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명이 사망한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사고기 잔해 재조사가 시작된 가운데, 사고 현장에서 희생자 추정 유해 65점과 유류품 722묶음, 휴대전화 5대가 발견(2026년 3월19일 기준)됐다. 유가족들이 “수습 과정이 충분치 않았다”고 비판하자 3월19일엔 국무조정실 2차장이, 3월20일엔 청와대 경청통합수석이 무안공항 현장을 방문했다. 국토교통부 산하에 있어 ‘셀프 조사’ 논란이 있던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는 관련 법 통과에 따라 국무총리실 산하로 이관됐고, 현재 국무조정실과 유가족들이 조사단 구성을 논의 중이다. _편집자

심정덕씨의 자택. 심정덕 제공
전남 무안 가까운 남악에 작은아들이 살어. 오전에 엄마 가지 말라고 눈 오는 교통상황을 찍어서 보냈더라고요. 우리 동네는 눈이 얼마 안 와서 공항에 오려고 딸막딸막했거든. 그래서 이따가 오후에 전화했지. 지금 엄마 가고 싶은데 어쩌냐? 그란께는 이제 고속도로에 눈이 없다고 엄마 가시려면 지금 가세요, 하더라고. 그래서 머리만 감고 달려갔지.
고속도로에서 무안공항 들어올 때 차가 갑자기 딱 끊기잖아요. 그럼 거기서부터 울고 와요. 통곡하고 와. 어떨 때는 들어오기 전에 눈물을 멈추고 오는데 어떨 때는 못 멈춰요. 공항 문 열리면 들고 온 거 땅바닥에 놔두고 하늘 쳐다보고 엉엉 울어요. 그러면 모두 다 같이 다독이고 울어주고.
집에 가면은 몸은 편한데 마음이 안 편하죠. 그냥 병든 닭처럼 시름시름. 한숨 잤다가 깼다가,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재. 나에게 아무런 의미 있는 시간이 아니재. 시골집은 신랑하고 나하고 둘만의 공간이라 손길 안 스친 곳이 없어. 신랑이 머문 자리들이 너무 힘들지.
그래도 하룻밤은 자는데 이틀은 좀 힘들고 사흘 밤까지는 못 자겠어. “동욱 엄마, 나 인자 왔어.” 그러고 들어오는 것 같아서. 그 소리가 들려서 자다가도 문을 열고 휙 마당을 한번 둘러보죠. 그러고 아, 이게 아니지 하고 다시 들어오재. 이제 잠 못 자지.
처음에는 너무 이 공간이 싫었어. 공항에 캐리어 끌고 와서 즐거워했던 걸 생각하면 그냥 너무 싫은 거여. 진짜 막 숨이 꽉꽉 막히고 막 토가 나오고 그러는 거예요. 그랬는데 자꾸 이렇게 오고 여기서 자고 생활하다보니 어느 순간에 집 아닌 집이 된 거예요.
그래도 애들이 여기 오면 제일로 전화 안 해. 내가 여기 가면 이모들이 다 먹는 거 챙겨주고 잠도 잘 자고 여기가 편하다 그래서. 애들도 그 말을 듣고 안심하는데, 시골 갔을 때는 애들이 전화를 막 하죠. 시시티브이(CCTV)를 달았는데 마당에 안 보이면 막둥이가 엄마 어디 있냐고 전화하고. 애들이 걱정해서 애들도 힘든데 내 걱정까지는 안 하게 하고 싶어서 노력은 하죠.
운동을 좋아하셔서 운동하러 가셨죠. 신랑이 퇴직하고 집에 있으니까 같이 가자고 다들 불러내요. 그래서 잘 갔다 온다고 그러고 갔재. 여기 무안공항이 가깝잖아요. 자주는 안 와도 가끔 왔죠. 무안공항에서 친구들과 일본으로 환갑 여행도 가고, 신랑하고 같이 여행도 하고 그랬는데.
집은 장흥이에요. 장흥에서 공직생활을 하고 퇴직한 지 한 9년 됐나? 애들 어려서는 내가 광주에서 생활하고 주말에만 갔고, 내가 안 가면 자기가 오고. 애들이 이제 크니까 시골로 내가 갔지. 이제 엄마 손이 안 필요하니까 놔두고 가서 남편하고 같이 살았지.
친구들이 그러는 거예요. 너는 이제 촌에 사니까 청국장을 해봐라. 막 여기저기서 시켜 먹는다고. 그래서 청국장을 하게 됐지. 처음에는 실패도 많이 했는데 계속하다보니까 고객이 많이 확보됐지. 그러면서 메주도 하고 된장도 하고.
우리 남편은 엄청 부지런하거든요. 집에 있으면 그냥 가만히 손 놓고 있는 성격이 아니야. 사고 나기 전에 신랑이 내가 일한 날은 어딜 안 나갔거든? 도와주느라고. 메주는 너무 힘들어. 날마다 불 때야 하고 날마다 황토방에 들어가 뒤집어야 하고. 그래서 이제 줄이려고 했지. 내가 허리가 안 좋으니까 못한다 그래도 계속 전화가 와요. 신랑이 그러는 거여. 그렇게 돈을 주고 사정하는데 올해까지 해주소. 내가 다 해줄 거인께. 그래서 여행 가기 3일 전에 메주를 또 100개를 쒔어. 그걸 자기가 다 해줬어. 황토방에 발 놓고 메주 이렇게 깔아놓고 가셨지.
이제 집에 돌아오면 또 자기가 황토방 불을 땔 거잖아요. 그때 새벽 6시면 깜깜해요. 훤하게 날이 안 새. 일어나서 먼저 불 다 때놓고, 세라젬 안마기를 애들이 사줬거든. 잠옷 빨아서 안마기 위에 놔뒀어. 오면 갈아입고 안마 한 번 하고 한숨 자라고 하려고 해놓고 밖에 나왔지. 이제 날이 훤해져서 마당에 보이는 것들 치우고 있었재.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 임자영씨. 심정덕 제공
아랫마을에 애기 아빠 친한 친구가 있어. 핸드폰으로 전화가 온 거예요. 받으니까는 동욱이 엄마 테레비 봤어? 그러는데 온몸이 그냥 하늘로 팍 서는 거예요. 머리가 쫑긋하니. 왜요! 그렇게 깜짝 놀라서 말하니까 사고가 난 거 같다고.
내가 대답도 안 하고 끊고 애들한테 이러이러한 전화가 왔다 얼른 알아봐라 전화하고 이제 방에 들어가서 리모컨으로 티브이를 켜니까는 비행기가 딱 착지했더라고요. 끝까지 간 것은 못 보고 끄고 나오면서 그래, 일단은 땅에 닿았으니까 가벼운 사고겠구나 하고 그대로 뛰어나왔죠. 나는 이렇게 큰 사고가 나리라고 생각도 안 했어.
그런데 아들 전화가 오더라고. 아빠가 탑승자 명단에 들어 있다고. 진짜 하늘이 무너지고 앞이 아무것도 안 보였어요. 정신이 뭔 정신이었는지도 모르겠어. 그 소리를 듣고 이제 길가로 막 뛰어나온 거예요. 도로를 막 뛰어가다 엎어지다 앉아서 울다 가는데 차들이 줄줄 하니 면에 사는 동생이랑 아는 이들이 이 사람, 저 사람 다 오더라고. 나 데리고 공항으로 간다고. 그래가지고 신랑 내려줬던 그곳에서 큰아들을 기다렸지.
그때는 사고 난 장소도 몰랐어. 공항 안으로 들어가니 이런 아수라장이 없더라고. 그래서 아, 이것은 큰 사고구나, 감을 잡았재. 그래갖고는 뭔 정신이 있었는가 어쨌는가 생각도 안 나. 온 사람도 하나도 생각 안 나고. 아무튼 간에 내 정신이 아니었재.
(주검을) 얼른 못 찾았어. 밤 되면 정신없이 텐트에서 뛰쳐나가 도로 난간을 잡고 막 외쳤지. 여보, 애들하고 같이 당신 찾으러 왔다고. 어디 있냐고. 집에 가자고. 그러다 이 사람 저 사람한테 끌려 들어가고. 내가 막 소리 지르면 어디선가 들을 것 같아서 얼마나 고함을 질렀는지 몰라. 목 터지게 고함 질렀어.
지금도 믿을 수가 없어. 여기 오면 꼭 신랑 태우러 마중 오는 그런 기분이라고 할까? 그게 만날 안 없어져요. 있을 수도 없는 일이고 믿을 수도 없고 안 오니까 안 믿을 수도 없고. 진짜 사는 게 사는 게 아니고 그날로 딱 멈춰갖고.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갈 곳도 없고.
나는 58년 개띠. 신랑하고 두 살 차이여. 신랑은 올해 70. 나는 예순여덟. 결혼한 지는 한 46년 된 갑네. 나는 시골에 있고 우리 집 신랑은 광주에서 대학교까지 졸업했거든. 가끔씩 일요일이면 너무 멋진 사람이 지나가는 거예요. 그 전에는 버스가 마을마다 안 다니고 중간에다 내려주면 걸어다녔잖아. 윗마을 아랫마을이라 그렇게 가끔씩 가는 걸 보고 저런 사람도 있네, 했지. 누구 집 아들인지 어쩐지도 모르고. 아무튼 간에 어떻게 만나게 됐어.
오래돼서 누가 만나자 한지도 모르고. 내가 좋아했어. 그렇게 인연이 되었지. 나 만나고 얼마 안 돼서 4월에 보리가 팼을 때 군대를 갔어. 시어머니는 오십이 다 돼서 아들을 낳았으니 얼마나 귀하겠어. 그러니까 반대를 했지.
친정엄마는 있는 거 없는 거 다 팔아서 해줄 거니까 시집가라는데, 그때 내 마음은 좋다기보다 제대하고 오면 우리가 어디서 만나도 인사하고 웃을 수 있게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했지. 그랬는데 자기도 내가 마음에 있었던가보지? 못 헤어지고 한참 살다가 큰애 낳고 결혼했어.
성격은 급했어. 그런데 배려를 잘했어. 예를 들어서 옛날에 남자들은 부엌에 가면 어쩐다고 막 그런 거 있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여자 하는 일, 남자 하는 일 안 따지고 했지. 출퇴근할 때는 그렇게까지 안 했어도 내 일을 많이 도와줬지.
퇴직하고 집에 계시니까 시간이 많잖아. 나는 봉사한다고 돌아다니고, 자기 눈에 보이는 것을 못 놔두는 성격이라 그렇게 다 했지. 나는 받기만 하고 해준 게 없는 것 같아서 미안하고 모르겠어. 항상 나 먼저 생각하고 배려해주고 그랬어.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 임자영씨와 심정덕씨가 담근 된장. 심정덕 제공
남편이 근무할 때는 나도 그냥 조용히 살았어요. 그랬는데 남편이 퇴직할 때쯤 돼서는 내가 봉사를 많이 다녔거든. 나는 나가야 하는데 남편이 퇴직해서 안 나가고 있을 때 반찬을 다 해놔도 “점심 챙겨서 드세요” 그 말을 할 때가 제일로 힘들더라고.
그런데 남편은 절대 사람을 힘들게 안 해요. 워낙 편하게 잘해줘. 자기가 다 해 먹고 그래도 그게 맘이 불편하더만. 그래도 내가 알아서 할 거니까 가라고 항상 그렇게 배려해줬거든. 시간이 지나니까 진짜 나도 편하고 자기도 편하고. 따로 다닐 때는 따로 다니고 또 같이 다닐 때는 같이 다니고.
신랑이랑 둘이 산에 많이 갔어. 김밥 두 줄 묵은지 쫑쫑 썰어서 말고, 커피 타고 사과 하나 하고 물 한 병 갖고 산에 많이 갔거든. 그러고 와서 샤워하고 밥 먹고. 신랑은 항상 낮에는 한숨씩 잠을 자야 해. 오후 2시나 되면 파크골프 치러 나도 나가고 자기도 나가고. 그러고 살았죠. 집에 있지를 않아. 내가 나가면 집에서 세탁기 빨래도 자기가 다 널고 늦게 들어오면 빨래도 다 걷어놓고.
싸울 때는 절대로 우리 신랑은 내가 잘못했네, 미안하네 소리를 안 해. 절대로 말로는 안 해. 근디 이제 행동으로 보여. 자기가 내 일을 해준다든가 그러면 내가 속으로 그래. 에이, 인간아. 내가 하고 본께 잘못되었네, 미안하네 한 소리 못해주고 그렇게 하고 있는 것도 좀 마음이 아픈 거야. 그렇게 자존심이 세냐 싶고 미우면서도 보면 아이고 그래 내가 참아야지 그라고 이제 풀어지지. 항상 그렇게 되풀이됐어. 그렇게 살았어.
원래 어디 가도 어디 있는지만 알면 서로 전화를 안 해. 여행 간 다음날 전화가 왔더라고. 별일 없지, 그래서 여기가 무슨 별일이 있겄는가. 전화도 하지 말고 당신만 재밌게 놀고 와. 그것이 마지막 전화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 전화기도 다 타버려서 하나도 건진 게 없어.
처음에는 양복 한 벌하고 자기가 즐겨 입던 잠바하고 바지하고 몇 가지를 놔뒀는데 집에 가면 장롱에서 그걸 꺼내서 내가 부둥켜안고 울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이 옷을 보내줘야 되나하고 나중에 태웠지. 여권도 다 타고 좀 남았는데 그것도 그냥 아빠 물건이니까 태워주자. 그러고 사십구재날 태워줬는데 그런 거 없애버린 것도 좀 잘못했는가 싶은 생각이 드네.
젤로 후회되고 미안한 것은 마지막을 못 봤다는 것이. 자식들이 처음에 아빠가 아니라고 해서 디엔에이(DNA) 검사했어. 애들은 아빠 모습을 다 보았으니 나보다 더 힘들지. 얼마나 손상됐는지. 이분 아니야, 엄마. DNA 신청해놨어요 그랬어. 몇 달 전에 임플란트를 해서 치과에 가서 엑스레이를 갖고 와서 대조해봤는데 나중에 DNA 결과 나오고 아빠 맞는 것 같다고. 애들이 엄마, 아빠 여행 떠날 때 좋은 기억만 갖고 살면 안 되냐고 하도 사정을 해서 마지막 모습을 안 봤는데 지금은 조금 그게 미안하고 후회스럽고 그러네.
마지막이 될 줄 알았으면 안 보냈지. 올해 69인데 당신 이번에 안 나가면 안 돼? 그렇게 말 한마디 못 던졌던 게 그게 한으로 남네. 원래는 아홉수 그런 것을 하나도 안 믿었거든. 삼재고 뭐고 말했어도 이미 여행이 짜였는데 안 가기는 했겠는가마는 내가 그렇게 했으면 그럼 이번에 가지 말까? 그랬을 수도 있는데. 내가 그 말을 못 던져봤어. 이렇게 되고 본게 그게 젤로 미안해.
가끔 잠이 안 오고 가슴을 막 두드리며 일어나. 그래가지고 문자를 보내지. 가슴이 멍멍할 때, 숨이 막힐 때. 집중하고 문자를 쓰면 비록 받지 못하고 가지 못하지만 그래도 문자 보내고 나면 가슴 한구석이 조금 바늘귀처럼 숨구멍이 트이는 것 같아. 그렇게 하고 나면 좀 낫재.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 임자영(왼쪽)씨와 아내 심정덕씨. 심정덕 제공
보고 싶은 거 말로 할 수가 없죠. 내가 맨날 보고 싶다고 울었더니, 유가족 한 분이 자기 마누라한테 그러더래. 저 장흥 누님은 얼마나 좋게 살아서 저렇게 보고 싶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아야, 보고 싶은 것은 다 똑같지. 말로 못하지. 내가 그랬지. 보고 싶어. 너무 보고 싶어. 한 번이라도. 내가 맨날 아래 분향소에 가서 에이 무심한 사람, 꿈에도 한 번 안 보이냐. 그래도 한 번도 못 봤어.
남편은 내가 우는 걸 제일 싫어했거든요. 이렇게 날마다 우는 것도 싫어할 것인디. 감정이 욱하니 올라올 때가 있거든요. 그럴 때는 울어야 속이 좀 후련하지 안 울고 꼭꼭 눌러 참으면 더 힘들더라고. 그래서 눈물 나오면 저는 그냥 아무 데서나 엉엉 울어버려요. 그라고 나면 좀더 후련하고.
강아지도 불쌍해. 진짜 얼마나 둘이 좋아했는지 몰라. 골프 연습장에서 공을 치면 앉아 있다가 공이 저기 떨어지면 막 달려가서 주워갖고 와. 얼마나 이뻐했겄어. 아침에도 아주 둘이 일어나면 마루에 앉아서 한참 뭐 여차냐 저차냐, 뭐 하러 빨리 나오라고 하냐. 둘이 그렇게 얘기하거든. 그리고 어디 가면 항상 강아지 쫑이 먹을 걸 챙겨. 그럼 내가 아이고~ 마누라한테 그렇게 해! 그랬지 맨날. 마누라를 챙기라고! 둘이 나가. 데리고 나가! 막 그러면 신랑이 쫑이야, 우리 아무 잘못한 것 없는데 니하고 나하고 나가라고 한다, 했어.
사고 나고 내가 시골을 가면 차에서 내려 무조건 창고 앞 땅바닥에 앉아서 한바탕 울분을 토해. 서럽게 막 울어. 그럼 쫑이도 옆에서 울어. 잉 하고 소리를 내면서 울어. 어느 날에는 쫑, 아빠 어디 갔어? 아빠 찾아와. 아빠 찾아와. 그러니까는 남편 다녔던 데를 막 기웃기웃하고 다니는 거여. 나중에는 아빠 저기 하늘나라 갔어. 아빠 없어. 아빠 기다리지 마. 내가 이제 말을 그렇게 해주지. 그런데 지금도 멍하니 앉아 있으면 신랑 생각 하는 것 같애. 그 애도 뭣을 아는가봐. 그것도 이제 기가 꺾였지. 신랑이 없으니까 한풀 꺾였더라고. 쫑이도 너무 기다릴 거예요.
그 애가 있어서 내가 시골을 안 갈 수가 없어. 가면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 그리고 나오려고 옷을 입고 신발을 신으면 안절부절못하니 봤다가 신발을 막 발로 뜯어. 신발 신지 마라. 못 가게 하려는 것 같아. 그럼 갔다 올게, 집 잘 보고 있어.

2025년 7월17일 아내 심정덕씨가 고 임자영씨에게 보낸 문자. 심정덕 제공
둔덕 조사 결과가 나왔어도 반갑지도 않더라고. 끝까지 한번 숨겨보지. 1년이 다 돼서 눈앞에 다 보이는 것을 이제야. 유가족들이 그 추운 데 가서 삭발하고 시위하고 하도록 놔뒀다가 인정하냐고. 차라리 끝까지 가지. 화가 나더라고.
나는 진짜 대한민국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이건 아니지. 내가 여러 곳 여행 다녀보면서 항상 우리나라는 살기 좋은 나라라고 얘기하고 다녔는데 진짜 이것은 아닌 것 같아. 나라가 국민의 목숨을 못 지켜줬으면 진실이라도 빨리 밝혀줘야 하잖아. 그래서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하잖아. 처벌받을 사람들은 처벌받고 해야 하는데 이렇게 끌어버릴 줄은 나는 생각도 못했어. 이런 큰일 앞에서는 나라가 없는 것 같아. 선거할 때는 표 하나라도 얻으려고 굽신거리고 별걸 다 하는데 이렇게 일이 터지면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어.
속상해 죽겠어. 처음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너무 늦어지고 더디니까 막 이제 화가 차는 거야. 간 것도 억울한데 우리가 진실을 찾아서 헤매야 하고 우리가 길거리 나가서 울어야 하고 먼 거리 시위를 가야 하고. 이것이 무슨 짓인지 몰라. 이런 거 구경도 안 해봤재.
진짜 억울하고 분이 차서 못 살겠어요. 둔덕도 진짜 바보가 봐도 눈에 보이는데 그런 것도 숨기려고 처음에는 정상이다, 불법 아니다 했잖아. 하물며 우리가 전문성이 없는 부분들을 얼마나 숨기려고 하냐 싶으니까 막 분이 나는 거야. 막 억울해.
그래서 제가 회의에 가서 왜 재발 방지를 외치냐고, 외치지 말라고 했어요. 한 번 더 큰 사고가 나봐야 저것들이 움직일런가 그랬어. 처음부터는 그러지 않았지. 행여나 누구라도 이런 일이 없어야 된다고 그랬는데, 아무것도 없이 1년이 가버리니까 너무 악이 나는 거예요.
말이 그렇지. 이제 억울하니까 하는 말이지. 이런 일을 또 누가 겪어야 하겠어? 안 되지. 그러기 위해서는 밝혀질 건 밝혀지고, 고칠 건 고치고 해야지. 이런 사고가 다시 안 일어나리라는 보장이 있냐고.
맨날 그래요. 내가 이대로는 당신을 보낼 수가 없다. 당신도 억울하지만 나도 너무 억울해서 이대로는 보낼 수가 없고 진실을 꼭 밝혀서 나도 편하게 당신 보내주고 싶다고 그런 각오를 하거든요. 내 모든 것을 다 빼앗아 가도 남편이 오면 좋겠는데, 이미 그럴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한 점 의혹 없이 해야죠. 여러 가지 복합적인 사고라고 하는데 우리는 전문성이 없으니까 모르잖아요. 그런다고 내가 이제 70이 되는데 공부를 하겠어요, 뭐 하겠어요?
관련 있는 곳에서 진짜 가슴에 손을 얹고 내 가족도 그렇게 갈 수 있다는 그런 마음으로 낱낱이 공개해서 진심 어린 사과도 하고 책임자 처벌도 하고. 저는 그것만 돼도 마음 편하게 좋은 곳에서 잘 지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직도 보내지 못하고 마음에 품고 있는 것도 마음 아파. 그래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나봐. 내가 남편을 놓아야 내 생활도 있는데, 내가 보내지 못하고 안고 있어서 힘들고. 하루빨리 좋은 곳으로 보낼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
내가 마지막 당신 모습을 못 봐서 미안하고 지금은 후회하고 있다고 그 말 한마디 꼭 전하고 싶어. 애들이랑 다 잘 살려고 노력하고 있으니까 너무 우리 걱정 안 해줬으면 좋겠다고. 이제 젊었을 때 못다 했던 것들 즐기면서 거기선 아프지도 말고 여기 있는 사람 걱정하지도 말고. 우리도 잘 살 테니까 거기서는 마음껏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세월이 흘러서 우리가 볼 때 잘 살았다, 잘 지냈다고 등 두드려줄 수 있으면 좋겠어.
시간이 가면 울음도 멈추겄지. 우리가 울고만 있을 수는 없잖아요. 저도 일부러 웃기기도 해요. 마음에 없는 웃긴 말을 하고 한바탕씩 웃고. 같은 아픔이 있어서 울면 같이 도닥이면서 울고.
내가 하도 눈물이 안 멈추고 그러니까 안과에 가서 눈물 구멍을 막아버린다고 하니까 셸터 애들이 죽는다고 웃었어. 한번 눈물이 나오면 그렇게 눈물이 안 멈추네. 내가 디지게 울다가 눈물 브레이크가 고장 나갖고 말을 안 듣는다고! 그러면 또 사람들 울다 웃고 그래.
유가족들이 마음도 병들고 몸도 병들어간다고 생각해. 나도 처음에 여기 와서 운동하자고 하면 진짜 제일 먼저 앞에 다니고 그랬는데 지금은 못해요. 공항 와가지고 종일 딱딱한 의자에 며칠씩 앉아 있고 그랬더니. 우리가 운동을 하겠어요? 무엇을 하겠어요? 그냥 멍때리고 앉아 있는 거지. 그래서 처음에 와서는 가방을 한 20개는 짰을 거여. 뜨개질에 집중하면 머릿속에 아무 생각이 안 나거든. 그러다보니 고관절이 아픈 거예요. 그래서 병원도 다니고.
유가족들이 안 좋아지는 것이 보여. 처음에는 더 건강하고 그랬는데 어깨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병원 가고. 맨날 그런 것을 보면서 유가족들이 마음의 병은 있을지라도 몸은 더 아프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고.
잘 먹어야재. 건강해야재. 살아 있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 있잖아. 우리가 잘 먹고 잘 견뎌야 우리가 그 일을 하죠. 우리가 나중에 세월이 가서 눈감더라도 우리도 눈을 감고 가지, 이대로 놔두고는 눈 못 감죠. 너무 억울해. 너무 분하고 억울하고 불쌍하고….
빨리 해결된다고 하면 좋죠. 여기도 재개항을 해야 하잖아요. 마냥 이렇게 놔두고 손실을 보고 있을 수는 없죠. 나중에 또 행여라도 12·29 유가족 때문에 망했다는 소리가 나올 걱정도 되고. 빨리빨리 진상을 밝혀서 우리가 여기를 벗어날 수 있도록 해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죠.
집에 돌아가도 너무 어려울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여기서 늘 얘기하거든요. 우리는 죄인이 되어서 우린 갈 곳이 없다. 그나마 여기는 같은 아픔을 갖고 있으니까 서로 알아줘서 편하게 올 수 있는 집이 되었는데, 우리가 만약 해결되고 집에 가면 어디 가서 웃기를 하겄냐 울기를 하겄냐. 모든 시선이 집중돼 있는데.
그래서 나중에 우리끼리 한 번씩 만나자는 얘기도 했는데, 진짜 막상 돌아가도 걱정이여. 동네 가서도 어디 가지를 못하겠어요. 가면 다 있는데, 우리 남편만 없으니까. 모임에 가도 가슴이 울컥해지고 그래서 내가 분위기 깰 수는 없고 그러니까 아예 안 나가거든요.
옛날에는 좋은 일이 있을 때는 즐거워하고 슬픈 일이 있을 때는 슬퍼하고 그랬는데 이제 그런 게 없을 것 같아. 좋은 일을 봐도 저게 좋은가? 슬픈 일을 보면 더 슬플 것 같고.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래도 세월이 약이라고 시간이 가면 어떻게 되겄죠?
정나라·이소아·허정 ‘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 활동가
*2026년 1월12일 ‘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 활동가들이 유가족 심정덕씨를 인터뷰하고 기록했습니다. 이 글은 ‘무안공항 참사 이후를 사는 사람들’ 6회로, 한겨레21 누리집을 통해 이전 연재물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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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술기록은 2025년 4·16재단 부설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재난 피해자 권리회복사업 지원을 받아 수행된 결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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