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레이션 슬로우어스
“사장님, 나빠요.”
꽤 오래전 유행어지만, 지금도 간혹 듣게 된다. 한 희극인이 연기한, 스리랑카에서 온 이주노동자 블랑카. 블랑카가 사장이 나쁘다는 이유는 별것 없다. 임금을 체불당해서, 감금·폭행이 있어서, 다쳤는데 치료비조차 보상받지 못해서… 이런 이유가 아니다. 사장님이 ‘소소하게’ 나쁘니 보는 사람도 가볍게 웃을 수 있다. 이주노동자를 흉내 냈다는 어눌한 말투가 한층 웃음을 키운다. 불편하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블랑카가 등장한 20년 전부터 불편했으니, 굳이 불편하다고 말할 필요도 없다.
이주민을 만나 그의 노동이건 삶이건 기록할 때가 있다. 이때 기록자들이 고민하는 게 있는데, ‘그의 말을 어떻게 재현해야 하는가’다. 거기에는 말씨도 들어간다. ‘사장님, 나빠요’와 같이, 외국어가 익숙하지 않기에 다소 어눌한 발음으로 단순한 어휘와 중복되는 표현을 사용한다면, 그 어투를 그대로 옮겨 적는 게 과연 옳은가.
그가 한 말을 고스란히 옮겨 담는 것이 한국이란 낯선 곳에 온 그의 처지를 생생하게 살리는 일이 될까, 아니면 이주노동자에 대한 편견을 재생산하는 일이 될까. 고민에 빠진다. 그런데 그건, 게으른 것일 수도 있겠다.
우리가 듣고 싶은 말이 이주노동자가 놓인 처지에 그치기 때문에 언어의 장벽이 주어진 채로 대화를 나눈다. 그가 자신의 경험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주어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무엇을 시도했는지,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에 놓인 이가 가지는 포착과 통찰, 그로부터 변화하는 시선을 알고자 했다면, 더 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그의 말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은 언어일 텐데, 통역 문제는 어디까지 고려됐나.(물론 통역비를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을 몰라서 하는 소리가 아니다. 다만 고민과 시도에 대한 이야기다.)
그의 ‘말’이 아니라 그의 ‘상황과 처지’가 필요했던 것이라면, 이건 고민도 없이 ‘그 처지를 더 생생하게 살려줄’ 표현을 찾아가면 된다. ‘사장님, 나빠요’ 같은. 이건 게으른 게 아니라 예의가 없는 것일지도. 그 앞에서 아무리 존대해도 실은 다짜고짜 반말부터 하는 사장이나 정주민(한국) 노동자들과 다를 바 없는 일이겠다.
다른 나라 사람을 만날 때만 해당하는 고민이 아니다. 언어장애 특성을 지닌 사람의 말은 어떻게 알아들어야 할까. 한때 이런 고민을 한 적이 있었다. 주변에서 조언했다. “한 번 더 말해달라고 해.” “다시 물어.” “계속 들어봐.” 그의 어법과 어투에 익숙해지라는 말이었다. 듣지 않고 알아들을 생각을 했다니. 내가 게을렀다. 누구나 정주민처럼, 도시 사람처럼, ‘요즘’ 사람처럼 말하진 않는다. 언어 사용 방식이 나와 다른 사람과 만난다. 서로의 어법에 익숙해지다보면 대화가 가능하다. 그들의 언어를 모르는, 게으른 기록자를 만나면 그들이 언어를 모르는 사람으로 둔갑한다.
최근 화제가 된 이 문장. ‘나는 비록 못배웟어도 좋은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어엿븐 학생들을 위해 내가 할수 있는 일이 있는 게 기뻣읍니다.’ 한 드라마에서 대학 청소노동자들의 대자보를 재현한 방식이다. 게으른 사람이 만든 게 아닐까, 의심이 든다.
이 문장뿐일까. 청소노동자와 같은 직군을 재현하는 방식이 마음에 맺힐 때가 있다. 기사(한겨레)를 통해 한 청소노동자는 심정을 전했다.
“드라마라서 좀 과장하느라 청소노동자를 그렇게 그린 건가 싶기는 해요. 그래도 자존심은 좀 상하네요. 우리가 컴퓨터만 쓰는 젊은 학생들보다 글씨는 더 바르게 쓸 텐데.”
고국에선 ‘새 박사’라 불릴 정도로 많은 새의 이름을 알았는데 한국에선 새를 볼 일조차 없다고 아쉬워하던 이, 두꺼운 책을 펴놓고 ‘재개발’ 공부를 하다가 휴게실에 사람이 오면 후다닥 책을 숨기던 이, 기개도 언변도 좋아 늘 ‘국회로 보내자’는 농담을 받던 이가 스쳐 간다. 이주, 청소, 돌봄, 단순, 반복, 파견… 게으른 세상이 준 납작한 이름 속에 살아가는 이들이.
희정 기록노동자·‘죽은 다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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