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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없고 배경 없는 장병의 ‘비빌 언덕’

등록 2024-11-08 23:11 수정 2024-11-13 07:57
2024년 10월15일 열린 군인권센터 창립 15주년 기념행사에서 임태훈 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군인권센터 제공

2024년 10월15일 열린 군인권센터 창립 15주년 기념행사에서 임태훈 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군인권센터 제공


‘명태균’ 이름 석 자가 정국을 집어삼킨 게 벌써 두 달이 넘었다. 그새 잊히고 가려진 게 적지 않다. 채수근 해병 순직 사건 수사와 관련해 항명 등의 혐의로 기소된 박정훈 대령(전 해병대 수사단장) 재판도 그중 하나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2024년 11월6일 한겨레21과 한 전화 인터뷰에서 “권력을 남용해 불법행위를 했다는 점에서 ‘명태균 게이트’와 채 해병 사건은 본질적으로 같다”고 말했다. “돈 없고 배경 없는 장병의 비빌 언덕”을 목표로 2009년 창립한 군인권센터는 최근 창립 15주년을 자축했다.

―공군 제17비행단에서 직속상관이 부하 장교를 성폭행하고, 군 당국은 이를 덮으려 2차 가해를 가한 사건이 벌어졌다. 고 이예람 중사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데.

“개인의 일탈이 아니다. 성폭행 사건은 어디서나 벌어질 수 있지만, 유독 군에서 문제가 되는 건 ‘위계질서’란 군 조직의 특성 탓이다. 가해자인 상관, 인사권자, 선임자는 권력관계를 악용해 범행 뒤 피해자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다’고 협박한다. 피해자가 신고하면 수사해 처벌하면 되는데, 군 당국은 입막음을 위해 2차 가해를 가한다. 군대 내 가혹행위나 성범죄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할 군이 아군을 가해하는 행위다. 이는 전투력 약화로 이어져 적을 이롭게 하는 ‘이적행위’나 다름없다.”

―채 해병 순직 사건 수사에 대한 은폐·외압 의혹을 밝히기 위한 특검법이 윤석열 대통령의 거듭된 거부권 행사로 1년4개월째 표류 중이다.

“통치행위란 법에 의한 통치를 뜻한다. 채 해병 순직 사건 수사 과정에서 외압과 직권남용이란 명백한 불법이 저질러졌다. 대통령이 법치주의를 망각했다는 게 사건의 본질이다. ‘명태균 게이트’나 ‘김건희 게이트’도 사안은 다르지만 대통령의 통치행위가 권력을 남용하거나 불법적 행위를 했다는 점에서 채 해병 사건과 본질적으로 같다. 공교롭게도 ‘김건희 특검법’에도 채 해병 수사 외압에 관한 사항이 포함돼 있다.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 구명 로비 과정에서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범이나 대통령실이 관여했는지를 밝혀야 하기 때문이다. ‘김건희 특검법’이 통과돼도, ‘채 해병 특검법’이 통과돼도 이에 대한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 항명죄로 기소된 박정훈 대령 재판의 결심공판은 11월21일로 예정돼 있다.”

―군인권센터가 지난 10월15일 창립 15주년 기념식을 한 것으로 안다.

“15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대학생 군복무 중 학자금 대출 이자 면제, 군 영창제도 폐지, 병사 휴대전화 사용 허용, 입대 장병 전원 뇌수막염 예방 접종, 계엄문건 폭로 등의 성과가 기억난다. 군인권센터는 자식을 군대에 보낸 부모들과 돈 없고 배경 없는 장병한테 ‘비빌 언덕’이라도 마련하자는 뜻에서 시작했다. 특권층 자녀는 군 면제를 받거나, 군에서 편한 보직을 받는 게 현실 아닌가. 불평등한 군대를 평등하게 만들기 위해 계속 노력해나갈 것이다.”

―임 소장과 함께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로 옥고를 치렀던 나동혁씨(제1488호 기승전21)가 최근 여행 중 사고를 당했다는 내용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던데.

“동혁과 서울구치소에 같이 있었다. 나는 재소자가 지내는 사동에서, 동혁은 교도관이 근무하는 교무과에서 각각 청소부로 일했다. 가끔 만나서 수다도 떨고. 얼마 전 대만으로 자전거 여행을 갔던 동혁이 현지에서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심정지 상태로 병원으로 옮겨졌다. 나라도 달려가야 하는 거 아닌가 싶어 항공권 검색까지 했다. 지금은 다행히 의식이 돌아온 상태지만, 회복까지는 오랜 기간이 걸릴 것 같다. 외국에서 치료받다보니 비용이 엄청나다. 재활도 해야 한다. 평화단체 전쟁없는세상을 중심으로 치료비 모금을 하고 있다. 동혁을 기억하는 모든 분이 동참해주시면 좋겠다.”


―한겨레21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21은 감옥에서도 꼭 챙겨봤다.(웃음) 시사매체로서 정치뉴스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겠지만, 정치뉴스가 단순히 정치인의 전유물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정치인이 주도하는 정치만이 아니라, 일상의 정치도 존재한다. 21이 그런 정치뉴스를 많이 발굴해주면 좋겠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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