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나는 군복무를 하고 있었다. 1998년 5월부터 2000년 11월까지 30개월 동안, 나는 세상과 차단된 채 표류했다. 군대는 명령과 복종, 절차와 이행 외에 다른 커뮤니케이션은 허용하지 않는 곳이다. 사람은 자유를 박탈당하고 사회로부터 점점 괴리되고 있음을 체감할 때 공포를 느낀다. 그때의 공포는 나의 존재와 사유가 사회 어디에도 닿아 있지 않은 것처럼 느끼는 고립감에서 기인한다. 나는 고립감을 떨쳐내기 위해 작은 조각이나마 읽을거리를 목말라했다.
군생활이 절반쯤에 이르러 목마름이 극에 달했을 때, 길이 열렸다. 매주 보급품을 받으러 부대 밖으로 나가는 수송병에게 서점에 들러 <한겨레21>을 사와달라고 부탁할 수 있었다. 그렇게 구한 주간지에서 사회와 생각을 이어갈 통로를 찾고 안도했다.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한국군이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죽였다”(제289호)며 민간인 학살을 증언하는 기사를 보면서 가슴을 쳤다. 제대 뒤에는 인도네시아 정부군이 자유아체운동 반군을 잔혹하게 토벌한 현장 르포르타주가 담긴 ‘아체의 통곡’(제466호)을 읽고 오열했다. 내게 <한겨레21>은 어둠 속에서 더듬더듬 사회와 세계를 읽게 해주고, 그 독해로 다시 내 존재를 가늠하게 하는 지표였다.
2024년의 우리는 스마트폰 화면 안에서 세상의 모든 현상과 연결됐다고 생각하며 산다. 알고리듬은 내가 필요하다 생각하는 정보를 눈앞에 내밀어준다. 치열한 쟁점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면 손쉽게 ‘정답’에 이르는 길을 알려주기도 한다. 군대 안에서 연결이 차단된 채 고립됐던 나와 지금의 우리는 과연 다른 삶을 살고 있을까? 나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스마트폰으로 연결된 세상에서 세계 곳곳을 들여다보고 손쉽게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그런 세계만 있는 건 아니다. 우리는 알고리듬의 작동으로 우리의 신념과 가치관에 부합하는 정보를 확증편향적으로 입수한다. 동시에 세상의 모든 사건이 어떤 이들의 의도와 개입으로 조종된다는 음모론에도 노출된다. 그러니까 우리는 최대한으로 허용된 자유 속에서 되레 생각의 자유를 박탈당하는 역설의 삶을 살고 있다. 그것은 무엇이 옳은지 알 수 없는 또 다른 암흑의 세계이고, 공포다.
이런 세상에서는 옳음에 대한 판단을 최대한 유보하고, 느리게 생각하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 나는 그런 연습의 기회를 현상에 최대한 가까운 곳까지 다가가 실체를 가능한 한 온전하게 보도하는 저널리즘에서 찾을 수 있다고 여전히 생각한다. 2024년 3월16일로 창간 30주년을 맞는 시사주간지 <한겨레21>이 독자에게 그런 토대를 제공하는 하나의 연습장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이번 창간기념 특대1호는 강과 바다, 갯벌을 생태적으로 복원하는 ‘재자연화’를 전면에 내세웠다. 탈물질적 가치, 자연과 인간의 관계성 회복을 새로운 30년을 향한 미래 의제로 제시하려 한다. 미래만 보는 건 아니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 침공이 150일을 넘어서면서 가자 주민 사상자가 10만 명을 넘어섰다. <한겨레21>은 이 지독한 동시대를 침공 직후인 2023년 10월23일 발행된 제1484호부터 한 호도 거르지 않고 기록하고 있다. 이런 현재와 미래를 함께 읽으며 여러분의 지표가 될 수 있기를 갈망한다.
이재훈 편집장 nang@hani.co.kr
*‘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이 쓰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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