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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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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상병 청문회’에서 만난 악의 찌질함

악인은 비범하다? 아우라 벗기면 ‘찌질하고 그저 비호감’에 불과한…
등록 2024-07-13 05:37 수정 2024-07-16 14:28
2024년 6월2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연 ‘채 상병 특검법’ 입법청문회에 참석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증인 선서 거부 의사를 밝히고 있다. 문화방송 갈무리

2024년 6월2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연 ‘채 상병 특검법’ 입법청문회에 참석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증인 선서 거부 의사를 밝히고 있다. 문화방송 갈무리


‘채 상병 특검 입법청문회’를 보면서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전 국방부 장관과 차관, 사단장 등 핵심 증인이라는 사람들이 증인 선서조차 거부한 채 지극히 상투적이고 진부하기 이를 데 없는 뻔한 변명과 모르쇠로 일관하는 모습은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에서 목격한 모습과 매우 유사했을 듯하다.

최근에 조너선 글레이저 감독의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봤다.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장교이자 아우슈비츠 수용소장이었던 실존 인물 루돌프 회스 가족의 일상을 묘사한다. 영화에 사건이랄 것은 없는데다 등장인물들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정도만 간신히 알아볼 수 있고 어떤 표정을 짓는지 파악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카메라가 멀리 떨어져 있는 탓에 몰입하기가 쉽지 않았다.

관객의 감정이입 방해하는 의도적 연출

아주 재밌게 보진 않았지만 왜 그토록 영화 기자와 평론가들의 평가가 좋은지 이해는 될 것 같았다. 영화에 몰입하기 힘들게 하고 인물들에게 감정이입이나 동일시하지 않게 하는 연출은 매우 의도적이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바로 옆에 있는 저택에서 생활하는 회스 가족의 일상은 (대저택에 살며 하인이 여럿 있다는 점을 제외하고) 너무나 평범해 기억에 남는 게 별로 없고 긴장감도 없다. 회스의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고 아내는 정원 가꾸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회스는 아내의 채근과 상부의 전근 명령에 꼼짝 못하는 관료일 따름이다. 최악의 독재자로 알려진 히틀러 치하에서 끔찍한 일을 주도한 인물이라고 하면 히틀러 못지않게 비범한 캐릭터를 지닌 빌런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관찰 카메라처럼 들여다본 그와 가족의 면면은 우리 평범한 사람들과 비교해 전혀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이 영화를 본 많은 사람이 악의 평범성을 이야기한다. ‘평범성’이라는 말에 도사리는 오해의 여지를 둘러싼 일련의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 악의 평범성은 우리가 흔히 ‘괴물’이나 ‘악인’이라고 여겼던 사람들이 알고 보니 일상에서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있을 때면 다정하고 친절한 사람이더라는 것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만 받아들이면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메시지는 물론 아렌트가 설파하고자 했던 바를 모두 엉뚱하게 수용할 위험이 크다. 평범성이라는 말을 일차원적으로 해석하면, 평범한 사람들은 누구나 일말의 악한 측면이 있기에 자기도 모르게 역사적 악에 일조한다는 논리 혹은 ‘누구라도 어쩔 수 없이 그랬을 것’이라는 논리가 된다. 그렇게 되면 심각한 범죄와 악행의 연대책임을 만인에게 지움으로써 진짜 책임을 옅게 만들어버린다는 비판이 있다.

나는 약간 다른 방식으로 ‘평범함’의 의미를 해석하고 싶다. 평범함이라는 말에는 여러 의미가 있다. ‘흔하다’ 정도로만 생각하면 악의 평범성을 위와 같이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런데 한 사람을 가리켜 ‘평범한 외모’나 ‘평범한 성격’을 가진 ‘평범한 사람’이라고 한다면 ‘평범함’의 의미가 크게 달라진다. 차라리 험담에 가깝다고 하겠다. 앞서 언급한 ‘비범함’의 반대말이라고 할 수 있으며 특별한 매력도 없고 재미도 없는 진부함을 가리킨다. 아렌트가 제시한 악의 평범성이란 바로 이런 것을 가리킨 게 아닐까 생각한다. ‘평범하다’ 혹은 ‘흔하다’라는 말은 대개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의미로 쓰이지만, ‘너무 평범하다’와 ‘흔해빠졌다’라는 말이 자연스럽듯이 부정적인 가치평가를 함의한 채로 쓰이기도 하는데, 아렌트가 의도했던 평범성이라는 것이 이런 측면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겠냐는 말이다.

악인을 ‘비호감’으로 축소한 유머의 통찰

이쯤에서 내가 소개하고 싶은 재밌는 농담이 있다. 2021년 안타깝게 암으로 사망했지만 ‘코미디언들의 코미디언’으로 불리며 지금도 여전히 새로운 팬층을 모으고 있는 놈 맥도널드의 농담이다. 그는 데이비드 레터맨의 토크쇼에 출연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여행을 다녀온 이야기를 꺼낸다. 네덜란드 이야기를 하다가 그의 선친이 제2차 세계대전 참전군인이었다면서 아돌프 히틀러의 악독한 손아귀로부터 네덜란드를 해방시키는 데 이바지했다고 말하는데 갑자기 다음의 말을 무심하게 던진다. “근데 히틀러 그 양반, 알면 알수록 비호감이더만요.”(You know, with Hitler, the more I learn about that guy the more I don’t care for him.)

캐나다 코미디언 놈 맥도널드와 그의 넷플릭스 프로그램. IMDB 제공

캐나다 코미디언 놈 맥도널드와 그의 넷플릭스 프로그램. IMDB 제공


한 코미디언이 방송에서 한 농담을 글로 적으면 당연히 재미가 반감되고 그 농담이 재미있는 이유를 적으면 재미가 다시 한 번 반감되지만 그럼에도 일말의 재미가 전달될 수 있기를 바란다. 맥도널드의 유머가 특별한 이유는 이른바 ‘펀치 라인’을 아주 이상하게 배치한다는 것이다. 그는 네덜란드 여행과 아버지 이야기를 하면서 관중의 주의를 끌다가 갑자기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히틀러에 대한 개인적 불호로 틀면서 웃음 포인트, 즉 펀치 라인을 놓는다. ‘개인적인 불호’라고 한 까닭은 그가 ‘알면 알수록’이라고 말한 것이 마치 히틀러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아보지 않으면 호감이 생길 수도 있음을 전제하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더 열심히 공부해야만 히틀러라는 인물이 아주 끔찍한 악인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게 아니지만 맥도널드는 관중에게 자기만 아는 생활의 지혜라도 던져주는 것처럼 굴면서 웃음을 유도했다.

또 한 가지 이 농담이 재미있는 지점은, ‘비호감’이라는 단어가 히틀러와 같은 역사적 악인에게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말이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을 가리켜 ‘don’t care for him/her’라고 하는 영어 표현은 ‘hate’는 물론 ‘dislike’보다도 강도가 약한 불호 표현이다. 누군가가 특별히 싫은 건 아니지만 인간적인 매력이 떨어진다거나 성향이 맞지 않는다거나 인상이나 관상이 썩 좋지 않다는 등의 이유로, 어쩌다 같은 공간에 있게 되면 굳이 피하진 않겠지만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일은 전혀 없을 것 같은 사람을 말할 때 주로 쓰인다. 즉 썩 좋아하지 않는다는 정도의 정서라는 점에서 ‘비호감’으로 옮길 수 있을 텐데, 이 표현을 역사상 최악의 독재자에게 붙인다는 점이, 틀렸다고 할 만한 부분은 전혀 없지만 너무나 어색하기 때문에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는 포인트인 것이다.

악인이 동일시와 선망의 대상이 될 때

맥도널드는 이러한 코드의 유머를 자주 구사했다. 예를 하나만 더 들자면, 자신의 팟캐스트 방송에서 20세기 미국 최악의 연쇄 아동 식인 살인범 앨버트 피시의 납치 및 살인 수법에 관한 이야기를 5분 동안 길게 늘어놓다가 별안간 김빠지는 펀치 라인을 놓는다. “어쨌거나 그 양반 정말 고약한 인간이라니까요!”(I mean this guy was a real jerk!) 여기서 ‘jerk’라는 말은 강한 불호를 나타내는 말이지만 귀찮게 굴고 성가신 사람을 묘사할 때나 쓰는 말이지 연쇄살인범을 묘사할 때 쓰는 말은 확실히 아니다. 그래서 ‘고약한 인간’이라는 번역이 적당한 듯하다. 연쇄살인범에게 붙이기엔 너무 약해서 애칭이라고 해도 무방한 수준이다.

재미의 반감을 무릅쓰고 맥도널드의 유머를 글로 소개하고 설명한 이유는 그로부터 좋은 통찰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역사상 최악의 독재자나 최악의 연쇄살인마는 희대의 악인이며 이들에 대해 증오 외의 감정은 용인되지 않는 것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희대의 악인이라는 타이틀은, 심지어 ‘희대의’라는 말을 붙이지 않더라도, 일종의 아우라와 같은 것을 만든다. 어떤 엄청난 비범함, 극단적인 의지와 행동력이 상상되고 두렵고 공포스러운 존재라는 데서 발생하는 캐릭터성이 그것이다. 일상에서는 접할 일이 전혀 없는 인물 유형이기 때문에 영화나 만화 캐릭터에 비춰볼 수밖에 없고 결국 실존했던 악인들을 영화 속 등장인물 혹은 빌런(악역)과 같은 존재로 물화하여 보게 된다. 그 결과 앞서 말한 악인들의 비범한 캐릭터성은 일종의 매력으로 다가오며 심지어 동일시와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 스틸컷. CGV 누리집 갈무리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 스틸컷. CGV 누리집 갈무리


다시 말해 흔히 히틀러와 같은 역사상 최악의 악인을 떠올릴 때면 영화나 만화와 같은 대중문화 텍스트의 악역 캐릭터를 같이 연상

하기 마련이다. 일상에서는 만날 수 없는 괴팍한 성격, 극단적인 의지와 행동력, 매력적이기까지 할 정도로 출중한 지략과 압도적인 카리스마의 소유자 말이다. 그러나 히틀러의 면면을 더 자세히 살펴보면 전혀 딴판이었음을 알 수 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그는 생각 외로 매우 수줍음 많고 소심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딱히 의지력이 강하거나 부지런하지도 않았던 것이 늘 오전 10시에 일어났다고 전해진다. 그는 나르시시스트였고 자신의 성공에 도취해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인간의 한계를 초월할 수 있는 초인과 같은 존재로 여겼다. 그러면서도 평생을 콤플렉스와 열등감에 시달렸다고 전해지는데, 그가 학창 시절 동창인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에게 엄청난 열등감을 가졌다는 사실은 유명한 이야기다.

맥도널드가 던져준 ‘생활의 지혜’

역사상 최악의 독재자이자 악인으로 꼽히는 사람도 결국 우리 평범한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찌질한 인간이었을 따름이다. 역사 교과서나 대중문화에서의 재현을 통해서만 그와 같은 인물을 접하면 두렵고 혐오스러우면서도 마성이 있는 캐릭터를 으레 연상하게 되지만 그에 대해 알면 알수록 사실은 그저 평범하고 진부하고 매력 없고 특성 없는 사람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맥도널드가 우리에게 던져준 ‘생활의 지혜’가 바로 이런 것일 테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며 악행을 벌이는 무자비하고 잔인한 폭군, 독재자의 그 압도적인 아우라 앞에서는 누구라도 두려움에 벌벌 떨 수 있다. 하지만 그의 면면을 비판적·분석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그의 아우라를 벗겨내고 평범한 시민과 다르지 않은 보잘것없는 모습을 드러내어 ‘무시무시한 악인’에서 그저 ‘비호감’인 사람으로 축소함으로써 그를 만만하고 하찮은 상대로 당당하게 대할 수 있을 것이다.

김내훈 칼럼니스트

 

*행재요화: 다각적으로 정치·사회·문화 담론을 비평하는 칼럼입니다. ‘행재요화’는 남의 불행을 보고 기쁨을 느끼는 ‘놀부 심보’를 말합니다. 4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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