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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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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하우스 숙소 불허’에도 현실은 딴판

포천 이주노동자 주거시설 현황 살펴보니
등록 2022-12-18 15:59 수정 2022-12-19 02:48
2022년 12월8일 경기도 포천 소흘읍의 연립주택 방 한 칸에 세를 든 포천이주노동자센터에서 김달성 목사가 현지 이주노동자들이 직접 쓴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라는 문구를 가리키고 있다. 조일준 기자

2022년 12월8일 경기도 포천 소흘읍의 연립주택 방 한 칸에 세를 든 포천이주노동자센터에서 김달성 목사가 현지 이주노동자들이 직접 쓴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라는 문구를 가리키고 있다. 조일준 기자

2020년 12월 캄보디아 노동자 누온 속헹의 사망 사건에 여론이 들끓자 고용노동부는 이듬해 1월6일 ‘외국인근로자 주거환경 개정 지침’을 발표했다. “2021년부터 고용허가 신청시 비닐하우스 내 컨테이너·조립식패널 등을 숙소로 제공하면 불허한다”는 게 뼈대다. 또한 “기존 사업장에서 그런 숙소에 사는 외국인노동자는 본인이 희망할 경우 사업장 변경을 허용”하기로 했다. 그해 5월 농가에 있는 외국인노동자를 위한 빈집, 이동식 조립주택의 개보수와 설치 비용을 지원하는 사업도 시작했다.  ▶관련기사= ‘코리안드림’ 24만 명에게 강요한 노예노동

그러나 현실은 전혀 딴판이다. 2022년 12월8일 <한겨레21>이 경기도 포천에서 만난 이주노동자들은 모두 올여름 이후에 입국했지만 비닐하우스 내 불법 가건물에 살고 있다. 이들의 근로계약서 중 ‘숙박시설’ 항목에는 ‘미제공’ 또는 ‘주택’에 체크 표시가 돼 있었다. 고용주가 거짓 신고로 고용허가를 받아낸 것이다. 김달성 목사는 “최근 포천시 가산면 일대를 직접 돌아보며 조사해보니 농장 15곳, 이주노동자 40명이 이런 식으로 고용허가를 받아 여전히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살고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고용정보원의 ‘고용허가제 외국인근로자 현황’을 보면, 2022년 3분기 농축산업 부문 이주노동자 2만1959명 중 경기도가 5994명(27.3%)으로 8개 도 단위 광역지방자치단체 중에서 가장 많다. 그러나 이들 지자체의 일반회계 예산에서 농정예산의 비중은 경기도가 3.5%(1조511억원)로 꼴찌다. 지자체의 산업구조 특성을 고려해도 너무 낮다. 경기도 다음으로 농정예산 비중이 적은 충북도 10%가 넘는다.

2022년 11월14일 경기도의회의 농정해양위원회 행정사무감사에서도 이주노동자 주거시설에 대한 지적이 나왔다. <한겨레21>이 경기도의회 강태형 의원(더불어민주당, 농정해양위원회)에게 받은 자료를 보면, 2021년 경기도는 국비 지원 9억원을 포함한 18억원의 예산으로 도내 8개 시·군 108곳에 대한 외국인노동자 지원사업을 벌였다. 그러나 ‘사업 완료’ 농가는 6곳에 불과했고 88곳(81.5%)은 사업을 포기했다. 2022년으로 이월된 지원사업 32곳도 14곳만 ‘완료’했거나 ‘완료 예정’이고 나머지 18곳은 ‘포기’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022년 외국인노동자 주거 지원을 ‘일몰 사업’으로 분류했다. 농장주들의 호응 부족, 자재 가격 상승, 주민들의 반발성 민원 등에 부닥쳐 사실상 사업을 접은 것이다.

경기도 포천의 한 채소농장에 외국인 이주노동자의 숙소로 제공된 비닐하우스 기숙사. 조일준 기자

경기도 포천의 한 채소농장에 외국인 이주노동자의 숙소로 제공된 비닐하우스 기숙사. 조일준 기자

고용주가 주거지원 사업을 ‘포기’하는 사례가 많은 까닭은 여러 가지가 얽혀 있다. 우선 농장 경영자 대다수가 지주가 아닌 임차농이어서 자기 소유지가 아닌 곳에 상주 주거시설을 신설하거나 개보수하기가 쉽지 않다. 정부 지원금 1500만원도 충분하지 않다. 조립식 이동주택을 설치하기 위한 기초 닦기, 상하수도와 전기설비 등 부대비용은 모두 자부담으로 해야 한다. 농지에 화장실과 상하수도 설비를 갖춘 주거시설을 짓는 것도 불법이어서 법령 정비가 필요하다.

외국인 노동자가 없으면 농촌 일이 불가능할 만큼 농업 분야의 일손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강태형  의원은 “농장주들이 여러 조건이 맞지 않아 제대로 된 기숙사를 제공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며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나서서 농업 지역의 주요 거점에 외국인 노동자 기숙사를 만들어 안정적인 거주 시설을 제공하고 외국인 노동자들끼리 소통하는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강 의원은 ‘농업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인권 조례’를 대표 발의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주노동자의 주거환경, 근로 조건 개선을 위한 법률적, 제도적 지원 근거를 마련해 지방 정부가 시행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포천=글·사진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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