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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생에는 내가 엄마의 엄마가 되어줄게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의 기록②— 채운(가명)씨 인터뷰
등록 2026-01-22 22:10 수정 2026-01-28 17:25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 채운(가명)씨의 딸이 할머니를 위해 그린 그림. 채운 제공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 채운(가명)씨의 딸이 할머니를 위해 그린 그림. 채운 제공


엄마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싶단 생각을 했어요. 너무 갑작스럽게 사라져버렸으니까. 뭐라도 하지 않으면 미치겠더라고요. 적어도 하루에 한 가지는 ‘엄마를 위해 했다’는 게 꼭 하나는 있어야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어요. 그 가운데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이 글로 엄마의 흔적을 남기는 거였어요.

저는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나 살다가 20살 때 서울로 와 쭉 살고 있어요. 전남 무안공항이 멀지만 유가족협의회 총회 때는 꼭 참석하고 있고, 그러다보니 한 달에 한 번 정도 가는 것 같아요. 아버지는 연세가 좀 있으셔서 이 사고를 마주하는 게 힘드신 것 같아요. 이별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연약해지신 상태라 저도 굳이 아버지한테 무안공항에 간 얘기를 많이 안 하고 있어요.

사고가 있었던 날은 시집 식구 모임이 있는 날이라 아침부터 되게 분주했어요. 화장대에서 습관처럼 뉴스를 보는데, 비행기 사고 뉴스가 나오더라고요. 갑자기 새언니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어머님 가신 비행기가 무안으로 도착하는 비행기냐고. “뉴스 한번 봐보실래요?” 하는데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들더라고요. 그 순간 정말 머리가 하얘져서 땅바닥에 주저앉아 정신을 약간 잃었어요. 남편이 옆에서 “정신 차리고 공항으로 바로 가야 한다”고 해서 남편한테 끌려가다시피 차에 태워졌던 것 같아요.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 고통’이란 말은 비유라 생각했는데, 그때 처음 알았어요. 문자 그대로 가슴이 찢어진다는 걸.

 

1.

엄마가 제 아이를 10년간 키워주셨거든요. 여행 가는 걸 되게 좋아하셨는데 우리 아이 키워주시느라 여행을 마음껏 못 다니다가, 아이가 어느 정도 크고 나서 육아에서 졸업하셨어요. 그래서 여행을 좀 신나게 다니신 게 한 2, 3년 된 것 같아요. 엄마가 육아를 졸업하고 광주로 가던 마지막 날, 딸아이가 ‘할머니 이제 여행 실컷 다니라’고 그려준 카드가 있는데 엄마는 지갑 속에 그걸 넣어두고 친구들한테 자랑을 많이 하셨대요. 엄마와 저는 친구 같은 사이였어요. 좋은 걸 보거나 맛있는 걸 먹거나 하면 ‘다음에 엄마 모시고 와야겠다’ 이런 생각을 10년간 습관처럼 했고요.

엄마는 진짜 ‘대문자 E’(외향적 성격을 나타내는 말)셨어요.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부럽고 멋있고, 엄마를 닮고 싶었어요. 엄마는 친구도 많았고 어딜 가나 친구를 사귀셨어요. 저는 직장 일을 하느라 아이 친구 엄마들이랑 사귀지를 못하잖아요. 그러면 우리 엄마가 딸아이 어린이집 친구 엄마들이 놀이터에 모여 있으면 가서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시고는, 그분들 연락처를 받아 저한테 주실 정도였어요. 엄마가 되게 ‘인싸’라 우리 집에 계시면서 아이 키워주시는 동안에도 항상 휴대전화로 통화도 많이 하시고, 전화로 주말에 광주 가서 놀 계획을 짜느라 블루투스 이어폰을 귀에 거의 끼고 사셨어요.

엄마가 너무 자랑스러웠어요. 엄마는 1953년생인데, 그 시절에 전남 장성이란 곳에서 태어난 여성의 삶이라는 게 당연히 교육이나 사회적 기회 같은 게 없었고, 너무 평범한 한 가정의 아내이자 엄마로서의 삶을 사셨죠. 엄마는 저랑 똑같은 여건과 기회만 주어졌다면 정말 큰일을 하고도 남았을 만큼 굉장히 지혜롭고 똑똑한 분이셨어요. 그리고 그 똑똑함과 지혜로움이 이기적인 면으로 발현되는 게 아니라 그런 영민함으로 주변 사람을 배려하고 챙기고 상황을 옳게 만드는 데 쓰시는 분이었어요.

그래서 엄마 자랑을 진짜 많이 하고 다녔거든요. 지나고 보니 심지어는 ‘내가 엄마 자랑을 너무 많이 해서 벌을 받나’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소중한 건 너무 자랑하지 말아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엄마는 저한테 정말 소중한 사람이었어요.

 

채운씨의 어머니가 쓰던 블루투스 이어폰과 채운씨의 딸이 할머니에게 보낸 편지. 채운 제공

채운씨의 어머니가 쓰던 블루투스 이어폰과 채운씨의 딸이 할머니에게 보낸 편지. 채운 제공


2.

사고 이후 엄마 휴대전화를 찾기는 했는데 너무 많이 파손돼서 그 안에서 사진이나 그런 건 하나도 복구하지 못했어요. 엄마가 2024년 한 해에 여행을 진짜 많이 가셨거든요. 정말 한을 풀기라도 하듯이 1년의 절반 이상은 여행을 가셨어요. 엄마가 최근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고 자주 말씀하셨어요. 그게 생각이 나서 엄마 다니던 초등학교에 얼마 전 다녀왔어요. 엄마가 있던 땅, 바람, 하늘을 보고 엄마 대신 한참 햇볕을 쬐고 왔네요. 저는 아직도 엄마에 대해 알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2024년 여름에 엄마랑 딸이랑 저랑 셋이 크루즈 여행을 갔거든요. 10년간 아이를 키워준 엄마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해서. 그때 엄마가 정말 행복해하셨어요. 그래서 그때 생각이 많이 나요.

음식 냄새 맡을 때도 엄마 생각이 많이 나요. 엄마가 요리를 진짜 잘하셔서 큰 자랑거리였고, 엄마 밥을 먹는 것도 정말 좋아했고, 저희 딸 입맛도 엄마 덕분에 청국장, 김치, 다진 마늘 이런 토속적인 음식을 되게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전라도식 음식을 보거나 엄마가 해줬음 직한 음식의 향을 맡으면 엄마 생각이 많이 나요.

엄마는 정치에도 관심이 많아서 시사 평론하는 걸 되게 좋아하셨어요. 엄마를 보면 늘 대단하다 싶었던 게, 제대로 공부해보신 적도 없는데 어려운 말을 쓰지 않고도 정치, 민주주의를 꿰뚫는 통찰력이 있었어요. 경제도 제법 잘 아셔서 엄마랑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하는 맛도 있었어요. 만약에 다음 생이 있다면 이번엔 제가 ‘엄마의 엄마’로 태어나고 싶어요. 이 사고가 난 다음날부터 계속 드는 생각이 다음 생에는 엄마가 제발 내 딸로 태어났으면 좋겠다. 그래서 원 없이 잘 키우고 원 없이 보살피고 싶다.

이제 1년이 되니까 그래도 좀 받아들이게 된 것 같아요. 전에는 정말 남편 붙잡고 ‘진짜로 방법이 없는 거냐’고 했어요. 엄마가 돌아올 방법이 진짜로 없냐고. 이전에는 그 ‘믿기지 않는다’는 게,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게 무슨 말인지 몰랐어요. 이 일이 처음으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던 거죠. 이제는 이게 현실이구나 싶긴 해요.

저는 원래 종교가 없었는데 이번 일을 겪으면서 천주교 신자가 됐어요. 엄마는 개신교였지만 가톨릭에선 죽은 이를 위한 연미사가 있더라고요. 그것 때문에 세례를 받게 됐고 종교에 의지를 많이 하고 있어요. 엄마뿐만 아니라 179명 희생자의 영원한 안식을 빌며 매일 연미사를 신청하고 있어요. 해드릴 수 있는 건 진상규명과 연미사 올리기뿐인 것 같아요.

채운씨와 채운씨의 어머니, 딸 셋이 함께 크루즈 여행을 갔을 때 찍은 사진. 채운씨의 딸이 직접 만든 팔찌를 세 사람이 나눠 끼고 있다. 채운 제공

채운씨와 채운씨의 어머니, 딸 셋이 함께 크루즈 여행을 갔을 때 찍은 사진. 채운씨의 딸이 직접 만든 팔찌를 세 사람이 나눠 끼고 있다. 채운 제공


3.

사건은 어떤 구조의 문제일 텐데, 그 구조에서 나사처럼 일한 개개인들이 그냥 시스템에서 하던 대로 해왔던 거잖아요. 그런데 나비효과처럼 일으켜진 사안에 개개인이 오롯이 다 책임져야 한다는 게 너무 좀 버거웠던 것 같아요. 이제 생각하는 건 책임자 처벌이 되더라도 그게 어떤 한 개인의 문제로 밝혀지기보다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어떤 시스템이 설계돼 있었는지 그런 문제가 밝혀졌으면 좋겠어요.

한편으론 또 혼란스러워요. 종교를 갖게 되니 ‘사람은 서로 용서하고 사랑으로 품어야 한다’ 같은 교리와 제가 외치는 구호가 모순되는 게 아닌가 하는 혼란스러움. 아직 차마 보진 못했지만 영화 ‘밀양’이 떠올랐어요. 언젠가는 그 영화도 보고, 진상규명 활동을 열심히 하면서 성당을 성실히 다니다보면, 그 간극이 메꿔지리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어요.

‘잘 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기준이 완전히 달라져버린 것 같아요. 예전에는 세속적인 기준으로 ‘잘 사는 삶’이라고 하는 일종의 세트 같은 인생의 답이 있었는데, 이제는 ‘잘 산다는 게 뭘까’란 생각이 들어요. 그 잘 산다는 것의 내용 중 하나가 ‘진상 규명’이라 생각해요. 엄마가 돌아가시게 된 원인을 샅샅이 밝혀내고, 절대 반복되지 않게 조금이라도 그에 기여하는 노력을 열심히 하다가 나중에 엄마를 만나면 엄마한테 “잘 살았다, 애썼다”고 그렇게 칭찬받고 싶어요.

그리고 어쩌면 이 말이 제가 듣고 싶은 말일 수도 있는데, 일상을 지내면서 가장 많이 느끼는 감정이 ‘슬픔’ 다음으로 ‘죄책감’이에요. 잘 살면 잘 사는 대로 엄마를 잊는 것 같아 죄책감이 들고, 못 살면 못 사는 대로 남겨진 삶을 제가 허비하는 것 같아서 죄책감이 들어요. ‘죄책감 갖지 마라, 그만하면 됐다. 애썼다’ 엄마가 이렇게 말해주면 좋을 것 같아요.

 

채운씨의 엄마와 채운씨가 주고받은 메시지. 채운 제공

채운씨의 엄마와 채운씨가 주고받은 메시지. 채운 제공


4.

개인적으로는 내가 “이 참사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말할 자격이 되나,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해요. 내가 너무 이기적으로, 각자의 삶을 사는 사람들한테 “내 아픔을 돌봐줘, 이걸 같이 고민해줘, 진상 규명하는 것 도와줘”라고 떼쓰는 건 아닐까. 세월호나 이태원 참사에 대해서는 오히려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자기검열 없이 “이 문제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는 문제였다. 관심 갖지 않으면 반복될 문제다”라고 자신 있게 말했는데 내 일이 되니까 위축되는 게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이지 않지만 어디선가 느슨한 나사인 채로 돌아가는 것들이 언제 터질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참 조마조마해요. 저로서도 ‘내가 그런 나사의 일부인 채로 살아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요. 정말 작은 일이라도 자기한테 주어진 일을 더 꼼꼼하고 책임감 있게 하는 게 중요할 듯해요. 동시에 어떤 사건의 책임이 한 개인에게 모두 돌아가지 않게끔, 큰 그림을 볼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국가도, 정치도, 언론도 그런 부분이 더 잘 키워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허정·정나라·이소아 ‘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 활동가

 

*2025년 12월14일 ‘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 활동가들이 유가족 채운(가명)씨를 인터뷰하고 기록했습니다. 이 글은 ‘무안공항 참사 이후를 사는 사람들’ 2회로, 한겨레21 누리집을 통해 1월부터 격주로 10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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