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이 지났습니다. 10월29일은 이태원 참사 1주기입니다.
“이건 축제가 아닙니다. 축제면 행사의 내용이나 주최 측이 있는데 내용도 없고 그냥 핼러윈데이에 모이는 일종의 어떤 하나의 ‘현상'이라고 봐야 되겠죠.”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2022년 11월1일 책임을 묻는 기자에게 한 말입니다. 아무말 대잔치입니다. 주최 쪽 요구가 있어야만 공권력이 동원된다는 ‘행정력’의 정의 자체를 부정하는 이 말은 여러 차례 언론을 통해 반박됐습니다. 축제가 국가 주도로 혹은 주최 쪽이 있어야 한다는 발상은, 축제란 말이 기원한 ‘카니발’을 생각해봐도 어불성설이지요. 부르는 곳에만 가겠다, 혹은 가고 싶은 곳에만 가겠다는 것이 한 구를 책임진 공직자라는 사람의 입에서 나옵니다.
이 아무말 대잔치에는 ‘스탠스’가 있습니다. 장관도 경찰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때 우왕좌왕하다 익힌 것을, 2022년에는 빠르게 학습합니다. 가장 빠르게 학습한 우등생의 말은 이랬습니다. “통상과 달리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참사 다음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말입니다. 아직 행정안전부 장관인 그분입니다.
지난 1년, “축제가 아니라 현상” 이런 비슷한 말을 무수히 확인하면서 보냈습니다. 신다은 기자가 쓴 이태원 재판 기사(제1485호 이태원 ‘경비원’ 아니라는 경찰… 윗선은 “스탠스 좋네”)에는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2022년 10월31일 박성민 전 서울경찰청 정보부장은 ‘경찰은 경비원이 아니다’라는 ‘신박한 논리’를 만듭니다. 나중에는 ‘수익자 부담 원칙’이란 말도 씁니다. 이러한 논리(경비원 아님)를 행정안전부 장관실에 전달한 경찰청 경비국 관계자는 (논리 개발을 치사하며) “불똥은 면하겠습니다ㅎㅎㅎ”라고 전합니다. 박 전 부장은 그에게 “5조 해석상 일반적 추상적 위험에는 개입하지 않는다는 스탠스 좋네”라고 답합니다. 경찰관직무집행법 제5조 ‘위험 발생의 방지’에 관한 구절일 텐데, 인터넷에 조금만 검색해봐도 이 말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책임지기 위해 있는 조항임을 알 수 있습니다. 대법원은 도로에 놓인 트랙터를 방치해 발생한 교통사고에 대해서도 경찰의 잘못이라고 했습니다.(대법원 1998. 8.25. 선고, 98다16890판결)(경찰관직무집행법상의 위험방지 조치에 관한 연구, 치안정책연구소, 2006-1, 책임연구보고서)
책임지는 사람 한 명 없이 지나고 2023년, 한 신문은 이태원 참사를 겪고서도 시민들이 여전히 기초질서를 안 지킨다며 기획기사를 싣습니다.(<조선일보> 10월25일, 바뀐 게 없는 핼러윈 1년… 우측통행하면 참사 막는다) 지하철과 클럽 거리를 점검하며 ‘우측통행하지 않는다’고 질타합니다. 신문이 사진으로 찍어 보여준 질서 정연한 곳은 일본 도쿄의 신주쿠역입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 희생자를 향한 모욕은 계속됩니다. 최근 나온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창비 펴냄)에서 유해정씨 말대로, 유가족은 ‘왜 돌아오지 못했는가’라는 말보다 ‘왜 그곳에 갔느냐’라는 말을 더 많이 들었습니다. 여전히 이태원 기사 댓글은 ‘누칼협’(누가 칼로 위협했냐)으로 가득하기에 댓글창을 닫고 있습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10월26일 ‘이태원 1주기 시민추모대회’가 정치 행사라 참석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아직 우리는 애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번호부터 제호에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애도하는 보라색 리본을 답니다.
구둘래 편집장 anyone@hani.co.kr*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이 쓰는 칼럼입니다.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속보] 윤 “‘누구 공천 줘라’ 얘기할 수 있어…외압 아니라 의견”
[속보] 윤 “영부인 조언이 국정농단인가…육영수도 했던 일”
[속보] 윤 “2027년 5월 9일 임기 마칠 때까지 일하겠다”
[속보] 윤 “침소봉대는 기본, 제 처를 악마화”…김건희 감싸
[속보] 윤 “명태균 관련 부적절한 일 안 해...감출 것도 없어”
[생중계] “국민께 죄송”... 윤석열 대통령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
목줄 매달고 발길질이 훈련?…동물학대 고발된 ‘어둠의 개통령’
[속보] 윤, 즉각적 인적쇄신 거부…“검증 중이나 시기 유연하게”
[속보] 윤 “취임 후 김건희-명태균 소통, 일상적인 것 몇번뿐”
[속보] 윤 “모든 것이 제 불찰…국민께 진심 어린 사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