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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스케이트장, 세계인은 찾아오는데 서울서는 못 온다?

2024 설 - 강원도
쓰임새 없어 문 닫아거는 ‘강릉스케이트장’, 대한체육회는 “이동 거리·시간 고려”한다며 2천억원 들여 새 경기장 짓기로
등록 2024-02-09 11:25 수정 2024-02-10 20:47
2024년 1월19일 강원겨울청소년올림픽 개회식이 열린 강릉 스피드스케이트경기장에서 열렸다. 연합뉴스

2024년 1월19일 강원겨울청소년올림픽 개회식이 열린 강릉 스피드스케이트경기장에서 열렸다. 연합뉴스


2024년 1월19일 강원도 강릉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이하 강릉스케이트장)에선 강원겨울청소년올림픽 개회식이 열렸습니다. 전세계 78개국에서 한국을 찾아온 1802명의 선수와 관중은 다채로운 영상과 춤, 노래 등에 맞춰 청소년다운 에너지를 맘껏 발산했습니다.

기본 운영비만 연간 8억~9억원

청소년올림픽 기간 강릉스케이트장에선 또 다른 감동의 순간이 연출됐습니다. 이상화(34)와 고다이라 나오(37·일본)가 2018 평창겨울올림픽 당시 치열하게 경쟁한 뒤 뜨겁게 포옹을 나눴던 이 경기장에서 6년 만인 2024년 1월22일 다시 만나 서로를 얼싸안은 겁니다. 두 사람은 평창올림픽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500m에서 나란히 금메달과 은메달을 딴 뒤 각자 태극기와 일장기를 몸에 두른 채 손잡고 경기장을 한 바퀴 돌며 함께 울어, ‘경쟁’과 ‘우정’이라는 올림픽 정신을 생생하게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14일간의 청소년올림픽이 끝나고, 강릉스케이트장은 다시 문을 닫아걸었습니다. 이 경기장은 평창올림픽 개최를 위해 국비 948억원 등 1264억원이 투입됐습니다. 하지만 16일간의 평창올림픽이 끝난 뒤 청소년올림픽이 열린 2024년까지, 지난 6년간 마땅한 활용 방안을 찾지 못한 채 사실상 방치됐습니다. 가끔 육아박람회장이나 영화 세트장 등 엉뚱한 목적으로만 사용됐습니다. 이렇게 번 수입은 연간 수천만원 수준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이 경기장을 유지하려면 기본 운영비만 연간 8억~9억원이 필요합니다.

평창겨울올림픽 이후 마땅한 활용 방안을 찾지 못해 방치되고 있는 강릉 스피드스케이트경기장 모습. 청소년올림픽조직위원회 제공

평창겨울올림픽 이후 마땅한 활용 방안을 찾지 못해 방치되고 있는 강릉 스피드스케이트경기장 모습. 청소년올림픽조직위원회 제공


마침 대한체육회가 2월8일까지 태릉선수촌 안 국제스케이트장을 대체할 부지를 찾고 있습니다. 태릉 스케이트장은 조선왕릉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따라 철거될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2030년 완공 예정인 이 사업 공사비는 약 2천억원(부지 매입비 제외)으로 400m 트랙과 부지 면적 5만㎡(연면적 3만㎡) 이상 등이 조건입니다. 강릉스케이트장은 이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국내 유일의 시설입니다.

하지만 대한체육회 쪽은 “선수들의 이동 거리와 시간 등을 고려할 때 강릉스케이트장은 안 될 것 같다. 문화체육관광부와도 새로 짓는 거로 정리됐다”고 선을 긋고 있습니다.

강릉시의회도 ‘강릉스케이트장 활용 촉구 건의안’을 채택

그럼에도 강원도에선 대한체육회가 공모를 철회하고 마땅한 활용 방안을 찾지 못한 채 방치된 강릉스케이트장을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박용근 강릉시빙상경기연맹 회장은 지난 1월 국회 국민동의청원 누리집에 ‘기존 국제경기장을 활용하고, 국민 혈세 2천억원을 아끼자’는 제목의 글을 올려 “강릉스케이트장은 국제경기를 치르고도 남을 만큼 완벽한 시설을 갖추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2천억원을 들여 새로운 경기장을 짓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조처”라고 지적했습니다. 강릉시의회도 2023년 12월 본회의에서 ‘강릉스케이트장 활용 촉구 건의안’을 채택했습니다.

청소년올림픽이 끝나고 다시 선택의 순간입니다. 1264억원이라는 혈세가 투입된 강릉스케이트장은 방치한 채 2천억원을 들여 새 경기장을 지어야 할까요?

강릉=박수혁 한겨레 기자 p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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