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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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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에 사는 말이라더니

등록 2025-02-28 19:53 수정 2025-03-06 07:18
강가에서 너희들을 만났지. 스무 마리쯤 무리 지어 있었어. 보는 순간, “저기, 하마다”라는 외침과 “아, 귀엽다”라는 탄성이 절로 나오더라. 살짝 다가서는데, 멀리서 이성이 속삭이더구나. ‘하마는 보기와 달리 난폭하다, 의외로 빠르다, 물리면 즉사한다.’ 너를 보며 고래를 떠올리기란 쉽지 않지만, 실은 친척이라지? 2016년 르완다 아카게라.

강가에서 너희들을 만났지. 스무 마리쯤 무리 지어 있었어. 보는 순간, “저기, 하마다”라는 외침과 “아, 귀엽다”라는 탄성이 절로 나오더라. 살짝 다가서는데, 멀리서 이성이 속삭이더구나. ‘하마는 보기와 달리 난폭하다, 의외로 빠르다, 물리면 즉사한다.’ 너를 보며 고래를 떠올리기란 쉽지 않지만, 실은 친척이라지? 2016년 르완다 아카게라.


보기만 할 때는 귀엽다. 새끼는 말할 것도 없고, 어미조차도 귀여움이 흘러넘친다. 보기만 할 때는.

그래서일까. 1909년 우리나라 최초의 동물원 ‘창경원’이 개장하고, 1912년 독일에서 한 쌍의 하마가 수입됐을 때 사람들은 호들갑을 떨었다. 이름 그대로라면 ‘강물에 사는 말’일진대, 어찌 호기심이 일지 않을쏜가. 순식간에 관람객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창경원을 ‘하마동물원’이라고 바꿔 부를 지경이었다. 1922년 3월6일치 ‘매일신보’는 이른 봄의 동물원 풍경을 전하며 “물속에서 노는 하마는 변함없이 모든 손님의 귀여움을 받고, 사람들은 하마가 있는 창살을 떠날 줄 모른다. 정신을 잃고 선 사람도 많았다”고 썼다. 금실 좋은 하마 부부가 새끼를 낳을 때마다 사람들은 환호했다.

그 귀여움은 아프리카에서 사람을 가장 많이 살해한 동물이 어떤 동물인지 묻고 답하면서 살짝 달라진다. 크게 자라면 3t에 이르는 하마는 아프리카코끼리, 흰코뿔소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육상동물이고, 성질머리도 급하고 고약하다. 무시무시한 송곳니는 성인 남성의 팔뚝보다 굵고 길어서, 제대로 물렸다간 사자도 악어도 비명횡사를 면치 못한다. 건기와 우기가 반복되는 아프리카 기후에서 살아남으며 영역에 대한 신경질적인 감수성을 갖췄다. 이름 그대로 물 없이는 살기 어려운 탓에 건기에는 동족 간 다툼도 사납기 이를 데 없다. 멋모르고 하마 영역에 다가갔다가 물려 죽은 사람이 부지기수다.

사자가 물어도 끄떡없는 피부와 살집을 가졌지만, 자외선에 취약하다. 물에서 한낮을 보내고 어두워지고서야 뭍으로 나와 풀을 뜯는 이유다. 한자식 이름도, 영어 이름 히포포타무스(Hippopotamus)도 ‘강에 사는 말’이라는 뜻인데, 동물분류학상 말보다는 소나 돼지에 가까운 우제목이다. 콧구멍을 물속에서 여닫을 수 있고, 발가락 사이에 물갈퀴 같은 피막이 발달했으며, 물속에서 5분 이상 숨을 참을 수 있다. 생각나는 수중포유류가 있지 않은가. 그렇다, 하마와 고래는 가까운 친척이다. 하루 50~60㎏의 풀을 뜯는 대식가인 탓에, 돈 먹는 하마나 세금 먹는 하마 따위의 부정적 표현에도 자주 등장한다.

19세기,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이 아프리카 대륙을 닥치는 대로 침략하고 자원을 강탈할 때 하마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세계 최초의 근대동물원을 연 독일 함부르크의 하겐베크 가문은 대표적인 아프리카 동물밀렵꾼이자 장사꾼이었다. 하겐베크는 “하얀 코끼리부터 벼룩까지, 무엇이든 다 구해올 수 있다”는 신화를 만들었지만, 1873년 어린 하마를 잡아오라고 떠나보낸 막냇동생 디트리히가 수많은 어미 하마를 죽이고도 새끼 하마를 사로잡는 데 실패한 채 말라리아에 걸려 죽는 걸 막지는 못했다. 동물과 사람의 막대한 희생을 치르며 끝내 구해온 진귀한 동물에 매겨진 값은 상상을 초월했다.

아프리카 케냐가 아니었다. 르완다도 아니었다. 1912년 창경원에 아프리카 하마 한 쌍을 공급한 나라는 독일이었다. 수출이었나? 약탈이었지.

노순택 사진사

*노순택의 풍경동물: 어릴 적부터 동물 보는 걸 좋아했습니다. 동물을 키우려고 부모님 속을 썩인 적도 많았지요. 책임의 무게를 알고부터 키우는 건 멀리했습니다. 대신 동물책을 많이 읽었지요. 시골로 내려와 살기 시작하면서 개와 닭과 제가 한 마당에서 놉니다. 작업을 위해서, 또는 다른 일로 국내외 여러 곳을 오갈 때면 자주 동물원에 들릅니다. 편안한 마음과 불편한 마음이,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스며들거든요. (격주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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