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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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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의 거부 20년 뒤의 ‘복잡한 마음’

등록 2023-11-10 20:00 수정 2023-11-16 23:49

서울 마포에 사는 나동혁(46·사진)씨는 ‘인문학적 사고를 즐기는’ 수학 강사다. <수학의 눈으로 보면 다른 세상이 열린다>(2019년)를 비롯해 수학 관련 교양서 3권을 낸 작가이기도 하다. 학생운동과 진보정당 활동에 열심이었던 20대 시절 그는 <한겨레21>에 ‘가끔’ 등장했다. 이를테면, 2004년 7월29일 발행된 제519호 표지에 수줍게 웃고 있는 그의 얼굴이 보인다.

2001년 12월 불교 신자이자 평화운동가인 오태양씨가 ‘불살생’이란 신념에 따라 총 들기를 거부했다. 여호와의 증인 신자가 아님에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택한 첫 사례다. 이후 ‘차마 총을 들 수 없다’는 선언이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왔다. 나씨도 ‘대체복무제 도입’을 촉구하며 2002년 9월 일찌감치 그 대열에 합류했다. 그 시절 ‘ 거부자 ’ 는 군대 대신 감옥 에서 1년6개월을 보내야 했다 . 헌법재판소가 종교적 신념 등에 따른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조항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은 나씨의 ‘거부 선언 ’ 이후 15년9개월이 지난 2018년 6월이다.

―어떻게 지내나?

“학원에서 강의하면서 돈 버는 게 주업이고, 동네(서울 마포구 성산동)에서 우리동네나무그늘협동조합 이사장도 하고 있다. 영화도 보고, 강연도 듣고, 다양한 소모임도 하는 조합원이 300명 정도 된다. 마흔 살 무렵 강사 때려치우고 진보정당 활동을 다시 시작했는데, 정당은 지역이 기본이어서 마포에 터를 잡았다. 지역정치를 하려고 5년 정도 활동했는데, 돈도 떨어지고 그만 접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답도 안 보이고.(웃음) 그렇다고 그동안 해온 일을 전부 ‘무’로 돌릴 필요는 없을 거 같고, 그저 동네 주민으로 열심히 살자는 생각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진보정당 위기론이 또 나온다.

“지금도 정의당과 녹색당 이중 당적자다. 당 내부에서 어떤 말이 나오는지는 잘 알지만, ‘정신적 거리두기’를 하며 모르는 척하고 있다. 맘이 복잡하다. 소셜미디어 때문에 사람들이 점점 확증편향이 심해지는 것 같다. 정치 뉴스도 양당제로 소비된다. 양쪽 지지자들이 싸우는 것 같아도 적대적 공생관계가 공고하다. 그 사이에서 진보정당은 존재감이 없다. 그게 가장 슬프다.”

―‘거부’를 선언한 게 벌써 20년도 넘었다.

“당시 병역거부 이유서를 주렁주렁 썼다. 주로 인권 문제 등 남 설득하기 좋은 얘기를 잔뜩 모았던 기억이 난다. 그땐 그냥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안 하고는 못 견디는, 외면할 수 없는 그런 마음이었다. 돌이켜보면 난 후천적 평화주의자이지, 선천적으로 평화적인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거부’ 전력 때문에 경험한 차별은 없었나?

“학원 강사를 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다. 수학을 전공했고, 여전히 수학을 좋아하고, ‘관종끼’도 좀 있고 해서 할 만한 직업이다. 다만 관련 내용이 검색에 노출되지 않게 신경을 쓰긴 했다. 요즘은 자기 생각을 아이들에게 말하는 거 자체가 금기시된다. 다들 민감한 ‘소비자’라서.(웃음)”

―<한겨레21>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진보언론은 하나라도 꼭 구독한다. 지난 2년 봤던 ‘경쟁지’ 구독 기간이 끝났으니 이번엔 <한겨레21>을 볼까? 솔직히 한동안 못 봐서 딱히 드릴 말씀이 없다.(웃음) 그냥 요즘 느낌을 말하겠다. 정치 뉴스를 많이 보는데 대부분 예능처럼 돼서 볼수록 바보가 되는 거 같다. 사회 뉴스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보면 힘들어서 외면했다가 다시 봤다가 한다. 팔레스타인 관련 뉴스를 보면 답답하고 무력감을 느낀다. 주변에선 온통 주식·코인·부동산 얘기뿐이다. ‘조국 교수를 지지한다’는 사람들 속에도 ‘작은 윤석열들’이 있다. 그런 흐름에 빠지지 않으려면 정신 바짝 차려야지 싶다. 안 그러면 그야말로 ‘훅’ 갈 거 같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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