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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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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농사꾼도 ‘미기후’에 대비할 때

까맣게 져버린 해바라기, 시든 푸성귀… 더위에 광합성 멈춘 작물들
등록 2026-08-27 22:36 수정 2026-09-02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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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광주 강진 편

마당에 둔 몇 개의 화분 가운데 가지만 살아남았다. 더운 날씨에 화분의 작물들은 매일 물을 주지 않으면 금방 시들어 죽는다.

마당에 둔 몇 개의 화분 가운데 가지만 살아남았다. 더운 날씨에 화분의 작물들은 매일 물을 주지 않으면 금방 시들어 죽는다.


몇 주 동안 이어진 폭염에 거의 반쯤 정신이 나가 있던 것 같다. 자연스레 텃밭에 나가는 횟수도 뜸해졌다. 활활 타오르는 듯한 바깥 날씨에 텃밭에 나가는 게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 돼버렸다. 집 옆 마을회관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이나 ‘폭염주의’ 안내방송이 흘러나온다. 더위에 지친 개들은 쩌렁쩌렁 울려대는 안내방송에 ‘하울링’하는 것도 그만두고 마당 한구석 그늘에 드러누워 도통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다른 지역에 갈 일이 생겨 2주 동안 둘러보지 못한 텃밭을 방문했다. 텃밭에 가려고 긴 옷을 입었을 뿐인데, 그 자리에서 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올해 거의 비가 오지 않아서인지 작물들은 멀칭해놓은 잎들 아래 고인 습기로만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한편에 심어놓은 테디베어해바라기(겹해바라기)는 꽃이 피는 것도 보지 못했는데 이미 까맣게 져 있었다. 푸성귀들은 시든 채 줄기가 우뚝 솟아 꽃대를 올린 지 오래고, 그새 온갖 잡초가 사방을 둘러 가슴 높이만큼 자라 있다. 비교적 높은 온도에 강한 토마토와 같은 가지과 식물 등이 폭염에 나름대로 잘 버티고 있는 게 용했다. 콩과 식물이나 강하게 살아남았지, 텃밭 작물 대부분은 더위와 잡초와 곤충에게 거의 잡아먹힌 듯한 모양새였다.

식물들 나름대로 더위에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일정 온도가 넘어가면 그건 완전 다른 이야기다. 야외 기온이 35℃가 넘어가면 고온 스트레스가 발생해 광합성을 감소시키거나, 식물 세포가 손상될 위험이 커진다고 한다. 생장 능력이 떨어지면 식물이 그야말로 일을 멈추는 것이니 폭염이 덮치는 밭에 뭔가 대책이 필요하다.

2026년 유럽 전역에서 폭염으로 인한 사상자가 3만 명에 육박한다고 한다. 어디 유럽뿐이겠는가. 가끔 주변에서 누군가 한낮에 바깥에서 일하다 고온에 쓰러져서 깨어나지 못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매년 여름이 되면 익숙하면서도 매번 새로운 기록을 경신하는 낯선 폭염 앞에서 참으로 속수무책이다.

그 어느 때보다 대비하기 힘든 온도에 두려움이 앞선다. 몇 개월 동안 공들인 밭이 물거품이 될까봐 두렵기도 하지만, 농사일로 수익을 내야 하는 많은 농부의 근심에 공감되기 때문이다. 농부가 결국 농사를 포기하는 순간이야말로 진짜 위기가 아닐까.

온도를 낮출 방법은 정말 없을까? 전 지구적으로 제도적인 문제가 먼저 정비돼야 겨우 가능한 일일까? 언젠가 책에서 보았던 ‘미기후’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미기후란 아주 좁은 지역의 특수한 기후를 정의하는 말이다. 내년 봄이 되면 밭에 키가 큰 나무를 심거나 강렬한 햇빛을 가로막을 만한 차단막을 설치해보면 어떨까 싶다. 지면에 그대로 흡수되는 온도를 조금이나마 낮춰준다면 작물 피해를 조금 줄일 수 있을 것도 같다. 작물 특성에 따라 심는 공간의 구성을 조금 바꾸는 방법도 고려해봐야겠다. 내년 여름이 오기 전에 텃밭 한구석에 작은 온실을 만들어볼까 싶었는데,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동안 이런저런 실험을 이어가야 할 것 같다.

글·사진 이지은 패브릭·그래픽 스튜디오 ‘달리오로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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