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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당 1억원? 갑작스러운 저출생 대책, 현실성 있나

2024 설 -서울
김현기 서울시 의장, 지원 대상 소득 기준 없애고 아이 한 명당 현금 지원 등 주장
상위법 충돌하고 재정 계획 부족… 시 행정부, 야당과 사전 협의 없어
등록 2024-02-09 02:26 수정 2024-02-11 02:27
2024년 1월23일 서울시의회에서 열린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김현기 서울시 의장이 저출생 대책을 설명하고 있다. 서울시의회 제공

2024년 1월23일 서울시의회에서 열린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김현기 서울시 의장이 저출생 대책을 설명하고 있다. 서울시의회 제공


김현기 서울시의회 의장이 2024년 1월23일 신년 기자간담회를 열고 ‘서울형 저출생 극복모델’을 제안했다. 신년 기자간담회가 열린 건 1991년 서울시의회 재출범 이후 33년 만에 처음인데다 시의회가 단독으로 특정 이슈에 대해 ‘정책 제언’을 한 것도 이례적이다. 서울의 합계출산율이 0.59명(2022년)으로 전국에서 가장 낮은 만큼 저출생 문제의 심각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김 의장은 “올해 서울 공립초등학교 565개교 중 신입생 100명 이하인 곳이 60%가 넘는 352개교나 된다”며 파격적인 정책을 내놨는데 실현 가능성에 의문이 따른다.

공공주택도 연 4천 가구 자녀 출생 가구에 우선 배정

이날 김 의장이 밝힌 저출생 정책은 크게 세 가지다. 우선 모든 저출생 관련 정책에 소득 기준을 없애 자녀가 있는 가구라면 누구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한다는 계획이다. 예를 들어 현재 서울시에서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하려면 월소득이 도시근로자 평균소득의 120% 이내(2인 가구 기준 월 600만원)여야 한다. 전월세 보증금 이자지원은 연소득 9700만원 이내여야 받을 수 있다. 서울형 아이돌봄비 지원 역시 중위소득 150% 이하로 3인 가구 기준 월 약 660만원이라는 소득 기준이 있다. 김 의장은 이러한 소득 기준을 모두 없애 신혼이고 자녀를 낳을 예정이라면 모두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둘째는 주거 문제다. 김 의장은 신혼 및 자녀 출생 예정 가구와 최근 1년 이내 자녀 출생 가구를 대상으로 공공임대주택 연평균 공급물량의 약 15∼20%에 해당하는 연 4천 가구가 우선 배정되도록 바꾸겠다고 밝혔다. 4천 가구의 절반은 서울시와 서울주택도시공사가 공급하는 역세권 장기전세주택, 재개발·재건축 매입, 기존 주택 매입임대, 공공주택 건설사업 등을 통해 공급하고 나머지 절반은 ‘신혼·자녀출생가구’용으로 기존 주택을 전세로 임대하는 등 확대 공급해 마련하겠다는 안이다.

전월세 보증금 대출이자를 보전해주는 금융지원의 경우 연 1만 가구를 출생 자녀 수에 따라 지원하는 방안을 내놨다. 최소한 연 1%는 본인이 부담하지만 자녀 한 명은 연 2%, 두 명은 연 4%를 지원하고 세 자녀 이상은 키우는 가구는 최소부담분(1%) 없이 대출이자 전액을 지원하는 안이다.

셋째는 아동수당 지급 기간과 임산부 교통비, 부모급여 지급액을 늘려 아이 한 명당 최소 1억원 이상 지원하는 현금성 지급안이다. 우선 현재 8살 이후 중단되는 아동수당을 18살까지 월 10만원씩 추가로 지원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현재 70만원씩 지원 중인 임산부 교통비를 70만원 추가로 지원하고, 부모급여도 아이가 0∼1살일 때 월 5만원씩 추가 지원하는 안도 검토한다.

“당연히 서울시청과 협의하지 않았다”는 김 의장

저출생 문제를 해결해보겠다는 김 의장 개인의 의지와는 별개로 이날 밝힌 구상안이 시의회 조례를 통해 얼마나 실현 가능할진 물음표로 남는다. 일단 상위법과 충돌한다. ‘공공주택특별법’은 공공임대주택 입주 기준에 소득 기준을 두고 있다. 서울시의회는 “단기적으론 서울시 재원으로 우선 지원하고 중앙정부에 기준 완화를 건의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상위법이 정한 범위를 넘어 시 예산을 투입할 수 있을지는 따져봐야 한다.

서울시는 물론 시의회 내부에서도 합의되지 않은 안을 무작정 밝혔다는 점 역시 현실성을 떨어뜨린다. 자신의 정치적 존재감을 부각하기 위해 선언적 의미에 그치는 안을 내놓은 것 아니냐는 지적도 뒤따른다. 김 의장은 이날 밝힌 구상을 서울시와 사전 협의했냐는 질의에 “당연히 서울시청과 협의하지 않았다. 협의하면 서울시청의 안이 되기 때문”이란 답을 내놨다. 그러면서 “(시의회의) 입법권과 예산확정권으로 충분히 실행에 옮길 수 있다”고도 자신했다.

하지만 당장 늘어날 재정 부담조차 마땅한 해법이 없다. 김 의장은 “서울시교육청에 축적된 일정 부분 예산을 서울시로 ‘재정 스와프’를 하면 저출생 문제에 투입할 수 있다”고 답했는데 이 역시 국회에서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개정이 전제돼야 가능한 사안이다. 그가 자신한 대로 ‘시의회의 권한’만으론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란 얘기다.

서울시 정책과도 엇박자다. 김 의장은 이날 ‘신혼·자녀출생가구용’ 공공주택 공급 후보지로 서울 서대문구 서울시교육청∼돈의문박물관마을 부지를 지목했는데, 이 일대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1월17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녹지 공간으로 바꾸겠다”고 밝힌 곳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김 의장이 밝힌 구상안이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한 민주당 시의원은 “의회 명의로 정책 자료가 나가려면 적어도 사전에 내용을 공유하고 의견을 수렴하고 조정하는 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과정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한 정책”이라며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이런 내용을) 모르고 (기자간담회에) 참석했다고 한다. 관련 자료를 요구했는데도 잘 안 주더라고 했다”고 말했다. 게다가 김 의장의 임기가 2024년 6월까지이기 때문에 “그 이후는 시의회 의장도 아니고 해당 정책이나 사업, 예산 등을 책임질 위치에 있지 않은데” 이런 안을 내놓은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고도 했다.

혼인과 출생에 대한 젊은 남녀 인식 등 고려 없어

정책 방향에 대한 의문도 남는다. 현금성 지원을 무작정 늘린다고 출산율이 높아지지 않는다는 건 이미 한국 사회가 ‘학습’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1월26일 성평등에 대한 한국 젊은 남녀의 인식과 이념 격차가 혼인율과 출산율 급감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고민은 이날 구상안에서 보이지 않는다. 김 의장은 이날 “기존 관행과 법규에 얽매이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서도 “요즘은 비혼주의자도 많은데 프랑스처럼 동거가족 지원은 없냐”는 질문엔 “국회가 아니라 입법 기능이 없다”는 답을 내놨다. 상위법을 개정하지 않고는 실현하기 어려운 구상안을 잔뜩 내놓은 이의 답이라기엔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서울=박다해·손지민 한겨레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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