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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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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의 끝, 텃밭의 밥도둑들

가을농사 앞둔 밭에서 자란 양배추, 깻잎, 호박잎이 선사하는 ‘천상의 맛’
등록 2026-09-05 09:06 수정 2026-09-06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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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고양 편

베어낸 풀을 긁어내 밭 가장자리로 옮겨 쌓았다. 손수레 5대분이 수북하다.

베어낸 풀을 긁어내 밭 가장자리로 옮겨 쌓았다. 손수레 5대분이 수북하다.


가을의 문턱이라는 입추(8월7일)가 한참 전에 지났다. 더위가 물러간다는 처서(8월23일)도 휙 지나갔다. 한낮 기온은 여전히 30도를 넘나든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고 했던가? 주말농장 낮은 언덕 주변에선 산모기가 여전히 극성이다. 지독하다, 올여름.

무더위 피해 ‘냉면 회동’은 했지만, 텃밭에서 동무들이 모두 모인 게 언젠지 모르겠다. 더위가 본격화하면서 텃밭에 가는 것 자체가 고행이 됐다. 잠깐 들러 토마토, 고추, 가지, 깻잎, 오이, 호박 따위를 수확하곤 부리나케 도망 나오는 게 여름의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텃밭에 머무는 시간이 짧아질수록 풀은 한껏 키를 키우고 세를 넓혔다. 작물이 안 보일 정도로 자라난 풀은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만 베어내며 겨우겨우 여름을 났다.

밤사이 기온이 내려가 풀잎에 이슬이 맺히기 시작한다는 백로(9월7일)가 성큼 다가왔다. 그 전에 가을농사 채비를 끝내야 한다. 시작은 제초다. 충전식 전동 예초기는 한껏 자란 풀을 베어내는 데 한계가 있었다. 기세 좋게 날이 돌긴 했지만, 관목처럼 무성히 자라난 풀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답은 하나뿐이다. 시동이 안 걸려 창고에 방치해 둔 4행정 엔진을 장착한 연료식 예초기를 고쳐 쓰기로 했다. 웬만한 충전식 예초기 가격보다 비싼 수리비가 들었지만, 오래 사용했던 예초기가 되살아나니 반가운 마음까지 들었다. 동무들은 이 녀석을 ‘벤츠’라 부른다.

두 주에 걸쳐 제초작업을 하기로 했다. 웨에에에엥~, 경쾌하게 돌아가는 예초기 소리에 매미 우는 소리가 묻혔다. 밭장이 텃밭 들머리부터 밭고랑 하나씩 차근차근 풀을 벤다. 쌓인 풀을 부지런히 긁어냈다. 작업 시작 10분도 안 돼 얼굴이 온통 땀범벅이 됐다. 봄에 혼합 쌈채소 씨앗 뿌린 고랑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건 양배추다. 양배추는 결구를 짓기 전 잎을 따서 물에 데치듯 삶아 강된장 얹어 쌈으로 즐기면 가히 ‘천상의 맛’이다. 고심 끝에 밭고랑 한가운데를 차지한 양배추는 살려두기로 했다.

심지도 않았는데 텃밭 곳곳에서 씩씩하게 자라난 깻잎 앞에서 다시 예초기 시동을 껐다. 크든 작든 텃밭 깻잎은 시장에서 파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향이 좋다. 아직 꽃대를 올리지 않았으니 몇 주 더 쌈으로 즐길 수 있으리라. 그렇다고 군데군데 멋대로 자란 녀석들을 다 살릴 순 없는 노릇이다. 고랑 가장자리에 있는 깻잎은 살리고, 한가운데를 차지한 건 베어내기로 했다. 베어낸 것도 그냥 버리지 않는다. 달린 깻잎을 모두 훑으니 양이 제법 됐다. 끓는 물에 데쳐 물을 꽉 짜낸 뒤, 참기름 두르고 마늘 추가해 볶는다. 국간장으로 간하고 깨소금 훌훌 뿌려 접시에 담아내면 특유의 향이 코를 자극한다. 밥도둑 깻잎볶음 완성이다.

여름 텃밭의 ‘비기’는 뭐니 뭐니 해도 호박잎이다. 땀 뻘뻘 흘리며 풀 잡은 뒤 숭덩숭덩 호박잎을 갈무리했다. 대충 씻어 끓는 물에 데쳤다. 흐르는 물에 헹궈낸 뒤 물기를 꽉 짰다. 크기 적당한 건 쌈으로 즐긴다. 너무 크거나 작은 건 잘게 썬다. 된장 한 숟가락, 중멸치 한 움큼에 삶은 호박잎 듬뿍 넣고 끓인다. 소분해 얼려둔 우렁이살도 한 주먹 넣으면 금상첨화다. 펄펄 끓기 시작하면 파 송송 마늘 탁! 약이 오를 대로 오른 텃밭 고추까지 곁들이니 풀 베느라 노곤해진 몸에 아연 생기가 돈다. 밥 두 공기 뚝딱이다.

글·사진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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