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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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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해져야 했다

등록 2023-03-06 16:37 수정 2023-03-18 16:11
<한겨레21> 제1453호

<한겨레21> 제1453호

첫 출입처가 법조였다.

19년 전 이맘때, 사회부 법조팀으로 발령받은 뒤로 1년6개월 남짓 서울 서초동 법원 기자실로 출퇴근했다. 일주일에 두어 번은 검사들도 만났다. 검찰을 출입하는 선배 기자들과 함께였다. 법조팀 막내 기자에겐 취재원과 오간 모든 대화를 ‘복기’할 의무가 있었으므로, 그런 자리에선 항상 귀를 쫑긋 세워야 했다. 아무리 술을 많이 마셔도 취할 수 없었다. 덕분에 짧은 기간이지만 검사라는 존재를 조금은 가까이서 관찰했다.

그때 법조기자의 취재 관행과 관련해 들은 이야기 하나는 당혹스러워 여전히 잊히지도 않는다. 나를 포함해 각 사 법조팀에는 여성 기자가 겨우 한 명이던 시절이다. 여성 기자가 아예 없는 언론사도 있었다. 왜 여성 기자가 법조팀에 많지 않냐고 물었더니, 황당한 대답이 돌아왔다. 옛날엔 검사들이 출근하기 전에 서초동 사우나에 들러 전날 마신 술을 깨곤 했는데 여성 기자들은 사우나에서 검사들을 취재할 수 없어서…. 농반진반이었지만, 실제 현실이 그러했다. 대부분의 법조기자가 그렇게라도 검사들한테 한마디라도 더 들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 이유로 여성 기자에겐 법조 출입 문턱을 높였다. 그런 법조기자들의 취재 관행, 정보 비대칭성 탓에 기울어진 검찰과 언론의 관계, 법조기자단의 폐쇄적 문화는 19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2023년 1월 초, 대장동 개발 사업의 핵심인물인 김만배씨와 <한겨레> <중앙일보> <한국일보> 편집국 고위 간부 사이의 돈거래 사실이 언론 보도로 알려진 뒤, 새삼 19년 전을 되새김질했다. 김씨와 이 고위 간부들 모두 법조팀장 시절에 친하게 어울렸다고 한다. 김만배씨가 <머니투데이> 법조팀에서 일하기 시작했다는 2004년부터 2023년까지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런 사건이 벌어졌는지 짚어봐야 했다. 단순히 몇몇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한겨레>를 비롯한 언론 전반의 문제점이 응축된 사건이어서다. 뼈아프지만, 솔직해져야 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의, <한겨레>의, 한국 언론의 민낯을 드러내보기로 했다.

창간 29돌을 맞아 제작한 이번호 표지이야기는 그렇게 1월부터 준비됐다. 지금 우리가 가장 절실하게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생각하니 답은 분명했다. 아무리 좋은 기획기사를 쓴들 무너진 신뢰를 되찾기엔 부족해 보였기 때문이다.

법조기자 경험이 있는 김양진·류석우·이경미 기자와 함께 언론윤리, 이해충돌 문제 등을 다룬 논문 등을 함께 읽고, 전·현직 법조기자 22명을 만나 두루 이야기를 들었다. 언론학자들과도 이야기를 나눴다. 이번 사건이 발생한 근본 원인을 법조기자단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돈과 권력이 집중되는 ‘법조’라는 출입처의 특수성이 김만배라는 ‘악의 싹’이 자라나는 토양이 됐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한겨레> 내·외부 인사 13명으로 구성된 진상조사위원회가 이번 사건과 관련해 두 달간 조사를 벌인 뒤 2월27일 펴낸 진상보고서 ‘한겨레 윤리는 어디에서 실패했나?’의 마지막 문단은 이렇게 끝난다. ‘법조기자단을 통한 취재, 보도 시스템이 갖는 전반적인 문제를 진단하고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일 등은 이번 진상조사위의 조사 범위를 넘어선다. 법조기자단 관련 문제의식은 <한겨레>를 넘어 전체 언론계 차원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한겨레21>의 이번 기사가 그 논의를 넓히는 첫걸음이 되기를 바란다.

황예랑 편집장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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