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같던 언니와 조카네 일가족, 온전히 보낼 때까지 공항 지킨다

조카 김미선씨 집에 모여 다 함께 찍은 사진. 조미영 제공
179명이 사망한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가 발생한 지 어느덧 700일이 지났다. 한성숙 국무총리는 2026년 8월13일 전남광주 무안국제공항을 찾아 유족들에게 “너무나 죄송스럽고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앞서 8월4일 이재명 대통령은 “무안공항이 폐쇄된 지 2년이 돼간다”며 재개항 준비를 지시하면서도 “유족과 협의돼야 하며 유족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고 했다. 한겨레21은 유가족의 구술을 토대로 한 참사 희생자의 기록을 계속 이어간다. _편집자
설 전부터 잠을 잘 못 잤어요. 어제도 거의 2시 반 넘어서 잤나. 언니 집에서 명절음식 하고, 음식 하면서도 많이 울었어요. 조카 부부는 아직 젊잖아요. 아이들도 어리고. 애들 차례상을 지내려 음식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았어요.
물론 아픔은 다 똑같죠. 그런데 우리는 다섯 분이나 가셨잖아요. 되게 마음이 그래요. 음식 하면서도 말 한마디 안 하고. 올케 언니랑 같이 차례를 지냈거든요. 강아지 때문에나 좀 웃고 그랬지.
명절 때면 같이 모여서 윷놀이도 하고 그랬어요. 저희는 가족끼리 술을 잘 안 마시고 게임을 해요. 떡, 약과 이렇게 음식을 골고루 놓고 먹기 대회를 하죠. 팀을 짜서 돈을 조금 걸고 빨리 먹는 팀이 이기는 거예요. 바보 같은 짓이지만 웃기려고, 재미있으려고 하는 거지. 그런데 이제는 우리 가족들 살아 있을 때처럼 명절이 그렇게 돌아가지 않을 것 같아요.
3남3녀. 큰언니 있고 미자 언니가 둘째. 미자 언니랑은 11살 차이 나요. 엄마 같은 언니고, 어릴 때도 저를 업고 다녔대요. 다 키운 거지.
우리 어릴 때는 섬에서 살았어요. 미자 언니가 일찍 육지에 나가서 돈을 벌었는데 그러면서 남동생이랑 저랑 세트로 옷을 사서 보냈어요. 저는 분홍색, 동생은 회색. 똑같은 코트에 신발도 세트로 사서 보내고. 우리 어릴 때 ‘랜드로바’라는 되게 비싼 메이커 가방, 유행이었던 가방을 중학교 갈 때도 사서 갖고 다니라고 다 챙겨주고.
언니는 전남 목포에 살면서 배편으로 항상 집에 과일을 보냈어요. 나무 궤짝에 담은 사과나 자루에 담은 참외. 효녀였어요, 효녀. 돈 모아서 아버지 목돈으로 딱 갖다주고, 또 마을에서 제일 먼저 자개농을 집에 놔주고, 곤로 쓰던 시절에 가스레인지도 제일 먼저 사서 집에 놔주고.
우리 집 기둥이었어요, 언니가. 둘째지만 어릴 때부터 큰딸 역할을 했죠. 결혼하고도 그렇게 잘 챙겨줘서, 방학 때 되면 언니 집에 가서 살다 오고 그랬죠. 언니랑은 싸우는 게 아니라 제가 한번씩 투정을 부리죠. 그러면 언니 하는 말씀이 “너는 내가 엄마인 줄 아냐?” 그랬어요.
나중에 언니랑 같은 아파트에서 앞동 뒷동 살았죠. 저녁에 잠이 안 오면 언니 집에 가서 다음날 아침 6시까지 이야기하고 잠을 안 자요. 하루도 안 볼 때가 없었죠. 20년을 거의 매일 봤던 사람이 이렇게 한순간에 가버렸으니….
둘이 좋아하는 취향이 같았어요. 언니 집에 항아리가 엄청나게 많아요. 아파트가 무너지겠다, 제가 그랬어요. 다듬잇돌도 있고 옛날 미싱도 있고. 구시(밥통), 돌로 된 돼지 밥통에 물 채워서 소품처럼 화초 키우고. 손재주가 좋아서 제가 화분에 식물 키우다가 언니를 주면 언니는 살려내는 사람. 진짜 못하는 게 없었다니까요.
조그만 인형 소품을 좋아해요. 집에 가보면 인형이 몇백 개는 될걸요? 인형도 그렇지만 조그만 소품들, 아기자기한 거. 여행을 따로 가더라도 언니가 좋아하는 거 조그만 거라도 사가지고 오고. 언니도 잠깐 어디를 가면 아, 내 동생 줘야지 (하면서 사오고). 제 이름도 부르지만 내 동생, 내 동생, 그랬거든요.
언니는 밖에 나가는 걸 좋아했어요. 가만히 안 있죠. 춘천에 가자, 그러면 그래 가자! 그러고 씽 달려 둘이서 갔어요. 가서 닭갈비 먹고 오고. 경북 안동에 갔다가 하회탈 하나 사고 싶다 해서 가서 하회탈 하나 사주고. 지금도 집에 있어요.
둘 다 도자기를 좋아하니까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도자기 사러 경기도 여주에 가기도 했어요. 여주에서 도자기 축제 같은 거 하잖아요. 그러면 가자! 뭐 어려워? 차 있는데. 운전은 제가 하거든요. 언니가 웃긴 게 앞에 안 타고 꼭 뒤에 타요. 왜 뒤에 타냐고 그러면 “나 조 회장이야~! 기사가 많은데 내가 왜 운전해야 하냐”고. 소녀 같은 우리 언니죠.
제가 웃긴 게, 친구나 지인과 약속이 있어도 언니가 갑자기 전화해서 어디 가자 그러면 약속 취소하고 갔어요. 친구나 지인보다는 언니랑 많이 더 다녔어요. 나이 차이는 있지만 언니랑 저랑 맞았던 거지. 자매지간이지만 연인처럼. 조미자 껌딱지 조미영. 다른 언니들이 미자 언니 돌아가시고 나니까 그걸 더 걱정해요.
언니가 식당을 많이 했어요. 한식, 중식, 곱창전골 가게도 했어요. 그래서 뚝딱하면 음식이 나와요. 음식도 잘하고 (재료도 알뜰하게 써서) 버릴 게 똥밖에 없어요. 하하.
언니의 첫 국외 여행이었어요. 가게를 하다보니 명절 말고는 하루도 안 쉬었어요. 낮 장사를 안 하면 저녁이라도 문을 열어야 했고, 일요일이라 쉬고 그런 게 없었어요. 그렇게 부지런한 사람이에요. 그래서 국내는 많이 돌아다녔는데 국외는 처음.
조카가 외동딸이에요. 조카 혼자니까 엄마 환갑을 챙겨드려야 하잖아요. 환갑 때 일식집 빌려서 형부랑 모시고 저희랑 오빠 가족이랑 밥은 먹었는데 마음에 걸린 거지. 조카사위가 승진하고, 애들도 방학하고. 크리스마스 때 며칠 엄마 모시고 갔다 오자 해서 겸사겸사 (타이 방콕에) 갔죠.
그런데 (2024년) 12월 초에 언니 몸상태가 안 좋았어요. 집 지으며 엄청 고생해서, 통통했는데 살이 10㎏이 빠졌어요. 그래서 별로 가고 싶지 않다 하더라고요. 그래도 딸이 모시고 간다고 하는데 갔다 와, 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냥 가지 말라고 할걸, 그런 죄책감이 있어요. 가지 말라고 할걸. 그런데 만약에 언니가 안 갔더라도 조카들만 가서 이런 사고가 났으면 언니는 돌아버렸을 것 같아요.
한국 오기 전날, 언니가 날씨가 어떠냐고 연락했어요. 겨울에 갔잖아요. 그래서 날씨 괜찮아지고 있어. 내일은 괜찮을 거 같아. 그러고 언제 와? 그랬더니, 대답이 없어요. 언제 와? 물어봤는데 답이 없어요.
그날 새벽엔 조카 꿈을 꿨어요. 우리 미선이. 꿈에서 구름 위에 상체만 이렇게 나오는 거야. 진짜 선명하게 얼굴 딱 이렇게, 그냥 편한 모습으로. 눈을 떠서 시계를 보니까 새벽 5시10분 정도 됐더라고요. 도대체 이게 무슨 꿈이지? 그때부터 잠을 못 자고 뒤척뒤척하다가 아침 8시40분에 나왔어요. 쉬는 날이라 빨래 돌리고 군고구마 올리고 이것저것 하고 있는데 아들이 나와서 티브이를 틀었어요. 뉴스 속보가 나오는데 “누나네 비행기 아닐까” 하는 거예요.
그래서 바로 형부한테 전화했지. 형부, 언니 언제 오냐고. “아침에 온다고 해서 밥하고 국 끓이고 있다”고 해요. 사고 난 것 같다고, 제가 지금 공항으로 간다고 했어요. 여기 공항을 20년 전 초창기 때 한 번 와봐서 내비게이션을 켜고 왔어요. 고속도로로 한 30분 걸렸나? 여기 도착하니까 오전 9시50분. 오니까 1층 분향소 앞에 그 티브이 있잖아요, 거기에 3명인가 4명인가밖에 안 계셨어요. 그분들은 미리 마중을 나오신 거예요.
제일 마지막에 15명 남았을 때 우리 하윤이(미선씨 아이) 유해가 나왔어요. 아이라서 지문 인식이 안 되니까. 아이가 10살이었는데 하도 안 먹었어요. 안 먹어서 안 커요. 그래도 이게 다행인지 감사한 건지, 찾을 수 있어서. 그래도 있어서 다행이고 감사한 거고….
언니 가방은 찾았는데 조카 가방 같은 건 하나도 못 찾았어요. 기체 잔해물 조사하고 첫날, 여기 가족들이 많이 아팠어요. 물론 (조사 현장에) 서 있는 것도 힘들지만 불에 탄 가족들 물건 보면서 많이 울고, 그때를 또 생각하게 되니까 많이 힘들었죠. 또 거기(참사 현장) 보니까 쥐똥이 있더라고요. 별생각이 다 들죠. 거기에 먹을 게 있으니까 쥐가 들어가지 않았을까? 그런데 왜 저렇게 쓰레기 버리듯이 다 해놨을까?
우리가 똑똑히 보고 있어야지. 정말 눈 부릅뜨고 보고 있어야지. 저분들이 물론 잘해주겠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더 신경 쓰지 않을까? 그런 마음에서 더 그러고 있죠. 진작 수색했더라면 분명히 저기에 뭐가 있었겠다는 생각. 그러고 나서 또 잠을 못 잤어요.
너무 억울해. 억울하고 분하고 원통하고.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여기 있는 유가족들이 다 이제는 다시 이전으로, 2024년 12월29일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어요. 진짜로. 뭘 해도 가족이 없잖아.*

전남 무안국제공항 분향소. 유가족협의회 제공
아침에 무조건 씻고 정갈하게 하고 무안국제공항 분향소에 들러서 179분에게 인사를 해요. 잘 주무셨습니까? 진상규명 빨리 되게 도와주십시오.
어르신들 계시니까 아침밥을 해야 하잖아요. 앞장서서 식사를 준비하는 언니가 있어서 저는 보조라도 해서 상 차리고 밥 먹고 씻고 셸터 청소하면 금방 점심시간. 그리고 뜨개질 조금 하고요. 이야기 좀 하다가 또 저녁때 되면 밥 먹고.
아침저녁은 여기서 거의 해먹어요. 원래도 바깥 밥을 싫어하고 우리 가족은 외식을 안 하는 사람들이라서. 밥해서 먹고 뭐 하다보면 또 하루가 가고. 한 건 없는데 하루하루가 너무 빨리 가요.
생각을 버리려고 뜨개를 하는데, 무기력증이 가시지가 않아. 처음에는 책도 갖다놓고 뭘 하려고 했는데 잘 안 들어와요. 저녁에 잠이 안 오면 보려고 스탠드까지 가져다놨거든요. 어제는 조금 봤는데 잘 안 들어오고. 운동도 좀 하려는데 걷기나 조금 뛰기, 그거밖엔 없죠. 여기 공항 2층에서.
초창기 때부터 이렇게 셸터에 와서 있었어요.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는 알아야 할 거 아니에요. 아무것도 해결 안 되고, 정부는 계속 숨기려고만 하고. 이제야 하나하나 밝혀지고 있잖아요.
처음부터 우리 가족은 어떻게든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공항에 있어야 하겠다 싶어, 저나 형부나 올케언니가 여기 있어요. 우리 오빠도 주말 되면 여기로 항상 퇴근하거든요. 너무 억울해서 그냥 이렇게는 가만있을 수 없어요. 어떻게라도 밝혀야 한다, 끝까지. 이거라도 해야지 제 마음이 편할 것 같고.
엄마 같고, 언니 같고, 아버지 같고. 이제 가족이 돼버렸어요. 서로 다 잘 챙겨주고 같이 있으니까. 저희가 여기서는 아픔을 같이한 분들이라서 울다가 웃다가 하지만, 집에 가면 말 한마디도 안 해요. 그리고 집에 못 있겠어요. 뭐가 해결이 안 되고, 진상규명도 안 되는 그런 답답함. 집에 가면 편치가 않아요.
진짜 엄청 힘든 게 뭘 깐다고 해도 바닥이 대리석이라 추워요. 히터를 더 틀면 코가 다 헐어버리고. 저도 여기 오래 있으려니까 가습기를 샀어요. 딸내미가 하나 사주더라고요. 이러다가도 집에 가면 하루이틀인데도 몸이 훨씬 더 좋아져요. 공항 오면 다시 원위치로 돌아오고.
일주일에 5일은 있죠. 한 이틀은 집에 가서 빨래도 하고 먼지는 닦고 와야 할 거 아니에요. 그런데 오늘 가면은 내일 저녁에 와야 해요. 사람이 없어. 셸터에 형부랑 언니 몇 분밖에 안 계실 것 같아서 이틀 아닌 하루밖에 못 잘 것 같아요.
돌아가신 분들이 아프다가 돌아가셨다, 하면 이해라도 되죠. 준비할 시간이라도 있었고. 그런데 10살, 15살 아이, 40대 한창 일할 나이에 가버리고. 이게 무슨 일인지 저는 진짜 이해가 안 돼요. 5명이서 한꺼번에 갔다는 것 자체가. 산소에 가서 이렇게 봐도 이게 현실이잖아요? 그런데 믿기지가 않는 거야.
사진 같은 것도 하나 없었는데 여행 가서 같은 패키지였던 유가족에게 사진을 좀 받았어요. 너무 행복했던 사람들이, 별생각이 다 들죠. 비행기라도 연착이 안 됐으면 절대 그런 일은 없었을 텐데…. 티브이에서 나오는 폭파 장면 자체를 잘 못 봐요.
전북 고창이 우리 나 서방(미선씨 남편) 본가거든요. 언니를 따로 모시려고 했는데 여행 같이 갔다가 그렇게 됐으니까 같이 모시면 어떻겠냐고 사돈께서 제안했어요. 자식이 많은 것도 아니고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랑 같이 가버려서. 우선은 고창에 모셨는데 애들은 놔두고 조금 있다가 언니는 모시고 와야죠. 사돈집에 놔둘 수는 없잖아요.
가서 보면 참 기가 막혀요. 5명을 이렇게 해놨잖아. 정말 열심히 살고 애들도 너무 착하게 살고, 그렇게 살았는데…. 가서 보면 진짜 미칠 것 같아요. 진짜 화가 나. 사람이 179분이 돌아가셨는데, 지금까지 놔뒀다는 자체가 나는 이해가 안 돼요. 정부도 문제가 있고. 전라남도나 광주시청, 광주에서도 많이 돌아가셨잖아요. 그런데도 지금까지 이게 뭐냐고. 진짜 살기 싫어, 진짜.
우리나라 자체가 잘못된 것 같아요. 유가족이 나서야지만 진상규명을 한다. 그게 뭐예요? 유가족이 안 나서도 그렇게 해야지, 맞죠? 시스템 자체가. 그런데 유가족이 나가서 시위하고 삭발하고 해야지 뭐 하나 막아주고. 그게 뭐냐고.
청문회 할 때도 정말 기분 나빴던 게, 국토교통부 장관이란 분이 하품하고, 허리 아프다고 자세도 이렇게 해가지고. 제가 뚫어지게 보고 있었거든요. 하품을 몇 번 하는 줄 아세요? 그리고 사과 자체도 안 했잖아. 정식으로, 국토부에서. 인정할 건 해야지.
공항공사 시설부도 둔덕에 콘크리트가 있다고 얘기했다 하더라고요. 관제탑 처음에 들어갔을 때 1조, 2조, 3조 나눠서 들어갔잖아요. 그런데 형부가 그걸 들으셨대요. 그 시설부 직원들은 그걸 알고 있었다. 1조, 2조, 3조가 다 말이 달랐던 거죠.
그런 걸 국가수사본부에서 바로잡고, 어떻게든 뭐가 해결돼야지 우리가 끝까지 있을 수만은 없잖아요. 잘못된 거, 잘못한 사람들, 책임질 사람들, 다 수사하고 뭐라도 되면 나가야 하겠죠.
우리가 언제까지 여기 있을 거예요. 우리도 하루빨리 가고 싶죠. 그런데 이대로는 진짜 갈 수 없어요. 우리가 우스갯말로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 들어왔어도 갈 때는 갈 수 없다고. 뭐가 해결돼야지 가지. 우리 이렇게까지 늦게까지 지금 1년 넘게까지 있을 거라고 상상도 할 수 없었어요, 진짜.
힘들어요. 분향소도 있고 둔덕도 있고. 보고 오면 울고, 또 오후에나 내려가서 또 보고 또 울고. 그런데 뭐든지 다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힘들어도 안 하고 그냥 내팽개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그런다면 할 사람이 없잖아요. 사랑하는 가족을 보내고 가만히 있을 수 없어요.
그래도 감히 제가 힘들다 그런 말 못해요. 70대 어르신들도 계시잖아요. 버스 타고 서울 가는 게 진짜 힘들어요. 처음에는 무릎도 아프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어르신들도 가는데, 애기가…. 하하. 다들 힘들죠. 힘들어도 해야죠. 저희가 유가족이 될 거라고 생각해봤겠습니까? 어떤 유가족도 다 마찬가지죠. 그래도 길면 긴 시간이지만 몇 개월 동안에 많은 게 돼가고 있잖아요. 그래서 끝까지 할 수 있다. 잘할 수 있다. 밝힐 수 있다. 우리는 할 수 있다.
조카랑도 11살 차이 날까요? 조카가 1985년생이니까. 나이 차이가 언니랑 이렇게 있어서 저는 30대에 할머니 소리를 들었죠. 우리 조카랑도 친구처럼, 언니동생처럼 지냈어요. 제가 뭘 잘못하면 이모 그거 아니잖아, 그러면서 혼내기도 하고. 딱 부러진 아이였으니까. 조카가 목포에 직장이 있었을 땐 우리 집에 있기도 하고, 서로 싸우기도 하고 그랬어요. 자매죠.
우리가 목포에 가면 커피숍 좋은 데 가고 했거든요. 언니랑 둘이 수시로 갔으니까 일곡동에 무슨 좋은 카페가 있다 그러면 밥 먹고 커피숍에 데려가고 담양에 데려가고. 조카였지만 수시로 그러고 봤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언니가 장사를 하다보니, 미선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집에 가잖아요. 언니 집에 가면, 애기가 그렇게 깔끔히 집을 청소해놓고 먼지 한 톨 없이 정리정돈이 다 돼 있었어요.
이번에 조카 집을 치우면서 제일 힘들었던 게 커피숍 가면 티슈 주잖아요. 그런 것까지도 차곡차곡 쟁여놓고, 아이스크림 일회용 수저 그런 것까지 지퍼백에 다 해가지고. 손대는 것 자체가 힘들었어요. 이렇게 깔끔하게 하고 살았는데.
너무 가슴 아픈 게 뭐였냐면 화장대를 치우는데 디올 화장품을 제가 많이 챙겨서 줬어요. 그런데 하나도 안 쓰고 그대로 모아놨더라고. 아끼면 뭐 한다고….
우리 가족 생일이면 조카 집에 가서 파티를 했어요. 뭘 하자 그러면 광주 조카 집에서 모이고. 그러던 애들이 없어져버렸으니 너무너무 아깝잖아요. 애들이 공부도 잘해가지고. 우리 하윤이가, 초등학교 3학년이 영어를 그렇게 잘했다고요.
오면은 “미영 할머니~” 그러면서 앵겨. 다 이유가 있지. 뭐 사달라고. 귀에다 대고 할머니 신비아파트 하나만 사주세요. 그러면 두 개 사주고 세 개 사주고. 안 해줄 수 없는 거지. 사르르 녹아서 다 해주는 거지.
원래는 애가 자동차를 좋아했거든요. 좀 크니까 신비아파트로 갈아타면서 신비아파트 사달라 하길래 그럼 너도 좋아하는 걸 할머니를 주라 했더니 자동차 3개를 줬어요. 우리 집에 진열돼 있어. 내가 조카 집 정리하면서 분향소에다 자동차 3대 갖다놨어요. 뭐라도 해줘야 하는데 해줄 수 없는 게 너무 그냥 미안하죠. 그냥 혼자도 많이 울어요.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개의치 않는 게, 제가 해줄 수 있는 게 진짜 이거밖에 없잖아요. 뭐라도 해서 살아올 수만 있다면 다 하겠지만 안 되잖아. 저희 희망과 꿈, 그런 게 다 무너져버렸잖아요.

전남광주 보성 녹차밭에 서 있는 조미자씨. 조미영 제공
시골에서 같이 노후를 지내려고 언니가 2년 동안 섬에다 집을 지었단 말이에요. 친정 집을 고쳐서 집을 지었어요. 집을 잘 꾸며놓고 여기에 우리만 왔다 갔다 하는 게 아니라 형제, 조카, 또 후손이 와서 쉬었다 갈 수 있게끔. 요즘 세상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잖아요. 와서 쉬었다 갈 수 있는 공간, 편하게 쉬었다가 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놓고 싶었던 거지. 조카들도 편하게 와서 쉬었다 갈 수 있게끔. 힐링이 되거든요. 앞에 바다가 딱 펼쳐져 있으니까. 자기 혼자만 살려고 한 게 아니라 이런 집을 세우고 싶었던 거죠.
돌담을 이렇게 쌓았거든요. 그 높이를 혼자 다 쌓았어요. 거기는 섬이라 식당이 없어요. 일꾼들 아침밥 해주고 돌담 쌓고, 점심밥 해주고 다시 돌담 쌓고, 저녁밥 해주고. 그 일을 거의 2년을 하다시피 했지. 그러다보니 그렇게 살이 빠져버린 거지.
우리 언니 진짜 복 있게 보이잖아요, 사진 봤을 때. 그런데 어떻게 저리 갈 수 있냐고. 애들도 그러고. 집 짓느라 고생하고. 언니가 집이 완성돼서 편하게 한 달이라도 살아봤으면은 몰라도 그렇게 가버려서 너무 안타깝고. 그래서 너무 그냥 가슴이 아파요.
언니가 있었으면 이랬을 텐데. 항상 생각이 나요. 또 명절이 돌아오니까 더 생각나고. 저는 결혼해서도 언니가 반찬을 다 해줘서 먹었어요. 김치도 다 담가줬고요. 엄마 김치는 결혼해서 안 먹어봤어요. 어릴 때부터 먹어서 우리 애들도 이모 김치가 제일 맛있다고 하고요. 그러니까 진짜 친정엄마보다도 더. 가슴 아픈 게 이제 이분들의 제사상을 제가 차려야 한다는 거. 힘들고 그런 게 아니라 그런 마음이, 가슴이 아파요.
2년 전엔가, 언니랑 그런 얘기를 했어요. 우리가 육 남매인데 누구 하나 가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힘들까, 그냥 안 아프고 다 건강했으면 좋겠다 그랬는데, 이렇게 제일 빨리 가버렸네.
저도 일을 안 하고 있었으면 여행 같이 갔을 거예요. 항상 같이 다녔으니까. 같이 가자고 했을 것 같아요. 고인 중에 저랑 이름 비슷한 분이 있었어요. 그래서 이름이 잘못됐나보다, 조미자 껌딱지라 따라가서 저렇게 같이 가버렸나보다, 지인이 그렇게 얘기하더라고요.
저희는 사랑한다는 말을 되게 많이 썼거든요. 언니 돌아가시고 카톡 한 것을 보니 오빠도 언니한테 사랑한다고 썼더라고요. 아, 우리가 이렇게 사랑한다는 말이라도 하고 지내서 그나마…. 언젠가는 누구나 가야 할 길이잖아요. 그런데 이리 빨리는 상상을 못해서.
언니랑 오빠랑 셋이 산을 가도 같이, 어디를 가도 같이 다녔어요. 진짜 추억이 많아요. 나물 뜯으러 다니지, 칡 캐러 다니지. 바닷가 가서 미역도 하고. 버섯 따러 가서 삼을 하나 캤는데 “심 봤다~!” 다 외치고. 오빠가 언니만 먹으라고 하니까 언니가 “안 된다. 이건 다 같이 나눠 먹어야 한다” 그래가지고 셋이 뜯어 먹고.
엄마 돌아가시기 전에 암이었거든요. 그래서 언니 집에서 모시고 있다가 돌아가시고, 다리 불편하셨던 아버지도 언니 한 달, 저 한 달 이렇게 모시다가 언니 집에서 돌아가셨어요. 지금 와서 생각하니 언니한테 너무 많은 짐을 안겼구나. 그때도 고생한 줄은 알았지만 딸이 감히. 날마다 목욕시켜드리고 먹을 거 다 해서 드리고 너무 잘했으니까. 너무 아까운 사람이에요, 우리 언니가.
진짜 언니는 우리 집의 기둥이었어요. 그런데 우리는 너무 많은 걸 바랐던 것 같고. 짐을 너무 많이 지웠던 것 같아요. 그게 너무 안타깝고.
순천에 있을 때는 한 달에 한 번씩 제가 순천에 갔어요. 그때는 가는 데 3시간 걸렸거든요. 한 달에 한 번씩 갔어요. 그리고 전화하잖아요. 1시간도 넘게 통화하고. 이번에 언니 가시고 우리가 하루에 통화를 몇 번 했을까 하고 봤더니, 하루에 7번까지도 했더라고요. 안 보면은 할 말이 별로 없거든요. 날마다 보고 전화하면 오히려 할 말이 엄청 많아요.
형부가 그러셨대요. 너희는 도대체 할 말이 뭐 그리 많냐고. 그러면서도 그냥 너무 좋아 보이는 거지. 자매간에도 그렇고 형제간에도 그렇게 지내니까. 언니가 너무 대인배. 완전 그냥 모든 거 다 포용하고 자기가 희생하면서 다른 사람이 즐겁고 행복하면, 가족이 행복하면 된다. 누구나 할 수 없는 거잖아요. 언니는 그냥 많이 배려하고 품어주고, 사랑으로 다 품은 거죠. 모든 사람을 그냥. 누구는 이만큼, 누구는 이만큼 그런 게 아니라 다.
해보고 싶은 게 너무 많았거든요. 이제 여행 갔다 와서 설 쇠고 둘이서 시골로 들어가기로 했지. 둘이 흙집을 지어서 찜방을 만들기로 했어요. 너는 내 옆에서 밥만 해줘, 그러면 나는 동산을 가꾸겠다. 밥만 하나요? 같이 하지. 하는데 네가, 내 동생이 옆에만 있어주면 나는 힘이 난다, 그거지. 그런데 그걸 못해서. 그런 게 다 이렇게 돼버렸지. 시골 가서 언니가 지어놓은 집을 가꿔야 하는데 갈 때마다 되게 힘들어요, 생각나서.
형부랑 저랑 처음에 많이 싸웠어요. 저는 형부를 생각해서 술을 못 마시게 하는데 형부는 힘드니까. 그런 건 아는데 마시면 안 되거든요. 지금은 제가 말을 못해요. 무슨 희망이 있겠어요? 무슨 낙이 있겠어요?
언니가 있을 때는 뭐든 다 해줬잖아. 그리고 집에 가면 혼자 있잖아. 밥을 먹는다고 해도 오죽하겠어요. 언니가 다 보고 있는데. 집에 지금도 큰 사진 액자가 그대로 있어요. 거실부터 부엌까지 하면 10개 정도 더 될걸요? 자기애가 되게 강해가지고. 또 이쁘기도 하잖아요. 집을 치워야 하는데 못 버리겠어. 화장품도 내가 못 치웠어. 아직도 못 치우겠어요.
언니 옷을 쓰레기로 그냥 내버릴 수가 없더라고. (지금 입은 옷) 이것도 언니 거. 정말 못 입겠다는 것만 보내고 놔뒀어요. 올케 언니도 형님 생각하면서 입겠다, 그런 것은 주고. 그냥 기억하고 싶어서 어울리든 안 어울리든 그냥 우리 식구를 기억하자. 항상 기억하겠지만, 잊지 않고 진상규명을 꼭 해야 한다 하면서 입어요.
우리 미선이, 나 서방, 하음이, 하윤이, 우리 언니 잊지 않게끔 좋은 일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오빠랑 하고 있어요. 기억에 남게끔. 우리 가족만 생각할 게 아니라, 이름을 잊지 않게끔 하려고 생각하죠.
지금은 만날 수 없지만, 진상규명을 해놓고 시골집도 잘 꾸며놓고 애들도 다 잘 챙기고 언니 보러 갈게. 너무 많이…, 동생을 딸처럼 잘 챙겨주고 나는 맨날 받기만 하고 해준 게 없어서 너무 미안하고. 미선이도 너무 보고 싶고. 우리 나 서방, 하음이, 하윤이. 미선이가 하고 싶었던 거 이모가 다 기억하고 있고, 미선이가 원했던 거 이모가 살아 있으면서 해놓고, 다 해놓고. 이제 가면 다시 만날 수 있겠죠. 많이많이 사랑하고 보고 싶고. 어찌 우리 가족을 잊을 수 있겠어요?
정나라·이소아·허정 ‘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 활동가
*참사 현장에선 참사 1년2개월이 지난 2026년 2월에야 재수색을 시작해, 사고지점 주위에 방치된 유해가 발견됐다. 조미영씨는 이번 참사로 언니 조미자씨, 조카 미선씨 부부, 그들의 두 아이 하음이와 하윤이 이렇게 5명의 가족을 잃었다.
*2026년 2월19일 ‘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 활동가들이 유가족 조미영씨를 인터뷰하고 기록했다. 이 글은 ‘무안공항 참사 이후를 사는 사람들’ 8회로, 한겨레21 누리집에서 이전 연재물을 볼 수 있다.
https://h21.hani.co.kr/arti/SERIES/3408
*이 구술기록은 2025년 4·16재단 부설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재난 피해자 권리회복사업 지원을 받아 수행된 결과다.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사, 퇴, 하, 겠, 습, 니, 다…“장동혁 평가? 7자면 돼” 이재오 맹공

아침 6시 자다가 덮친 네팔 홍수, 68살 생존자 “아내 손잡을 겨를도 없이…”
![[속보] ‘국회 침투’ 김현태 징역 12년…“특정세력 위해 군사력 사용” [속보] ‘국회 침투’ 김현태 징역 12년…“특정세력 위해 군사력 사용”](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6/0827/53_17878111690847_20260827502436.jpg)
[속보] ‘국회 침투’ 김현태 징역 12년…“특정세력 위해 군사력 사용”

이재명 정부, 윤 정부 졸속 발표한 5개 ‘기후 대응댐’ 건설하기로

박용진 “유시민, 아프라고 때려…그 큰 영향력으로 먹고사는 문제는 안 짚어”
![[영상] 네팔 대홍수 “빙하 붕괴”가 원인인 듯…최소 160명 사망 [영상] 네팔 대홍수 “빙하 붕괴”가 원인인 듯…최소 160명 사망](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6/0827/53_17877832989073_20260827500200.jpg)
[영상] 네팔 대홍수 “빙하 붕괴”가 원인인 듯…최소 160명 사망
![이 대통령 지지율 50% 회복…국정 신뢰도는 최저 48% [NBS] 이 대통령 지지율 50% 회복…국정 신뢰도는 최저 48% [NBS]](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6/0827/53_17877980613794_20260825503476.jpg)
이 대통령 지지율 50% 회복…국정 신뢰도는 최저 48% [NBS]

‘국회 침탈’ 김현태, 1심 선고 D-1…전한길 “구속 땐 중대 결심”

“다시 탈게요” 박수홍, 비행기 지연 ‘민폐’ 논란에 사과…“아이 울어 당황”
![용산공원 공공주택 찬성 29%…재개발 규제 완화 59% [NBS] 용산공원 공공주택 찬성 29%…재개발 규제 완화 59% [NBS]](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resize/test/child/2026/0827/53_17877982240612_20260827501414.jpg)
용산공원 공공주택 찬성 29%…재개발 규제 완화 59% [NB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