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사소한 일>의 이스라엘 점령군 소대장은 길고 힘든 하루를 지내고 있습니다. 1949년 8월9일 더운 여름 네게브사막, 땀범벅이 된 몸을 씻는 것이 신성한 작업처럼 느껴집니다. 물을 부어 손수건을 적셔 온몸을 닦습니다. 그는 부대원들에게도 청결하게 지낼 것을 당부합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청결보다도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벌레에게 물린 뒤 고름이 나오는 허벅지의 상처입니다.
1948년 이스라엘의 국가 선언, 팔레스타인인에게는 ‘나크바’라고 불리는 ‘대재앙’ 이후, 점령지에 남은 아랍인을 색출하는 것이 소대장의 임무입니다. 이집트와의 경계 지역도 수비하지만, 사막에 숨은 잠입자를 찾아내는 것이 주요 임무입니다. 수색에서 발견한 아랍인을 총으로 제거한 뒤, 뒤늦게 발견한 소녀를 부대로 데리고 옵니다. 소녀에게는 냄새가 많이 납니다. 부대에 도착해 처음 한 일은 호스를 들어 소녀에게 물을 뿌리는 것입니다. 소녀에게는 잔혹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2023년 7월 출간된 <사소한 일>은 팔레스타인 작가 아다니아 쉬블리의 작품입니다. 1부에서는 이스라엘 점령군이 3인칭으로, 2부에서는 팔레스타인 지식인 여성이 ‘나’로 등장합니다. ‘나’는 신문기사를 읽고, 1부의 소녀가 죽임을 당한 날이 자기 생일과 똑같다는 데 흥미를 갖고 이 사건의 현장에 가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는 멀리 나가본 적이 없습니다. A구역민의 초록색 신분증으로 한 제일 먼 여행이라는 게 새 직장으로의 출근입니다. “난 최근 몇 년간 A구역과 B구역의 경계에 있는 칼라디야 검문소까지도 가본 적이 없다. 그러니 어떻게 D구역에 더 가까운 곳으로 간다는 걸 감히 상상이라도 해볼 수 있을 것인가?” 팔레스타인인은 자신이 사는 곳에 갇혀 있습니다. 경계를 넘을 때마다 군인이 검문하고, 신분증별로 갈 수 있는 곳이 다릅니다. 차로 2시간 걸리는 그곳으로 가기 위해 그는 불법을 감행합니다.
아다니아 쉬블리는 1974년에 태어났습니다. 번역자 전승희에 따르면 1948년 나크바를 겪지 않은 세대의 문학은 이전과 다르다고 합니다. 이전 세대가 팔레스타인에 대한 향수와 혁명적 열정이 두드러지는 데 비해, 이후 세대의 문학작품에서는 폭력이 일상화된 삶이 그려진다고 합니다. 한국전쟁을 겪은 세대와 이후 세대, 예를 들면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에서 아버지와 딸(정지아 작가)로 나뉘는 것과 비슷한데, 이렇게 우리 역사에 포개어보면 팔레스타인 비극의 역사가 얼마나 오래됐는지 실감하게 됩니다. 소설 제목은 폐쇄와 부자유가 일상화되어, ‘사소한 일’조차 너무 큰 일이 된 삶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열흘간 뉴스를 볼 때마다 끔찍한 상황에 가슴 졸이고 더 큰 일이 벌어질까 무서웠던, 가자의 참극을 표지이야기로 올립니다.
제작 크레디트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간 기후위기, 재생에너지, 대안경제, 탈핵 기사를 쓰며 <한겨레21> 정체성의 한 축을 담당하던 박기용 기자가 신문 <한겨레> 기후변화팀으로 갔습니다. INTJ가 가고 INTP가 왔습니다. 10여 년 전 <한겨레21>에서 경제기사를 썼고 ‘인맥’과 ‘박학다식’을 겸비한 이정훈 기자의 기사를 기대해주세요.
구둘래 편집장 anyone@hani.co.kr
*‘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이 쓰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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