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턴의 창’(Overton window)이란 개념은 정치비평에서 매우 중요하며 쓸모가 많은 개념이다. 영미권에서는 많이 거론되지만 한국에선 생각 외로 널리 알려지지 않아 낯선 개념이다. 정치학자 조지프 오버턴이 고안한 것으로, 정치 이념과 정책에 관련한 여론을 분석하는 틀이다. 어떤 정책이든 좌우 스펙트럼의 어느 한 곳에 놓였을 텐데, 대중이 극단적이라고 받아들이면 지지를 얻지 못하고 정책이 될 수 없다. 대중이 받아들이기에 좌우 어느 한쪽 편향 없이, 누구나 받아들일 만한 통념에 걸쳐 있다면 정책으로 수용될 수 있다. 대중이 정책으로 수용하는 이념 범위는 여섯 단계의 범주로 정리된다. ‘상상할 수 없는’ ‘극단적인’ ‘받아들일 수 있는’ ‘합리적인’ ‘통념적인’, 마지막으로 ‘정책’으로 수용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다시 반대쪽의 정치적 극단으로 향해 역순으로 ‘상상할 수 없는’으로 나아간다.
오버턴의 창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가변적이다. 즉, 대중에게 극단적이지 않고 합리적이거나 통념적으로 수용되는 것의 범주가 좌우 어느 쪽이든 옮겨갈 수 있다는 말이다. 예를 들면 과거에는 대다수 시민이 기본소득에 반감을 갖기는커녕 그런 개념이 있는지조차 몰랐지만, 현재는 일부는 극단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일부는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있다. 오버턴의 창이 조금이나마 왼쪽으로 옮겨졌거나 확장됐다고 할 수 있다. 혹은 성소수자 권리와 관련해, 과거에는 성소수자의 존재조차 인정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현재는 성소수자가 연예인으로서도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등, 성소수자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조금씩 변화함을 예로 들 수 있다.
오버턴의 창이 항상 역사의 흐름에 따라 진보의 방향으로 이동하거나 넓어지는 것은 아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전까지 ‘취업은 곧 평생직장’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하지만 경제위기로 인한 대규모 구조조정 이후 ‘평생고용’은 꿈같은 이야기가 됐고, 이제는 심지어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격차가 정당하며 더 벌어져야 한다고 믿는 사람도 많아졌다. 큰 위기와 사건으로 말미암아 노동 관련 사고관에서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우리가 ‘정상’이라 일컫는 것의 범주는 이렇듯 시대와 분위기와 맥락에 따라 급변한다.
오버턴의 창은 ‘담론의 창’이라고도 불린다. 이 개념은 정치·경제 정책뿐만 아니라 대중의 일상적인 언어 세계에서도 유용한 분석틀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의 일상 언어는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으로 나뉜다. 개인적이고 편한 분위기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말이 있고 어울리지 않거나 어색한 말이 있다. 격식을 갖춰야 하는 자리, 공공장소나 썩 막역하지 않은 사람과의 대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말이 있고 하고 싶어도 참아야 하는 말이 있다. 사회적 체면과 평판을 생각해서라도, 절친한 친구들과 있을 때 하는 말과 비속어 등을 바깥에서 그대로 내뱉을 수 없는 법이다. 혹은 금도를 넘을 정도로 극단적이거나 사회적 통념에 어긋나는 견해와 신념을 가진 사람은 그것을 드러내면 사회적으로 좋은 시선을 받을 수 없기에, 신념을 숨기면서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자신의 추한 욕구를 드러내지 않고 폭력성을 억누르고 살아가는 것은, 대다수가 ‘정상’으로 승인하는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언행으로써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 인정받으려는 것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유력 정치인, 정치 지도자 등 사회 지도층이 극단적 발언을 일삼는 사람으로 가득하면 일반 시민은 어떤 언어가 공적 자리에서 발화될 수 있는 언어인지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유력 언론이 정치인의 극단적 발언을 무비판적으로 보도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낙수공격’(Trickle-down Aggression)이란 말이 있다. 여성주의 철학자 케이트 맨이 도널드 트럼프의 대선 캠페인을 비판하며 쓴 용어다. 높은 지위, 상위 계층에 있는 사람의 공격적 언행이 사회 전반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의미로 ‘낙수효과’에 빗댄 것이다. 정말 편한 사이의 친구들과 있는 사적 자리에서조차 차마 하기 힘든 여성혐오·인종차별적 발언을 대선 후보가 하는 것을 보고 심지어 대통령에 당선되는 모습을 보고 나서는 어디까지가 공적 자리에서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 말인지 판단 기준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전까지 타인의 시선이 신경 쓰여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왜곡된 젠더 의식과 인종 편견 및 혐오를 눈치 보지 않고 표현할 용기를 얻은 사람이 생기고, 더 나아가 트럼프 같은 인물을 매개로 비슷한 견해를 지닌 사람들과의 연결 가능성이 커져 이들이 서로 소통하면서 담론에 일으키는 소음의 크기도 매우 커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을 나는 ‘담론의 오염’이라고 한다. 이는 막말하는 정치인이 꼭 최고 권력의 위치에 올라야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방송심의가 없는 유튜브 방송 등에서 이른바 ‘프로보커터’로 활약하는 극우 논객과 정치인이 쏟아내는 막말, 폭력적인 언사, 위험한 신념의 강렬한 표현은 그 자체로도 해롭지만, 담론의 창을 더 오른쪽의 극단으로 옮기는 동시에 우측 편향으로 협소하게 한다는 점에서 매우 유해하다.
이들이 개진하는 과격하고 폭력적인 행태와 메시지는 과거라면 ‘상상할 수 없는’ 범주에 속했겠지만, 유튜브와 카카오톡 등 소셜미디어로 대중에게 널리 퍼지고 가시화하면서 이들의 이념은 천천히 ‘극단적인’ 것의 표상을 점하게 된다. 이제 이런 극우 유튜버와 대동소이한 이념과 가치관의 소유자지만 과격한 행태와 막말만 안 하는 사람은 갑자기 ‘합리적인 보수’ ‘말이 통하는 보수’로 평가될 수 있다.
미국에서 낙수공격 현상은 정말 많은 사람의 가치관을 바꿔버렸다. 트럼프가 집권하는 동안 혐오범죄가 크게 늘었고 반유대주의도 급증했다. 더욱이 ‘블랙 라이브스 매터’(Black Lives Matter·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 시위대에 총기를 겨눴던 부부에게, 심지어 총을 발포해 두 사람을 사살한 청소년 카일 리튼하우스에게 당시 트럼프 정부와 공화당이 보인 온정적인 태도와 관용은 사실상 ‘그래도 된다’는 메시지가 되어 극우 자경단에 엄청난 힘이 됐다. 이 사건들과 맞물려 미국인의 분열은 가속돼, 트럼프가 패배한 2020년 대선 결과를 인정하지 못한 사람들이 국회의사당을 습격하고 점령하는 데 이른다.
한국이 미국보다 형편이 낫다고는 못할 것 같다. 제1야당 대표에게 있었던 살인미수 테러 사건을 두고 현 정부와 여당이 보인 태도가 트럼프의 그것과 같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어떻게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목에 칼이 찔리고 숨질 뻔한 피해자에서 석연찮은 특권 및 특혜의 수혜자, 지방을 무시하는 사람으로 프레임 전환을 시도하다가 이제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하는 행태는 일부 시민에게 매우 유해한 메시지로 다가올 수 있다. ‘그런 일을 당해도 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피습 사건이 자작극이라는 음모론을 송출한 유튜버 이봉규는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 초청자 명단에 있었고 초대 시민사회수석이 그의 방송에 출연한 바 있음을 잊으면 안 된다. 사실상 대통령 차원에서 극우 유튜버의 망동을 승인한 것과 다름없고, 그들의 음모론과 여론 분열 책동에 당연히 정부의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
진보 성향의 몇몇 논자는 꾸준히, ‘차악이 최악’이라는 이유로 ‘민주당만 빼고’ 투표하자는 주장을 펼쳤다. 정말로 차악이 아닌 최악의 정치세력이 다수를 차지하고 집권이라도 하면 어떡하려고 그랬을까? 윤석열과 국민의힘을 위시한 보수세력이 민주당과 다르게 적어도 위선을 떨지 않고 ‘대놓고’ 나쁘니까 국민이 바로 봉기해 두 번째 촛불혁명을 일으킬 거라는 희망을 표시했다. ‘배신’과 ‘기만’에 대한 악감정에 훨씬 무거운 가중치를 두다 못해 처음부터 당당히 망언을 쏟아내고 한국 사회의 공공성을 짓밟는 정치세력의 집권을 묵인한 이들이 가졌던 희망은 전혀 근거가 없었다.
극우 유튜버 수준의 인사가 각료에 있고, 대통령 본인부터가 극우 유튜버의 인식 수준에 갇혀 있으며, 이들이 일으키는 다양한 파행에 유력 언론들은 방관하거나 옹호하는 가운데 상당수 시민의 가치관 또한 그에 맞춰 변화해버렸다. 정부와 여당이 거대한 파행을 저지르면, 시민들은 봉기하지 않고 ‘쟤네들이 저럴 줄 알았다’며 냉소하고 만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보다 몇 배는 더 큰 일이 터지지 않는 이상 두 번째 촛불혁명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공공성이란 내 나름대로 간단히 표현하자면, ‘남을 보호하는 것이 곧 나를 보호하는 것’이라는 약속이다. 코로나바이러스 창궐 국면에서 마스크의 역할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마스크는 바깥 어딘가에 있을 수 있는 감염자의 타액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용도로 쓰지만, 동시에 혹시 내가 감염자일지도 모른다는 의식을 갖고 나로부터 타인을 보호하는 역할도 한다. 공공성 의식이 완전히 붕괴한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마스크를 쓰고 다니자는 메시지에조차 정치적 공격이 붙는다. 한국에서는 감염자를 최소화하기 위해 당국, 공무원, 의료진, 민간 및 시민들이 협동해 노력한 끝에 잠시 실종됐던 공공성 의식이 조금이나마 회복하는 듯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이래 공공성 의식은 다시 세월호 참사 직후 수준으로 떨어진 것 같다. 이태원 참사와 오송 지하차도 침수 사고의 책임을 지는 사람이 거의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서, 재해 때마다 무정부 상태로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국민은 국가가 보호해야 할 국민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고 이제는 정말 각자도생해야 한다는 생각을 안 할 수 없다. 사회가 근간부터 흔들린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사회가 무너지길 바라는 게 아닌 이상, 차악이 최악이라는 거짓말은 집어치우고 최악을 몰아내는 데 모든 역량을 쏟아야 한다.
김내훈 칼럼니스트
*행재요화: 다각적으로 정치·사회·문화 담론을 비평하는 칼럼입니다. ‘행재요화’는 남의 불행을 보고 기쁨을 느끼는 ‘놀부심보’를 말합니다. 4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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