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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농사의 시작, 예쁘게 쌓아올린 저 퇴비를 보라

퇴비 넣고 땅 뒤집어 배추·상추·무 심을 준비
등록 2026-09-10 22:20수정 2026-09-16 17:42

―경기 고양 편

동무들과 손수레를 이용해 가을 농사용 퇴비 50포대를 옮겨 쌓았다. 독자 박준우씨 제공

동무들과 손수레를 이용해 가을 농사용 퇴비 50포대를 옮겨 쌓았다. 독자 박준우씨 제공


늦더라도 계절은 결국 바뀐다. 한낮 햇볕은 여전히 따갑지만, 에어컨을 켜지 않고 잠자리에 들 수 있게 됐다. 백로(9월7일)가 지났으니 비가 내리지 않아도 아침 이슬이 밭에 생명력을 더해줄 게다. 다음 절기는 낮과 밤의 길이가 역전되는 추분(9월23일)이다. 예년보다 보름 이상 늦은 가을농사 채비를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9월 첫 주말 오후, 동무 넷이 텃밭에 모였다. 일주일 전 진땀 빼며 예초기를 돌렸는데도, 밭고랑 군데군데 풀이 고개를 빳빳하게 세우고 있었다. 퇴비 넣어 뒤집기 전에 정리를 한 번 더 해야 할 듯싶다. 밭장이 다시 예초기를 들고나왔다. 햇살은 강했지만, 살랑살랑 바람이 불어주니 제법 움직일 만했다. 오랜만에 기둥을 세워 평상에 방치해둔 그늘막(타프)을 펼쳤다.

최근 인도네시아 발리 여행을 다녀온 큰형은 일이 생겨 나오지 못했다. 대신 발리에서 모셔온 전통주 아락(쌀이나 야자 수액으로 빚는 증류주)을 인편으로 보냈다. 500㎖ 생수병에 든 아락은 영롱했다. 아파트 단지 대형폐기물 버리는 곳에서 ‘득템’한 캠핑용 아이스박스를 평상에 척 올렸다. 그동안은 밭장이 어느 해 여름 맥주회사의 휴가철 경품으로 얻어온 캔맥주 담는 소형 아이스백이 텃밭의 미니냉장고 노릇을 했다. 그에 비해 오늘 주워온 아이스박스는 양문형 냉장고 수준이다. 밭장이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는다.

예초기가 돌아가니 밭이 금세 말끔해졌다. 무릎 수술 뒤 회복 중인 옛 밭장은 몸이 근질근질한 눈치다. 땀 닦느라 잠깐 내려놓은 예초기를 훌쩍 등에 걸치더니 밭 가장자리 낮은 언덕으로 돌진한다. 그가 예초기를 좌우로 힘차게 흔들 때마다 껑충하게 자란 풀이 우수수 쓰러진다. 흡사 장판파의 장비를 보는 것 같다. 키 큰 풀과 칡넝쿨로 빽빽했던 언덕이 훤해졌다.

“왔어요~.” 밭 들머리에서 트럭 기사님이 부르신다. 능곡 종묘상에 주문한 퇴비가 도착했다. 연초록 농협퇴비가 아닌 허연 ‘사제품’이다. 농협퇴비는 봄철에만 받을 수 있단다. 20㎏짜리 50포대, 주차장에서 밭까지 날라야 할 무게가 1t이다. 3년 전 호기롭게 100포대(2t)를 주문했다가 텃밭 동무 모두 사나흘 앓고 난 뒤부터 퇴비는 ‘배달 가능한 최소량’만 주문하게 됐다. 예전엔 밭까지 한 포씩 안아 날랐는데, 이번엔 손수레를 이용했다. 숨이 살짝 차오를 무렵 퇴비 50포대가 밭 귀퉁이에 예쁘게 쌓였다.

퇴비까지 충분히 들여놨으니, 이제 퇴비를 넣어 땅 뒤집는 일만 남았다. 올해는 배추 모종을 100주만 넣기로 했다. 좁은가슴잎벌레의 공세로 텃밭 배추로 김장하는 게 갈수록 어려워진다. 클 만큼 크면 수확해 신문지로 둘둘 말아 베란다에 두고 겨우내 알배추처럼 즐기는 수준에 만족하게 됐다. 지난해 가을엔 제충국을 열심히 뿌려준 덕에 해충 피해를 조금은 줄일 수 있었다. 그래도 김장은 절임배추를 사서 했다.

올가을엔 배추와 배추 사이에 돌산갓을 섞어 뿌려볼 참이다. 향이 강한 돌산갓이 천연 해충 기피제가 될 수 있을지 궁금해서다. 무는 지난해처럼 모종을 내기로 했다. 동시에 씨앗도 뿌려야겠다. 파종한 무는 수확철이 되면 조금 큰 총각무 정도까지는 자라줄 것이다. 잘 절여 남은 김장양념으로 아무렇게나 비벼 통에 담아 익히면, 한동안 라면 물 자주 끓이게 된다. 그렇지, 가을 상추 모종도 내야지. 종묘상이 몰린 양주화훼단지엔 가을이 성큼 다가와 있을 터다.

 

글·사진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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