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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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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안에 두 번의 기적이 일어날 확률

폐가 미성숙한 22~23주 아기를 연이어 만난 날, 두 아이는 모두 큰 울음소리를 내며 세상에 나왔는데
등록 2022-12-21 14:21 수정 2022-12-22 05:01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의 신생아 중환자실. 한겨레 자료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의 신생아 중환자실. 한겨레 자료

한가로운 아침, 출근하자마자 산부인과에서 호출이 왔다. 곧 23주 태아를 분만할 예정이라고. 쌍둥이 중 첫째가 이미 자연분만으로 나와 숨졌다고 했다. 둘째는 아직 엄마가 배 속에 품고 있으나 상태가 좋지 않아 제왕절개로 낳을 거라는 마음 아픈 소식을 전했다.

산부인과 병실로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렸다. 방 안은 불이 켜져 있지 않아 어둑어둑했다. 산모는 다시 깨지 않을 잠을 자는 첫아이를 아직도 안고 있었다. 차마 아이 얼굴을 볼 수 없어 어둠을 택했을까. 가슴 안에서 뭔가 ‘툭’ 하고 끊어져 캄캄한 바닥으로 추락했다. 상담을 시작해야 하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이 뒤섞인 언어의 바다에서 고심해 건져 올린 말만 조심스럽게 건넸다.

미국은 24주 이상, 일본은 22주 이상

“오늘 아침에 아기를 보내셨다고 들었습니다. 마음이 너무 아프네요. 저도 아이가 둘인 엄마예요. 그 마음을 온전히 헤아릴 순 없지만….”

목소리가 떨려 말을 잇지 못하고 잠시 숨을 멈췄다. 다행히 부모의 울음이 잦아들어 상담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이미 한 아기를 떠나보낸 부모는 두 번째 아기까지 무리하여 살리기를 원치 않았다.

폐가 미성숙한 채 22~23주에 태어나는 아기는 치료하기도 하고 자연스러운 죽음을 선택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22~23주 아기의 경우 기도 삽관을 해서 생체 징후가 나아지면 신생아 중환자실로 옮겨 집중치료를 하고 경과를 보자는 데 동의한다. 그 이상으로 태어나자마자 가슴 압박이나 탯줄에 관을 넣어 강심제를 투여하는 것은 대체로 불필요한 의료행위라고 생각한다.

물론 가깝고 먼 미래에는 의료계와 나의 관점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현재 미국에선 24주 이상부터 집중치료를 하며 아기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지만, 일본에서는 1991년부터 법이 바뀌어 22주에 나온 아기도 집중치료를 한다. 그중 25%는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건강해져 퇴원한다고 한다.

제왕절개로 세상의 빛을 본 아기는 나오자마자 생각보다 큰 울음소리로 우리를 깜짝 놀라게 했다. 움직임조차 없이 나오는 초미숙아가 많기에 모두의 두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언니의 죽음을 애달파하던 울음소리는 곧 멈췄다. 이미 한 아기를 잃어 슬픔에 잠긴 부모를 위해 초미숙아의 작은 움직임에도 내 안의 모든 정성을 꺼내 쏟아부었다. 까맣게 물든 부모 가슴에 더 큰 어둠을 더해주고 싶지 않았다. 정신없이 달린 나의 24시간 당직날은 당직실 문 한 번 열어보지 못하고 끝났다.

혹시라도 두 아이가 같은 학교에 간다면

업무 인계를 하려고 기다리는데 이번에는 22주 초미숙아가 태어났다. 과도한 치료는 피하자는 의료진 입장과 달리 엄마는 모든 치료를 원했다. 이번에도 잠깐이지만 분명히 들렸다. ‘으앙’ 하고 조용한 분만실의 침묵을 깨는 아기 울음소리. 자기를 꼭 살려달라는 목멘 읍소 같았다.

다행히 기도 삽관 이후 아기 상태는 안정적이었다. 정상적인 뇌 발달을 추진하기 위해 한 시간 안에 중심정맥관과 동맥관을 넣고 투약과 수액 주사를 서둘러 마쳤다. 빛을 줄여 엄마 배 속 같은 환경을 조성해주고 최대한 아기 만지는 일을 줄였다. 출생 뒤 사흘 동안, 90% 이상의 뇌실내출혈이 일어나기에 이를 막기 위함이다.

기나긴 퇴근길 아침, 24시간 안에 두 명의 22~23주 초미숙아를 만날 확률을 생각해봤다. 거의 로또 맞을 확률이 아닐까 의아해하며 두 아기 모두 건강하게 퇴원하는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봤다. 너무 희미해서 잘 보이지 않는 저 고속도로의 끝같이 가물가물한 모습이었다. 어쨌든 모든 정성을 쏟아 치료했고 아기는 살아서 분만실을 나왔다. 첫 출발치고는 나쁘지 않으니 슬며시 기대감에 차오르다가도 무의미한 희망 같아 지우려 노력했다.

오늘 아침 태어난 22주 아기가 살 확률은 10% 정도, 어제 아침의 23주 아기는 15% 정도에 불과했다. 자꾸 어둠 속에 안겨 있던 쌍둥이 첫째 아기와 쨍하게 밝은 신생아 중환자실의 둘째 아기 모습이 겹쳐 보였다. 아침에 받은 22주 초미숙아의 떠지지 않던 눈도 다시 떠올랐다.

미국 전역에서도 악명 높은 캘리포니아 교통체증 한가운데서, 짜증과 노여움만 가득한 얼굴들 가운데서, 나만 환하게 웃고 있었다. 두 아기의 시작이 좋았고 최선을 다해 살렸으니 앞으로 이 길처럼 좀 막히더라도 금세 뻥뻥 뚫려 집에 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두 아기가 퇴원해 건강히 자라 유치원에라도 가게 된다면? 혹시라도 두 아이가 같은 학교에 간다면? 상상에 상상을 더해 점점 환한 미래가 그려졌다. ‘아, 정말 그런 날이 온다면 이런 기쁨이 또 있을까’라는 생각까지 다다랐다. 곧 그 먼 훗날의 그림이 현실이 될 확률은 또 얼마나 될까 침울해지려는 찰나 갑자기 뻥 뚫린 고속도로가 눈앞에 펼쳐졌다. 순간 대학교 때 들은 심리학 수업에서 교수님이 하신 말이 뇌리를 스쳤다.

“나한테 일어나면 100프로, 일어나지 않으면 0프로. 이게 확률입니다.”

그까짓 10~15% 확률쯤이야

지난 24시간 동안 로또를 맞은 나의 확률과 두 아기의 확률이 ‘펑’ 하고 사라졌다. 두 아기는 로또 확률을 뚫고 나왔으니 그까짓 10~15% 확률쯤이야 가뿐히 넘어 건강하게 집에 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핑크빛 상상은 계속됐고 나는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 두 아기 모두 5~6개월 뒤 건강한 모습으로 집에 돌아갔다. 이 글을 쓰는 도중 23주 아기의 전원 신청이 들어왔다. 이런 우연이 또 있을까. 이제 가서 또 정성을 쏟아야겠다. 이미 두 번 맞은 로또인데 또 한 번의 기적이 오지 않으란 법은 없으니.

스텔라 황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병원 소아과 신생아분과 교수

*신생아중환자실에서 손바닥만 한 초미숙아부터 만삭아까지 돌보는 스텔라 황 교수가 어린 생명의 삶과 죽음을 이야기합니다. 스텔라 황 교수는 의사이자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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