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숙. 혹시 이 이름을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김경숙은 와이에이치(YH)무역에서 일하던 여성노동자입니다. 1970년대 YH무역은 가발을 만들어 수출하던 ‘잘나가는’ 회사였습니다. 장용호 사장은 당대 고액 개인소득자 10위권에 들 정도였죠. 그의 두둑한 재산은 열악한 환경에서 낮은 임금을 받으며 일했던 여성노동자들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이들은 생산직이란 이유로 관리직 사원이 받던 상여금을 받지 못했는데, 노조를 만들어 투쟁한 끝에 소액의 상여금을 받기도 했죠.
유신정권 말기인 1979년, 이 YH노조 조합원인 여성노동자들이 “배고파서 못 살겠다”며 투쟁에 나섭니다. 부실 경영을 해온 회사가 폐업을 일방적으로 선언했기 때문입니다. 조합원들은 이를 철회하고 생존권을 보장해달라며 야당인 신민당 당사에서 점거농성을 벌였습니다. 농성 사흘째, 경찰기동대 1천여 명이 대대적인 진압에 나섰고 21살이던 김경숙이 숨진 채 발견됩니다. 경찰은 자살이라고 둘러댔습니다.
당시 김경숙의 죽음은 부마 민주항쟁과 유신정권 몰락의 기폭제가 됐지만, 그의 죽음과 관련한 진실이 드러난 건 무려 30년이 지난 2008년입니다. 남성노동자가 경제성장과 노동운동의 주축으로 주목받아온 것에 견주면 굉장히 더뎠지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김경숙이 당시 경찰의 무리한 진압 과정에서 숨졌다고 인정했습니다.
근 50년 전의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제1452호 표지이야기를 준비하면서 자꾸만 김경숙의 이름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청년여성 산재회복 지원사업’에 선정된 청년여성 4명을 차례로 만나면서 ‘왜 이렇게 변한 게 없을까’ 거듭 되뇔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성노동자가 일하는 환경은 여전히 열악하고 성차별적이며, 여전히 ‘보이지 않는’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선 아파도 쉬기 어렵습니다. 이 사업을 진행한 노동건강연대가 지원 대상인 청년여성들(50명)에게 ‘모든 노동경력을 통틀어서 일하다가 건강에 문제가 생겼을 때 일을 쉬어본 적이 있느냐’고 물으니 20명(40%)이 ‘아니요’라고 답했습니다. 관두면 되지 않냐고요? 통상 생계를 책임지고 가족을 부양하는 건 남성의 몫으로만 여겨지고, 이런 편견은 여성을 더 쉬운 해고로 내몰아왔죠. 하지만 이번 사업 대상자의 34%(17명)는 본인 외에 자녀, 부모, 형제·자매 등에 대한 추가 부양 부담을 지고 있었습니다. 여성도 충분히 생계부양자로서 역할을 하는 겁니다. 여기에 병간호 등 돌봄노동까지 추가로 수행하기도 합니다. 각자가 분투하지만, 이들의 투쟁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지난 표지이야기는 전체 청년여성 중 아주 일부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이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삶을 꾸려가는지 더 광범위한 실태조사가 이뤄지길 바랍니다. 중년 남성을 기준으로 하는 산업재해 기준을 바꾸는 일은 그 시작이 되겠지요. 말로만 ‘저출생’ 위기를 부르짖는 정부에 이들의 이야기가 가닿길 바랍니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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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3일 한겨레 그림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