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피를 저쪽(비상계단으로 향하는 출입구)으로 했으면 인명 피해가 많이 줄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 그리고 인명 피해가 많았던 이유는 대피 방향이 잘못된 것도 맞는데 외국인 근로자가 많습니다. 정규직 직원이 아니고 용역회사에서 필요할 때 파견받아서 쓰는 일용직분이 대부분이다보니 공장 내부 구조가 익숙지 않았던 부분도 크지 않았나….”
2024년 6월24일 리튬 배터리 폭발 사고로 23명이 숨진 경기도 화성시 아리셀 공장 앞. 새까맣게 타버려 그을음만 남은 공장 건물 앞에서 조선호 경기도소방재난본부장이 30분 남짓 언론 브리핑을 했다. 이 화재가 어떻게 발생했는지, 왜 그토록 많은 희생자를 냈는지에 관한 설명이었다. 많은 말 가운데 이 세 문장이 희생자들이 처한 상황을 가장 적확하게 설명했다. 안전이라는 자원에서 구조적으로 배제된 사람들이라는 말이었다.
비정규직은 각종 임금과 복리후생은 물론 생명 안전에서도 차별받는다. 원청이 위험 공정을 하청에 떠밀고 보호구와 안전장갑을 턱없이 부족하게 지급한다. 안전에 관한 각종 소통 창구를 차단한다. 여기에 더해 아리셀 화재 참사는 비정규직에게 ‘위험 정보권’마저 박탈된 현실을 보여줬 다 . 노동자가 일터 위험에 관해 사용자에게 체계적인 설명을 듣고 대처법을 익힐 권리 , 그리고 비상 대피로를 사전에 파악하고 대피를 연습할 권리 말이다 .
사용자의 편의에 따라 소모품처럼 그때그때 공장을 들고 나는 불법파견 노동자들은 이런 권리를 전혀 보장받지 못했다. 리튬 배터리는 결함이 생기면 내부 온도가 1천도 이상으로 치솟으며 폭발한다. 그런 상황이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언제 소화기를 버리고 창밖으로 몸을 던져야 하는지, 비상계단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시시티브이(CCTV) 영상 속에서 마지막까지 불을 끄려 애쓰던 노동자들의 모습은 그래서 가슴을 아리게 한다. 관리직이 단 한 명이라도 이들에게 위험을 알려줬다면, 단 한 번이라도 비상대피 훈련을 체계적으로 받았다면 누군가는 목숨을 건졌을지도 모른다.
하청에 위험을 떠민다는 의미로 쓰인 말 ‘위험의 외주화’는 이제 ‘위험의 이주화’라는 말로 확장됐다. 저임금과 노동법의 사각지대로 생명을 지킬 권리마저 박탈당한 노동자들이다. 가장 열악한 노동자의 목숨을 제물 삼아 한국 사회는 오늘도 공장을 굴린다. 아리셀 화재 참사는 그 단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민낯이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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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물과 노동자를 한자리에…아리셀, 예견된 참사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5727.html
이름도 얼굴도 불탔다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571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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