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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해커 되기’를 권함…최초의 해커를 아십니까?

등록 2023-06-23 19:39 수정 2023-06-30 11:15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인터넷에 ‘해커’를 검색해보자. 방 안에 숨어 후드티 모자를 눌러쓰고 모니터에 흩뿌려진 녹색의 코드를 쳐다보는 이미지만 나열될 것이다. 이런 반사회적 이미지는 개인정보 탈취, 저작물 보안 기술 방해, 데이터 인질극 등 해커들의 범죄에서 기인했다. 해커 이미지는 클리셰가 되어 대중문화 곳곳에 출연해, 그들의 은밀함과 자폐성 프레임을 반복 재생산한다. 그런데 본래 해킹(Hack+ing)의 어원 해크(Hack)는 숲을 헤치며 나가는 행위, 엉성하지만 빠르게 도끼로 나무를 패는 행위, 그렇게 쪼개진 나무로 가구를 만드는 행위를 뜻했다. 거칠지만 임시방편으로 상황에 적응하는 일이라는 의미였다. 이는 오늘날 해킹의 이미지가 비열한 도둑질인 것과 비교하면 큰 차이가 있어 보인다.

초창기 해커는 자기 리듬으로 일한 장인과 닮아

최초로 해커라는 명칭을 사용한 그룹은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내 동아리 TMRC(Tech Model Railroad Club)이다. 1946년부터 역사를 이어온 이 그룹은 누리집에 해커의 의미를 이렇게 정의했다. “해커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독창성을 발휘하는 사람이다. ‘해크’의 본질은 빠르게 행동하는 데 있고 보통 우아하지 않다는 것이다. 해커는 내장된 시스템의 설계를 변경하지 않고 원하는 목표를 달성한다.”

1962년 TMRC 멤버인 스티브 러셀은 최초로 키보드와 모니터를 갖춘 컴퓨터 PDP-1이 MIT 교내로 들어오자 동료 해커들과 최초의 디지털게임 중 하나인 <스페이스워!>를 탄생시켰다. 처음에는 모니터에 점이 표시되는 기능을 연구하다가, 규칙이 있는 놀이로 발전시켜 프로그래밍했다. 이때 그들은 컴퓨터를 엉망으로 만들수록 훨씬 더 큰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해커, 디지털 시대의 장인들>의 공동 저자인 페커 히매넌은 독점적 상업주의와 크래커가 판치는 오늘날 해커의 근본정신을 일깨우고, 나아가 해커 윤리를 정보화 시대의 윤리로 호출하려 했다. 그는 자유롭고 열정적으로 살며 모든 정보를 공유하자는 정신을 지녔던, 1960년대 미국 MIT를 중심으로 초창기 해커들의 삶의 양식을 서술한다. 언제나 동일한 시간에 동일한 방식을 반복하는 근대의 노동윤리 전에 자유롭게 자기 리듬으로 일한 장인의 시대가 있었고, 이것이 오늘날 해커 윤리와 맞닿아 있다는 게 히매넌의 주장이다. 사적 소유를 넘어 공유를 지향하는 태도는 해커의 기술공동체에 내재해, 이후 정보공유 운동 혹은 오픈소스 운동에도 영향을 끼쳤다.

소비자본주의 시대 ‘뜨개 행동주의’의 정치성

오늘날 컴퓨터공학을 연구하는 괴짜들의 기술적 창작 행위라는 협소한 차원을 넘어 해킹의 의미가 쓰일 때가 있다. 해킹에 정치성을 더해 행동주의를 강조한 핵티비즘(Hacktivism), 사회적 해킹(Social Hacking) 등이 있고, 풍자성을 더해 문화적 저항을 요청하는 밈 해킹(Meme Hacking), 빌보드 해킹(Billboard Hacking) 등도 있다. 기존 미디어의 힘을 역으로 이용해 매스미디어의 일방향적인 힘에 적극 저항하자는 전술미디어 운동(Tactical Media)도 해커의 정신과 깊은 연관을 맺는다.

그중 ‘뜨개 행동주의’(Craftivism)를 소개한다. “당신의 기술이 곧 당신의 목소리다”라는 선언을 기치로 수공예의 능력과 행동주의를 결합하자고 주장한다. 소비자본 흐름에 저항하기 위해 소비자 스스로 생산력을 복원하는 일이 중요하기에 시민들이 해커, 수선인의 입장을 가져볼 것을 권유한다. 이제 해커는 소비자와 생산자 사이의 구분법을 무화하는 불법적이면서 횡단적인 정치성의 은유가 된다.

인공지능 시대, 우리 삶을 구속하는 알고리듬은 점점 더 촘촘해지고 있다. 모든 것이 감시되고 예측 가능한 것으로 간주된다. 우리가 연대해 사회적 해커가 돼야 하는 이유다.

오영진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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