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잡채
7월 어느 날, 아흔다섯 살 희옥(가명)의 새집에서 예순네 살 향(가명)은 오후 내내 잡채를 만들었다. 입이 짧은 희옥이 향이 만든 음식만큼은 자꾸 찾기 때문에, 희옥의 집에 들르는 날 향은 음식을 넉넉히 만들어두고 나온다. 볶을 재료가 많은 요리를 하느라 얼굴이 달아오른 향을 쫓아서 나도 거들 게 없는지 살폈다. 잘 보니 달걀지단은 아직인 것 같길래 젓가락과 달걀을 꺼내 빠르게 지단을 부쳤다. 마음이 급해서 불을 세게 올리고 기름을 덜 닦아냈더니 샛노래야 할 지단에 구움 색이 과하게 들었다. 반대편은 봐줄 만해서 빠르게 뒤집다가 기어코 중간을 찢어먹었다. 얼른 채로 썰고 감쪽같다고 우겼다.
손이 놀 때마다 나의 엄마이자 희옥의 딸인 향을 물끄러미 보았다. 지난해부터 희옥이 향을 도둑으로 몰아세우며 악담한 날이 얼마나 많았나. 돈을, 통장을, 보석을, 화장품을 훔쳐간 도둑으로 의심받은 일을 잠시 묻은 채 잡채를 볶는 사람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향이 잡채를 만드는 방식은 내가 아는 방식보다 좀더 수고롭다. 당면은 불렸다가, 삶아서 건지고, 마지막에 양념과 함께 볶는 세 단계를 거쳐 푹 퍼지게 익힌다. 잡채의 고운 색을 책임지는 달걀지단과 시금치나물은 많이 만들어서 따로 보관했다가 잡채를 먹을 때마다 한 움큼씩 추가해 섞는다. 길쭉길쭉 손질한 양파, 당근, 피망, 표고버섯, 소고기를 하나하나 따로 볶는다. 부드러운 재료를 조금 나중에 넣는 식으로 한꺼번에 볶아도 큰 차이가 없지 않냐고 볼멘소리를 해보아도, 향은 재료마다 적절한 익힘 정도를 맞출 자신이 없어서 이편이 더 편하다고 했다. 돌이켜보니 나는 영락없이 부아를 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는 여름, 그 잡채에 자꾸만 더 많은 정성이 들어가는 일이 내심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희옥은 최근 경기 고양시 일산의 한 아파트로 이사했다. 몸과 정신이 눈에 띄게 쇠약해진 희옥을 딸들이 좀더 자주 보살필 수 있도록 손쓴 결과였다. 희옥은 낙담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울 한복판 좋은 아파트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았는데, 내가 무슨 죄를 지어 이런 허름한 촌구석에 와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며 희옥은 서럽게 울었다. 킨텍스역 바로 옆에 붙은 초고층 아파트로 이사할 수 있었던 부자 할머니가 마치 유배라도 당했다는 듯 통곡하는 소리가 도무지 곱게 들리지 않았다. 이토록 많이 가진 노인에게 세상이 뭘 더 줄 의무가 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지난해부터 희옥은 집에서 찾을 수 없는 금품을 두고 향을 의심했다. 희옥은 향을 도둑으로 지목하며 여러 이유를 댔고, 그 이유란 향의 모든 삶의 궤적이었다. 희옥이 허락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해 부모와 절연하고 강원도로 가버린 것, 거기서 추위와 빈곤을 견디며 산 것, 그런 고생을 하고도 희옥에게 잘못했다고 빌지 않은 것, 그 모든 것이 향이 도둑인 이유가 됐다. 가족들이 희옥의 치매를 더 일찍 의심하지 못했던 이유는, 희옥의 폭언이 참으로 희옥다웠기 때문이기도 했다. 탐욕을 부리는 희옥, 화가 머리끝까지 뻗친 희옥, 폭력적인 희옥, 그중 어떤 희옥도 이상한 희옥이 아니었으므로 향은 그 모든 말을 환자가 하는 말이 아니라 엄마가 하는 말로서 들었다. 나중에야 치매의 대표적 증상으로 도둑 망상이 꼽힌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이미 들어버린 말과 이미 받아버린 상처는 그게 병일 가능성을 알았다고 해서 사라지기는 어려웠다. 성격과 증상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엄마의 학대에 맞서는 딸과 엄마의 병증을 구박하는 딸은 얼마나 같고 얼마나 다른가?
희옥이 치매일 수도 있음을 인지한 후 망연해진 향을 보면서 십 대 시절부터 꾸준히 꾼 꿈이 떠올랐다. 도무지 사랑할 수 없는 무엇을 사랑해야만 하는 꿈. 어여쁘지도 보드랍지도 착하지도 않은 무엇을 필사적으로 살려내야 하는 꿈. 아픈 아버지를 보러 가기를 두려워하며 “내가 증오한 것은 폐허가 아니었다”고 썼다던 제임스 볼드윈의 문장이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가슴에 와서 박혔다. 폐허를 향해 사과하라고 물을 수 있는가? 귀엽고 순한 인간만 타인의 돌봄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모두가 타인의 돌봄이 필요하다. 노인 돌봄은 자주 가족이 아니고는 못할 일로 말해진다. 그러나 동시에 가족이기 때문에 주고받기가 훨씬 어려운 사랑도 있다. 어떤 인내는 오직 맥락도 사정도 다 모르는 타인에게만 발휘할 수 있다. 역사가 있어 가능한 돌봄, 역사가 없어 가능한 돌봄, 우리가 살고 죽는 데는 그 전부가 필요하다.
기나긴 잡채의 날, 늘 파삭하게 말라 있던 희옥의 얼굴에 발그스름한 생기를 준 것은 향도 나도 아니고 희옥을 처음 만난 손주사위들이었다. 나와 향은 사는 내내 듣고 또 들은 이야기, 희옥이 잘나갈 적의 이야기를 손주사위들은 전래동화처럼 재미있게 들었다. 희옥에게 공감하고 희옥의 마음을 위로하는 일이 그들에게는 쉽고 편안해 보였다. 손주사위들은 내가 만나보지 못한 유쾌하고 발랄한 희옥, 그런 희옥을 만나고 있었다.
얼마 전 번역가이자 요양보호사인 이은주 작가가 쓴 ‘나는 신들의 요양보호사입니다’의 한 부분을 읽다가 오래 멈추었다. 작가는 자신이 일하는 요양원의 한 할머니, 그의 언어로는 한 “뮤즈”와 보낸 추석에 대해 쓴다. 명절에도 혼자인 한 할머니가 침대에 걸터앉아 배고파하기에 요양보호사들의 간식으로 제공된 한과를 한 개 가져다주었다.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한과 하나를 다 먹은 할머니는 그만 그게 너무 아까워서 운다. “단 하나의 한과. 입에서 살살 녹는 한과의 맛이 너무 좋은데 그만 다 먹어버린 슬픔이 눈물이 되어 뮤즈의 뺨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작가는 맛좋은 한과 하나를 두고 할머니의 1년을 깊이 꿰뚫어본다. 명절에만 먹는 음식, 귀하고 특별한 음식과 오랜 세월 멀어져온 할머니의 마음을 헤아린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맛이란 이런 거구나. 눈물이 날 정도로, 금방 삼킨 것을 아까워할 정도구나. 미각만큼은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있구나.”
뮤즈의 자리에 희옥을 넣어 상상하느라 다음 장으로 넘어가지 못했다. 희옥과 내가 서로의 사정을 모르고 만나는 중이라고 상상했다. 난생처음 희옥이 좋아하는 단맛을 그려보았다. 나는 여태 못 보았으나 작가라면 볼 수 있을 희옥, 가엽고 사랑스럽고 유머러스한 희옥, 잡채와 인절미를 달게 삼키는 기특하고 씩씩한 희옥, 그런 희옥이 너무 만나고 싶어서 조용히 울었다.
글·사진 안담 작가
*냉장고와 도마 앞에서 하는 생각들. 사라지고 나타나는 한 그릇의 음식에 대해 씁니다. 출출할 때 참고하세요. 4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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