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경의 단편소설 ‘극히 드문 개들만이’(<환상문학웹진 거울> 2018년 발표)에는 ‘보리’라는 개가 등장합니다.
‘문청’(문학청년) 동아리 사람들은 ‘옴니션트’라는 게임을 화제로 올립니다. 평행우주의 신이 되어, 시간을 설정하고 고비마다 선택을 통해 일어나는 일을 관찰하다보면, 리얼하게 이야기를 쓸 소재를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주인공도 권유에 못 이겨 게임을 시작합니다. 지금부터는 평행우주 속 이야기입니다.
옴니션트 평행우주 속 고등학생 ‘유정인’은 강아지를 들이고 싶습니다. 친구 개가 낳은 강아지를 분양받았습니다. 강아지의 이름은 ‘보리’라고 지었습니다. 게임 속 세월은 10배속으로 흘러가게 설정됐습니다. 대학생이 되어 유정인은 집을 나갑니다.
“보리는 낮이면 대문 옆에서 오빠(유정인)가 돌아오기를 기다렸고 밤이면 오빠의 방을 서성거렸다. 날이 갈수록 오빠의 냄새가 희미해지고 있는데 다른 식구들이 아무 일도 없는 듯 지내는 게 의아하고 못마땅했다.” 그리고 군대에 가게 된 유정인은 죽어서 돌아오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아빠(유정인의 아빠) 역시 쓰러져 세상을 떠납니다. 집에는 엄마(유정인의 엄마)와 보리가 늙어갑니다. 어느 날 보리가 사는 평행우주는 같은 하루가 반복되는 상황에 빠져버리고 맙니다.(옛날 컴퓨터 사양이라 버그가 발생하는 바람에.) 날마다 반복되는 하루에서 삶의 의미를 묻는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언젠가는 껍데기만 남기고 사라질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따라서 보리는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기존의 의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 애썼다. 도대체 나는 왜 살지? 무엇 때문에?” 극히 드문 개들만이 도달하는 경지입니다. 혹시 오해가 있을까봐 말씀드리자면, 극히 드문 개들이 도달한 것은 ‘죽음’의 감각이 아니라 ‘왜’입니다. ‘죽음’은 대부분의 개가 아는 것이니까요.
문어도 아픔을 느낀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곤 하지만, 의심할 여지 없이 ‘기쁨과 슬픔’의 감정 유무를 가르는 것은 ‘포유류의 뇌’입니다. ‘파충류의 뇌’가 생명 유지에 필요한 기능을 하는 데 비해, ‘포유류의 뇌’를 경계로 감정이 생깁니다. 보리는 자기 이름을 부르면 반가워 돌아보고 오빠라는 말이 들리면 몽글몽글한 기대감이 차오릅니다. 오빠가 돌아오지 않아 슬퍼집니다.
표지이야기에 나오는, 웃으면 눈이 초승달이 되는 버니는 여러 인간의 호의에 의해 제주도 예리씨네에 정착할 수 있었습니다. 스키장비 대여점에서 사흘을 굶은 버니를 발견한 제보자는 인터넷에 영상을 올려 버니를 데려갈 곳을 타진했습니다. ‘설구아빠’(활동명)는 개가 아프다는 것을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궁지를 만들어낸 것 또한 인간이었습니다. ‘보호소’라는 이름의 악덕 업체에 맡겨진 파양동물 중 ‘극히 드문 개들만이’ 살아남았습니다. 안락사가 없다는 광고 문구대로, 안락사 아닌 형태로 끔찍하게 죽임을 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파양하는 이들의 죄책감을 자극해 ‘책임비’라는 명목으로 거액을 뜯어낸 뒤였다는 사실이 경악스럽습니다. 버려진 뒤 죽임을 당한 순간의 비참함을, 인간의 무게와 똑같은 동물들의 감정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구둘래 편집장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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