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류석우 기자가 2025년 11월13일 쿠팡 심야배송 일을 하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2025년 늦가을 공론장은 ‘새벽배송 금지 논쟁’으로 뜨거웠다. 민주노총 택배노조가 처음에 던진 쟁점은 ‘0~5시 초심야 배송 제한’과 ‘주간 2교대제’였다. 그런데 이 제안이 ‘새벽배송을 모두 없애자는 말이냐’는 질문으로 뒤틀렸다. 이후 공론장은 크게 ‘야간노동은 발암 요인으로 노동자들에게 위험하니 규제해야 한다’는 쪽과 ‘새벽배송이 필요한 소비자는 물론이거니와 노동자의 선택권도 존중해야 한다’는 쪽으로 나뉘었다.
그 와중에 쿠팡 노동자들은 한 명씩 스러져갔다. 11월에만 쿠팡 심야배송을 하던 특수고용 노동자 1명과 물류센터에서 밤새워 일하던 비정규직 노동자 2명이 길 위에서 혹은 퇴근 직후 혹은 물류센터에서 일하다 숨졌다. 2025년 사망한 쿠팡 노동자만 8명(배송기사 4명·물류센터 4명)에 이른다.
고백하건대, 류석우 기자에게 심야배송과 주간배송을 최소 일주일씩 직접 하면서 체험관찰을 해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한 것은 앞선 논쟁과 노동자들의 사망 뉴스를 오가며 느낀 조급함에서 비롯했다. 소중한 생명들이 쿠팡의 ‘고강도·초효율·플랫폼 통제 시스템’에 의해 스러져 나가면서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 문제를 두고 오랜만에 펼쳐진 논쟁의 장에서 한겨레21도 저널리즘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어떻게든 보탬이 돼야 할 것 같은 조급함이었다.
류 기자가 그 제안에 선뜻 동의해줬고, 곧바로 쿠팡 택배기사가 운전하는 트럭 조수석에 타고 보조기사로 일하며 현장의 노동 실태를 파악하는 것과 동시에 24시간 활동혈압계와 수면을 기록하는 액티그래프, 체온을 측정하는 바이탈링 등을 착용하고 신체 변화와 수면 질 등의 건강상태를 수치로 확인해보기로 했다. 직업환경전문의인 김현주 이화여대목동병원 교수의 조언을 받았다.
그때쯤 취재 소식을 들은 한 동료 기자가 물었다. “심야배송, 그걸 직접 한다고 이제 와서 뭘 보여줄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이미 기자가 체험관찰해 험난한 택배노동의 실태를 알린 보도가 처음이 아니라는 생각에서 비롯한 것이다. 그렇다. 류 기자가 기존에 우리가 익히 알고 있을 법한 고된 택배노동을 체험하는 고생만 반복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사실은 이미 알고 있더라도 의도적으로 반복해서 기록하고 재각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저널리즘에서 가장 중요한 건 어떤 사실을 다른 매체보다 먼저 발굴해 알리는 일보다, 고통받는 사람들이 내뱉는 절규를 더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번역해서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동료 시민들을 설득해내는 일이다. 이를 위해 고통의 현장에 몸을 던져 직접 겪은 힘겨움을 잘 벼려내 보여주는 것보다 더 설득력 있는 방법이 있을까.
6일 동안 심야배송을 하고 하루 쉰 뒤 6일 동안 주간배송을 하고 돌아온 류 기자는 그사이 몸무게가 3㎏이나 줄었다고 했다. 그가 몸으로, 땀으로 일하며 보고 듣고 기록한 ‘쿠팡 심야·주간 14일 택배노동 일기’를 최소 두 차례 이상 표지이야기로 전한다. 결론은 두 가지다. 우선 극한까지 쥐어짜는 방식으로 일을 시키는 쿠팡의 배송 시스템이 택배기사들의 몸을 서서히 무너뜨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른 하나는, 그 무너짐의 속도가 결코 나중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재훈 편집장 nang@hani.co.kr
*‘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이 쓰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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