레를 하려면 네댓 시간은 족히 걸린다. 나는 최강록의 영상을 틀어놓고, 그의 레시피를 내 맘대로 바꿔가며 카레를 만든다. 그는 영상에서 이 레시피를 ‘아무도 안 따라 할 것을 전제로’ 소개한다고 밝혔다. 그대로 따라 하고 싶어도 그러기 어렵다고 표현해야 할 것이다. 시간이 없어서뿐만 아니라, 전문 요리사인 그의 스킬을 일반인이 그대로 따라 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맛있는 한 끼를 만들 수 있는 레시피 영상이 유튜브 세계에는 즐비하다. 그러니 최강록의 유튜브는 음식을 하기 위해 찾는다기보다는, 음식을 그렇게까지 해야만 하는 요리사 최강록을 보기 위해 찾는 채널이라고 하겠다.

꼭 카레를 만들지 않더라도 최강록이 등장하는 영상을 보는 일은 즐겁다. 2013년 ‘마스터셰프 코리아2’에서 우승을 거머쥔 최강록의 스타성을 방송계는 사랑했다. 음식을 향한 고집스러운 순정, 듣는 이의 애간장을 다 태우는 독특한 화법, 자신을 증명하려 경연을 선택했을 텐데도 우승자가 된 뒤 받게 된 주목과 관심에서 멀리 도망가길 반복하는 알 수 없는 행보, 그럼에도 나오는 프로그램마다 유행어를 만들고 떠나는 성실함까지.

“시간이 지나갑니다”라는 응원

끝나지 않는 최강록의 어록 또는 밈 리스트가 증명하듯이, 사람들은 최강록의 말솜씨를 좋아한다. 그의 말은 느리다. 단어와 단어 사이의 공백이 길고, 망설임이 그대로 반영된 감탄사(음, 어, 예)가 자주 섞인다. 말의 공백마다 사전을 펼치는 게 아닐까 싶다. 고심 끝에 고른 단어들은 최초의 선택보다 쉽고 적절하되 듣는 이의 예측을 조금 벗어난다. 흔히 최강록이 ‘말을 잘 못한다’고 표현하지만 사실 그는 달변가다. 달변을 마치는 데 시간이 걸릴 뿐이다. 그는 말의 앞과 뒤가 맞게 하는 데, 말의 논리를 갖추고 오류를 적게 하는 데 큰 신경을 쓰는 듯이 보인다. 그러다보면 그의 말은 너무 지당하다 못해 동어반복에 가까워지기도 한다.

그의 숱한 어록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장에도 이런 동어반복적인 미가 있다. “최강록 지나갑니다”로 검색하면 바로 볼 수 있는 ‘마스터셰프 코리아2’의 한 장면이다. 탈락자를 가리는 경연에서 면제된 최강록은 홀로 스튜디오 2층으로 올라간다. 거기서 탈락 배틀을 펼치는 다른 참가자들을 가만히 내려다본다. 경연이 35분밖에 남지 않았다는 심사위원의 안내가 들리자, 그는 고군분투하는 동료들을 향해 큰 결심을 한 듯 외친다. “자, 지나갑니다. 파이팅!” 심사위원 강레오가 최강록에게 “뭐가 지나갑니까?”라고 묻자 최강록은 이렇게 대답한다. “시간이 지나갑니다.” 당연해서 허탈한, 응원인지 압박인지 모를 그의 말에 사람들은 웃음을 터뜨린다. 한 참가자는 웃으며 중얼거린다. “시간이 지나갑니다, 우리도 알아.”

모두가 안다. 시간이 지나간다는 사실을. 짧은 시간 안에 음식을 완성하고 탈락을 피하기 위해 촌각을 다투는 요리 서바이벌의 참가자라면 더욱더 그 사실을 체감하지 않을까? 그런데도 그는 그런 지당한 사실을 구태여 알려주는 응원법을 택했다. 그 말이 최강록 자신에게는 위안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응원하고 싶었을 누군가를 그려본다. 시간이 지나간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좀 나아지는 누군가. 거꾸로 말해 시간이 지나가지 않을까봐 힘들어하는 누군가.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그가 시간을 견디기가 어려워서 그렇게나 시간이 많이 드는 음식을 하는 게 아닐까 하는 혼자만의 추측을 해왔다. 최강록이 만든 명장면이야 손에 꼽을 수도 없이 많지만, 내 경우는 그 말 때문에 그를 응원하는 사람이 되었다.

‘깨두부’라는 동어반복

얼마 전 최강록은 ‘흑백요리사2’에서 또다시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파이널 미션에서 자신을 대표하는 조리 기술인 ‘조림’을 내려놓고 따끈한 우동국물을 부은 깨두부를 선보였다. 그러나 조림만이 시간을 쓰는 요리는 아니었다. 깨두부 역시 시간과 힘을 많이 쓰는 음식이라는 점에서 최강록은 한결같았다. 그는 우승 소감에서 자신은 “모든 요리사들이 주방에서 그냥 티 나지 않게 하고 있는 일들을 반복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요리 경연에서 두 번이나 우승한 사람이 할 말로서는 과하게 겸손하달 수도 있지만, 나는 그 말의 당연함이, 동어반복을 가능케 하는 확장이 좋았다.

최강록은 요리사이고 요리사는 요리하는 사람이다. ‘흑백요리사’에서 요리하는 사람이 우승했다. 밍밍한 사실들의 나열일 뿐인데 뒤쪽으로 갈수록 최강록의 얼굴은 지워지고 음식 하는 모든 이의 얼굴이 담기는 신기한 문장이다. 요리사 최강록에게 이 영광이 최강록의 것이 아닌 요리하는 사람의 것임이 중요해 보여서, 새삼 걸쭉하고 뜨거운 깨두부를 팔이 떨어져라 휘젓고 있는 이름 모를 사람들을 생각하게 됐다. 그들에게도 시간이 지나가길 바라게 됐다. 방금 잘랐듯이 또 자르는 반복 속에서, 그런 싱거운 반복 속에서, 모두에게 기어이 시간이 지나가리라고.

 

안담 작가

 

*냉장고와 도마 앞에서 하는 생각들. 사라지고 나타나는 한 그릇의 음식에 대해 씁니다. 출출할 때 참고하세요. 4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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