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이 되었습니다. 황금 같은 주말, 밤 시간도 아까워 드라마에 열중하던 새벽 1시58분, 텔레비전도 거실 불도 디지털시계 불도 급식기의 불도 전원장치의 불도 냉장고도 나갔습니다. 냉장고 속 얼음은 녹아가는데, 거실의 나는 그대로 얼음. 앞쪽 다른 아파트 단지의 불도 꺼진 것 같았습니다. 이전에도 정전은 있었지만 꺼졌나 싶다가 바로 켜졌는데, 이번에는 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엘리베이터는 가동 중이었습니다. 곳곳의 휴대전화 불빛으로만 감지되는 사람들이 관리실 앞을 서성였습니다. 여성 청년이 전한 바에 따르면 관리소 당직자가 전기실로 내려갔다고 합니다. 뭐라 맞장구치는 말을 이웃과 나누다가 더 할 일이 없어 엘리베이터를 타고(전기를 만끽하고) 올라왔습니다.
전기가 없으니 참 심심합니다. 그 밤중에 잠도 오지 않습니다. 냉동실의 아이스크림이 금방이라도 녹아내려 밑으로 물이 떨어질 것 같은 불안감이 잠을 쫓아버렸습니다. 그렇다고 궁금해 열 수도 없습니다. 냉기를 바로 빼앗을 테니까요. 전기 심장박동기를 가진 이웃이 있다면 꼭 비상전원이 제대로 작동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한 시간이 넘어가는데, 그 비상전원이 괜찮겠지요? 누군가는 내일 구워 먹으려고 최고급 한우를 냉장고에 넣어놨을지도 모르는데….
독서도 텔레비전 시청도 할 수 없는 때, 믿을 것은 휴대전화뿐이었습니다. 이마저도 남은 배터리가 20%를 향해 가며 빨간불이 나타나기 직전이었습니다. ‘냉장고는 몇 시간까지 괜찮아요?’를 검색해봅니다. 뉴스에는 동네 정전이 나오지 않습니다. 자동차가 전봇대에 부딪쳐서 일어났던 3년 전 정전이 검색됩니다. 지역 커뮤니티 앱(애플리케이션)에 들어가봅니다. 답답해하는 동네 사람의 글이 올라와 있습니다. “정전되신 분~.” 동네 사람들이 “저요, 저요” 하고 댓글을 달아놓았습니다. 저도 그 대열에 합류했더니, 앱에서 첫 댓글을 알리는 메시지가 도착합니다. 이제 휴대전화 배터리는 10%, 혹시 휴대전화까지 꺼지면 여기는 무인도입니다. 그렇게 언제 불이 들어오나를 어둠 속에서 기다리다… 잠이 들었습니다.
일어나니 거실 불이 켜져 있었습니다. 오래전 전깃불이 나가 촛불을 켜던 기억이 있긴 한데, 이렇게 전기로 작동되는 것이 주렁주렁 많을 줄이야. 정전은 참 생소합니다. 없어봐야 알지, 라는 게 전기만큼 실감 나는 것도 없는 듯합니다. 밤이라 다행이겠죠. 한낮이었다면 더워서 혼이 나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6월 날씨가 33도까지 올라간 주였습니다.
아파트 관리실에서는 정전의 이유를 변압기 고장이라고 방송했습니다. 세대 전원은 복구됐지만, 공동 전원은 그렇지 못해 임시 변압기를 가동 중이라고 했습니다. 지하 주차장은 기름 냄새로 가득합니다. 이틀간 변압기를 교체하는 기술적 문제로 두 번 더 정전을 겪었습니다. 여러 생각이 오갔습니다. 한번쯤 해볼 만합니다? 냉장고는 열지 않는다면 4시간은 괜찮다고 합니다.
구둘래 편집장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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