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셋째 주, 비교적 푸근하던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12월14일 기상청은 강원도와 경북 일대에 한파경보, 경기도 북부와 강원도 남부 일대에 한파주의보를 발효했다. 이날 서울 최저기온이 영하 10도, 경기 북부 도시 포천은 영하 14도로 떨어졌다. 도심 빌딩풍이 거세다지만, 너른 들녘의 겨울바람 매섭기만 할까. 한겨울 포천의 수은주는 영하 20도까지 내려간다. 체감온도는 더 낮다.
꼭 2년 전 12월에도 그랬다. 2020년 12월20일 아침, 갑작스러운 한파가 닥친 포천 일동면의 한 채소농장 비닐하우스 안 조립식 가건물에서 작은 몸집의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캄보디아 출신의 31살 이주노동자 누온 속헹이었다. 한국 체류 기한을 한 달 남겨둔 그의 숙소 서랍장에는 3주 뒤 출국하는 프놈펜행 항공권이 있었다. 속헹은 농장의 장시간 중노동과 열악한 생활환경 탓에 건강이 몹시 나빠진 뒤였다. 매월 12만원씩 건강보험료를 내고도 병원 문턱 한 번 넘기 힘들었던 그는 추운 겨울 낯선 땅에서 저체온증으로 쓸쓸히, 싸늘하게 식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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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이 지난 지금은 좀 나아졌을까? 2022년 12월8일,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 김달성 목사의 안내로 포천의 한 농장 지역을 찾아갔다. 제법 번화한 시내를 벗어나 자동차로 20분가량 달리자 금세 풍경이 바뀐다. 들판에는 수백 동의 비닐하우스가 끝없이 들어서 있다. 촘촘하게 맞붙은 비닐하우스 출입문 앞으로 좁은 시멘트 포장길이 바둑판 선처럼 이어진다. 어쩌다 소형 트럭이나 승용차를 마주칠 뿐, 행인은 좀체 보이지 않았다.
흰색 반투명 비닐하우스 10~20동마다 하나씩 검정 차광막을 씌운 비닐하우스가 끼어 있다. 사람은 그 안에 있다. 이른 아침부터 해가 기울어 어두워질 때까지는 흰색 하우스 안에, 저녁부터 다음날 새벽까지는 검은색 하우스 안에. 검정 차광막 비닐하우스 안에는 컨테이너나 샌드위치 패널로 된 조립식 가건물이 있다. 대한민국 정부의 ‘고용 허가’를 받아 E-9(비전문 취업) 비자로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에게 고용주가 제공한 숙소다.
고용허가제는 내국인 노동력을 구하지 못한 중소기업에 정부가 만 18~40살 외국인의 국내 취업을 알선해주는 인력 중개 제도다. 최장 체류 기간은 4년10개월(3년+1년10개월 연장). 5년 이상 한국에 체류하며 주소지와 소득이 있는 외국인에게는 영주권 신청 자격이 주어지는데, 고용허가제는 내국인의 기피 업종에 이주노동자의 노동력만 이용할 뿐 그들의 한국 정착은 철저히 막는다. 외국인노동자의 사업장 변경 조건이 극히 제한되고 까다로운 것도 이 때문이다.
좁은 농로를 따라 비닐하우스들을 둘러보다가 한 비닐하우스에서 일하던 노동자에게 말을 건넸다. 캄보디아에서 왔다는 26살 여성 케이나(가명)가 혼자서 상추를 따 종이상자에 담고 있었다. 폭 6~7m, 길이 90m가량 크기의 비닐하우스 안에는 싱싱한 적상추가 무성했다. 석 달 전 처음 한국에 왔다는 케이나는 한국말이 서툴렀다. 비닐하우스 안은 외풍이 없어 바깥보다 따뜻한데도 케이나는 방울 털모자를 귀까지 덮어쓰고 털신을 신었다.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일한다고 했다. “가장 힘든 게 뭐냐”는 물음을 겨우 이해한 그는 두 손을 허리에 얹어 가리키며 “일 많이 하니까 아파요, 많이”라고 했다.
검정 차광막 비닐하우스 중에는 농장주의 임시 숙소로 쓰이는 것도 듬성듬성 끼어 있다. 비닐하우스는 사철 농사라서 늘 일이 많은데다, 집이 멀 경우 출퇴근하지 않고 농장에서 숙식을 해결할 때가 많아서다. 노동자 숙소 하우스와 농장주 기거 하우스는 겉모습만으로는 구별되지 않는다. 검정 비닐하우스에는 출입문이 있는 앞쪽 위에 개구리 눈처럼 양쪽으로 폐회로텔레비전(CCTV) 카메라가 달린 곳이 많았다. 방범·치안용이지만, 이주노동자와 외지인, 특히 이주노동자 지원 활동가와 언론 취재 감시용으로도 쓰인다는 게 김달성 목사의 귀띔이다. 한 곳의 사진을 찍으려 카메라를 맞추자, 농장주로 짐작되는 남성이 조립식 가건물의 문을 열고 “야, 이 ×××야, 왜 사진을 찍어?”라고 욕설 섞인 고함을 질렀다.
오후 5시를 넘어서자 어둑어둑 땅거미가 내렸다. 2022년 8월 캄보디아에서 온 스레이 나니(가명)는 이제 막 일을 마치고 비닐하우스 내 가건물 숙소로 돌아온 참이었다. 그도 한국말이 서툴기는 마찬가지였다. 시내에서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며 숙소를 나서려는 그와 짧은 몇 마디를 나눴다. 고국에 어린 남매 자녀가 있으며, 포천에선 상추와 쑥갓을 기르고 약을 뿌리고 수확한다고 했다. 급여는 시급인데, 11월에는 190만원 중 기숙사비로 20만원을 선공제했다. 그도 온종일 비닐하우스 안에서 쪼그려 앉아 일하느라 허리와 무릎이 아프다고 했다. 스레이 나니에게 가장 불편한 것 중 하나는 화장실이었다. 이동식 간이 화장실은 숙소에서 50m가량 떨어진 곳에 있었다. 전등이 없고 잠금장치는 허술했다. 스레이 나니는 “화장실이 춥고 무서워요. 저녁에 가려면 휴대폰(플래시 조명)을 켜요”라고 말했다.
이날 저녁에는 네팔 출신의 남성 노동자 지번(29·가명)을 만났다. 일이 끝난 뒤 고용주의 눈을 피해 농장 근처 커피숍에서 만나 시내로 이동해 네팔 식당에서 저녁을 함께 먹으며 이야기를 들었다. 지번은 2016년 한국에 들어와 4년10개월 동안 일했다. 비자 기한이 만료된 시점에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출입국 통제가 강화되자 체류 연장을 허가받아 1년가량 더 일한 뒤 귀국했다가 ‘성실성’을 인정받아 2022년 11월에 재입국했다. 기본적인 한국말과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지번은 이번에도 같은 농장에 배치됐다. 네팔 대학에서 매스컴을 공부한 대졸 고학력자이지만 한국에선 시금치·배추·열무를 기르고 수확하는 저임금 장시간 노동자일 뿐이다. 새로 쓴 근로계약서에 명기된 노동시간은 오전 6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하루 11시간. 점심·휴게 시간 규정은 따로 없다. 그는 저녁 7시가 넘어서야 커피숍에 나타났다. 밭일이 끝난 뒤에도 비닐하우스의 동파와 채소 냉해를 막기 위해 비닐을 두 겹으로(이중비닐) 설치하고 그 사이에 미지근한 물을 흘려보내는 일을 포함해 이런저런 일이 많다고 했다. “비닐하우스가 70개인데, 지난해(2021년)엔 2명이 아침 6시부터 저녁 8시까지 일했어요. 쉬는 날은 두 달에 한두 번.”
농장노동 경력이 꽤 있는데다 성실함을 인정받은 지번도 임금수준이 형편없기는 마찬가지다. 해가 길어 공식 노동시간이 많은 여름에는 월 220만~250만원, 해가 짧은 겨울에는 130만~160만원을 받는다. 하루 10시간, 월 30일 노동시간에 2022년 최저임금 9160원을 적용하면 274만8천원이다. 농촌 이주노동자들은 법정 최저임금에도 턱없이 못 미치는 급여가 버젓이 명시된 근로계약서를 쓰고 중노동을 하는 셈이다. 비닐하우스 기숙사비 20만원과 의무가입인 건강보험료 약 13만원은 어김없이 공제된다. 여기에 한 달 생활비와 용돈 50만원 안팎을 뺀 나머지를 고국의 가족에게 보낸다. 재입국한 지 한 달이 채 안 된 그는 아직 근로계약서를 보지도 못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주 40시간(최대 52시간까지 허용) 노동을 명시했지만, 농업노동자는 일의 특성상 근로·휴게 시간과 휴일에 관한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 예외 근로자로 인정한다.
농장 일에 아무리 능숙해져도 “하드 워크”(hard work·힘든 일)인 건 변함이 없다. 지번은 “처음 왔을 때는 너무나 힘들었다. 일을 아무리 잘해도 더 시키고 더 시키고…”라고 했다. “××새끼, ××놈 같은 말을 많이 들었고, (고용주가) 때릴 때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사장님은 내가 일할 때는 별문제가 없다가도 일하지 않을 땐 ‘페이스 체인지’(face change·얼굴이 바뀐다)”라고 했다. 몇 년 전에는 오토바이에 치이는 사고를 당해 일은커녕 밥을 지어 먹기도 힘들었는데 “(고용주는) 하나도 도와주지 않았다”며 “노 휴머니티”(인간미가 없다)라고 했다. 일과 생활이 너무 힘들어 일터를 바꿀 생각에 고용주에게 사업장 변경을 신청했지만 “사장님은 말이 나빠지거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무시)”고도 했다. 그도 대다수 농장노동자처럼 허리가 아프다. 2018년에는 너무 힘들어 한방병원에서 한 달에 서너 차례씩 한동안 침을 맞았는데, 1회 시술에 5만~6만원을 포함해 모두 200만원가량을 병원비로 썼다고 했다.
실제로 농업 종사자 대다수가 근골격계 질환을 몸에 달고 산다. 지금은 점점 더 많은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그 몫을 떠안고 있을 뿐이다. 2021년 12월, 캄보디아 출신의 여성 이주노동자 앙헹(49)은 포천 농장에서 9년이나 일한 대가로 무릎관절이 파열됐다. 체류기한 만료를 앞두고 산업재해를 신청하자 농장주는 폭언을 퍼붓고 허위서류를 만들어 산재 신청을 취소해버렸다. 2022년 1월 앙헹은 출국하면서 포천이주노동자센터에 산재 신청 절차를 다시 위임했고, 김달성 목사는 권동희 노무사의 무료 봉사 지원을 받아 2022년 3월 결국 산재 인정을 받아냈다. 5인 이상 고용 사업장을 운영하던 고용주는 밀린 산재 보험료 800여만원을 일시불로 납부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앙헹은 한국에서 산재 보상 치료를 받을 수 있는데, 정신적 트라우마와 두려움 때문에 입국을 꺼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번은 한국에서 다섯 차례나 겨울을 지내봤지만, 아열대 국가 출신의 그에게 여전히 추위는 익숙하지 않다. 대다수 이주노동자는 온열기와 전기장판에 의지해 한겨울을 버틴다. 잘 때 춥지 않으냐는 물음에, 지번은 “옷 입고 이불 덮고 자면 참을 만하다”고 했다. 밤 9시까지는 숙소로 돌아가야 한다는 그를 숙소 근처까지 자동차로 데려다줬다. 컴컴한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이 쓸쓸해 보였다.
김달성 목사는 “현행 고용허가제는 정부가 독점적으로 불법고용을 알선하는 인력사무소 구실을 합법화한 제도”라고 지적했다. 특히 사업장 변경(이동) 허용권을 사실상 전적으로 고용주가 행사하도록 한 것은 대표적인 독소조항이다. “심각한 인권침해가 있어도 이주노동자는 체류 연장과 재입국이 안 될까봐 참고, 사업주들은 문제점을 개선할 생각을 안 한다”는 것이다. 김 목사는 “이런 현실은 2021년에 한국도 비준한 국제노동기구(ILO)의 ‘강제노동 금지’ 규약을 무력화하는 것”이라며 “(이주노동자가) 합법적으로 지내면 노예, 자유민이 되려면 불법”이 되는 게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 불허는 ‘이동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헌법소원까지 갔으나, 헌법재판소는 2010년에 이어 2021년에도 재판관 7 대 2로 ‘합헌’ 결정을 냈다. 2021년 12월23일, 헌재의 합헌 결정문의 한 대목은 이렇다. “이주노동자가 자유롭게 사업장 변경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한다면, 사용자로서는 인력의 안정적 확보와 원활한 사업장 운영에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주노동자의 효율적 관리 차원에서도 사업장의 잦은 변경을 억제하고 (…) 장기 근무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
매년 12월18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이주민의 날’이다. 한국은 전체 인구 5145만 명의 4.3%가 외국인으로 ‘다문화사회’에 바짝 다가섰다. 법무부의 최신 집계를 보면 2020년 10월 기준 국내 체류 외국인은 219만9460명. 이 중 재외동포가 49만9402명(22.7%)으로 가장 많고, 비전문취업(E-9) 비자를 받아 입국한 외국인노동자가 24만5496명(11.2%)으로 2위다.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받을 디딘 그들에게 한국은 어떤 나라일까.
포천=글·사진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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