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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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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광역버스 입석 금지 ‘교통이 고통’

경기 광역버스 44% ‘입석 금지’ 참여… 출퇴근 전쟁 벌어져
김동연 지사·원희룡 장관 긴급대책 내놨지만 뾰족수 없어
등록 2023-01-26 12:49 수정 2023-01-27 04:30
광역버스 입석승차가 중단된 2022년 11월18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의 한 버스정류장에 ‘만석입니다’라는 문구가 부착된 버스가 지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광역버스 입석승차가 중단된 2022년 11월18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의 한 버스정류장에 ‘만석입니다’라는 문구가 부착된 버스가 지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칼퇴근해도 집에 가면 밤 9시입니다. 출근부터 에너지는 방전되고 퇴근 전쟁 뒤 집에 오면 녹초가 되는, 교통이 고통인 상황입니다.”

2023년 1월3일 오후 서울 사당역 4번 출구에서 경기도 수원역까지 운행하는 광역버스의 ‘입석승차 금지 체험’을 하던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을 만난 한 시민은 불만 섞인 목소리로 이렇게 하소연했습니다. 원 장관도 이날 “눈앞에서 버스 6대를 보냈다”며 답답한 상황을 전했습니다.

“원희룡 장관도 좌석 없어 6대 보내”

서울과 경기·인천 지역을 오가는 광역버스의 ‘승차난’은 하루이틀 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2022년 11월18일부터는 한 시민의 말처럼 ‘교통이 고통’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상황이 악화했습니다. 이날부터 고속도로 등 자동차전용도로를 이용하는 수도권 광역버스의 입석승차가 전면 금지됐기 때문입니다.

사실 고속도로(자동차전용도로)에서 대중교통 입석승차는 애초 법으로 금지된 사항입니다. 도로교통법 시행령 제22조에는 ‘고속도로에서 승차정원을 넘어서 운행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위반시 운전자에게 1회당 벌금 20만원과 벌점이 부과됩니다.

수도권 출퇴근길에서 이 법령을 그대로 적용하면 제시간에 서울로 출퇴근이 불가능할 정도여서 ‘유명무실’한 조항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지방정부와 버스회사는 물론 경찰까지 광역버스 입석승차를 ‘모른 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10·29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시민 불편보다는 안전이 훨씬 중요하다는 뼈아픈 교훈을 다시 얻었고 승객 안전의 최일선 책임이 있는 버스회사들은 어떻게 쓸지 모를 ‘덤터기’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선제 조처를 단행했습니다. 국내 최대 규모의 노선버스 회사인 케이디(KD)운송그룹 소속 경기 지역 13개 버스업체 노조가 나서 “11월18일부터 입석승차를 전면 중단·거부하겠다”고 통보한 것입니다.

이들 업체에서 운행하는 광역버스는 모두 1100여 대로, 경기도 전체 광역버스 2500여 대의 44%에 달합니다. 이 때문에 수도권 곳곳에서 출퇴근 시민 수천 명이 날마다 승차난을 겪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이미 예고됐다는 것입니다. 경기 지역 버스인 경진여객과 용남고속 등 일부 업체가 4개월 전인 2022년 7월부터 입석승차를 중단한 상태였습니다.

국토교통부 산하 대도시권광역교통대책위원회도 입석 금지 열흘 전인 11월7일 대책회의까지 열었지만, 이렇다 할 대처를 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국토교통부가 밝힌 자료를 보면, 서울과 경기 지역을 오가는 승객은 2022년 10월 현재 하루 21만5천여 명이며 이 중 입석 승객은 4802명에 이릅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2023년 1월3일 오후 서울 지하철 4호선 사당역 4번 출구 인근에서 퇴근길 광역버스 탑승 현장을 점검하며 버스기사와 대화하고 있다. 원 장관은 이날 승차난에 시달리는 시민들에게 “출퇴근 시간을 줄이고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은 늘려드리겠다”고 약속했다. 연합뉴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2023년 1월3일 오후 서울 지하철 4호선 사당역 4번 출구 인근에서 퇴근길 광역버스 탑승 현장을 점검하며 버스기사와 대화하고 있다. 원 장관은 이날 승차난에 시달리는 시민들에게 “출퇴근 시간을 줄이고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은 늘려드리겠다”고 약속했다. 연합뉴스

입석 승객 하루 4800명인데 대책 없이 시행

결국 입석승차 금지 당일 많은 시민은 “평소보다 일찍 집에서 나와 출근길에 올랐지만 지각이 확정됐다”고 볼멘소리를 쏟아냈습니다. 학생들도 30분 이상 발을 동동 구르다 한참 떨어진 지하철역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는 등의 모습이 목격됐습니다. 시민들은 “취지는 좋은데 대책도 없이 무조건 시행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불만을 터뜨렸습니다. 덕분이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이날 지하철역은 평소보다 많은 매출을 올렸습니다. 이런 걸 ‘풍선효과’라고 빗대도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여론이 악화하자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정부 및 수도권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수도권 광역버스 입석대응협의체’를 상설화해 승객 불편과 혼잡 상황을 지속 모니터링하는 등 입석 문제에 공동 대응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이어 “전세버스, 예비차량 등을 투입하고 ‘광역버스 입석 대책’에 따라 늘리기로 계획된 68대의 차량도 2023년 초까지 투입을 완료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1월3일 혹독한 ‘광역버스 체험’을 한 원 장관은 “관련 부처 책임자로서 미안하다”며 “출퇴근 전쟁을 끝내기 위해 버스 물량 공세에 나서겠다. 버스와 기사 확보에 사활을 걸겠다. 당장 전세버스라도 더 투입하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3월까지 1만2천 석의 좌석 추가 공급 △2층 전기버스 투입 △지하철 9호선 같은 급행 노선 도입 등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어 “출퇴근 시간은 줄이고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은 늘려드리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수도권 주민들은 오늘도 동이 트기 전부터 전쟁을 치렀습니다. 최근 몇 달 사이 더 치열해진 이 전쟁에 벌써 익숙해졌지만, 그래도 시민들은 약속이 하루빨리 지켜지길 고대합니다.

마지막으로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한 광역버스 이야기 말고 새로운 버스요금 결제 서비스를 하나 소개합니다. 1월2일부터 모든 경기도 내 광역버스에서 시행하는 ‘비접촉(태그리스) 버스요금 결제 서비스’가 그것입니다. 스마트폰에 ‘태그리스 페이’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한 뒤 선·후불형 교통카드를 등록하면 버스를 타고 내릴 때 자동으로 승·하차 처리와 결제가 이뤄집니다. 2022년 1월부터 김포 지역을 시작으로 서비스를 순차적으로 확대해 광역버스 1789대에서 시행했고, 이번에 880대에 서비스를 확대하면서 경기도 내 2669대의 모든 광역버스에서 이용할 수 있게 됐습니다.

비접촉 버스 결제는 교통약자에게 도움

기존 근접무선통신(NFC) 결제 불가로 휴대전화를 통한 교통비 결제가 불가능했던 아이폰 사용자 역시 ‘캐시비샵’에서 전용 스티커를 구매해 휴대전화에 부착하면 결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2023년부터는 스마트폰을 들고 광역버스를 타고 내리기만 하면 요금이 결제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시내버스·지하철 등으로 서비스 범위를 확대할 계획입니다. 이 결제 서비스로 시각장애인을 포함해 교통약자를 위한 교통 서비스 품질도 향상되리라 기대합니다.

경기 남부=김기성 <한겨레> 기자 player0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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