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과 어린이를 위한 책을 쓰는 일을 하다보니 답사도 많이 따라다니고 박물관도 수시로 가고 여러 강좌도 많이 들었다.
오래전 해금을 배우러 다닌 적이 있었다. 해금 악보를 받았는데 말로만 듣던 정간보였다. 세종 때부터 정간보를 만들어 썼다는 건 들었지만 보기는 처음이었다. 진짜 원고지 칸처럼 생긴 바탕에 한자가 가득 쓰여 있었다.
그런데 우리 악보에는 궁상각치우 중 어느 음도 한 번 안 나왔다. 궁상각치우는 고급반에서 배우는 악보에 나오나라는 생각도 했는데 기본 5음계라면 처음부터 나와야 하지 않는가. 선생님은 웃으며 이 악보에서는 기본 5음이 ‘황태중임남’이라고 하셨다. “분명히 학교 다닐 때 궁상각치우라고 배웠는데요?”라고 물으니, 선생님은 궁상각치우는 계명이고 그것과 별도로 12율명이 있다고 알려주셨다. 나는 그동안 알지 못했던 우리 음계(12율명)을 알게되어 신기했다.
그 뒤 나는 ‘이미 아는 지식을 늘 의심하고 자세히 알아보고 어린이책에 써야지’라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사물놀이는 전통음악이 맞나 궁금해 알아봤다. 사물놀이에 쓰는 악기는 분명 전통악기이지만 네 가지 악기로 공연하는 사물놀이 공연 양식은 1978년에 시작됐다.
또한 외국에서 한국을 알리는 공연에 자주 등장하는 부채춤은 전통문화인가. 무용가 김백봉님이 1954년 안무를 하여 독무대로 선보인 창작 작품인데 1968년 멕시코시티올림픽의 세계민속예술축전에서 군무로 재구성돼 널리 알려진 무용이었다. 그러고 보니 풍속화나 궁중의궤에서 칼춤은 봤어도 부채춤은 못 봤다. 한국의 춤이고 한국의 음악이지만 전통문화라고 말하기엔 아직 연륜이 짧아 보였다.
‘이미 아는 지식’이라고 생각했던 것 가운데 가장 놀란 것은 수의였다. 출토복식을 연구하는 교수님이 “오래된 무덤에서 수의가 나온 적이 없다”고 하셨다. 복식이 출토된 무덤은 거의 공기가 안 들어가게 만든 회곽묘라 상류층 무덤인데 생전 평소 입던 옷을 겹겹이 입은 모습으로 출토된단다. 그 뒤 이런 사실이 신문기사에도 나왔지만 당시엔 아는 이가 별로 없었다. 수의를 따로 마련하는 건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된 풍습이라 하셔서 다들 충격받았다.
“우리 민족이 수의를 만들 생각이었으면 혼례복 못지않은 아름다운 옷으로 만들었을 테죠.” 교수님 말씀을 듣고 내가 좋아하는 옷을 입고 저세상으로 떠나도 된다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내가 한국인이라고 한국 전통문화를 저절로 알게 되는 건 아니었다.
임정진 동화작가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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