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을 맞은 애인과 함께 카타르월드컵 H조 조별리그, 가나와 한국의 경기를 보기로 했다. 장소는 우리 집 부엌이다.
축구 경기와 함께 즐길 야식으로 김치전을 준비한다. 젓갈 없이 채소로만 만든 배추김치를 썰어서 소금과 고춧가루를 한 숟갈씩 넣은 밀가루 반죽에 섞었다. 매운맛을 좋아해서 청양고추도 두 개 다져 넣는다. 바삭한 부침개를 먹고 싶다면 반죽을 대충 저어야 한다. 너무 꼼꼼하게 치대면 글루텐이 생겨 찐득해진다. 김치를 잘게 썰어 넣는 것도 골고루 바삭하게 구워지는 데 도움이 된다. 쫀득한 김치전도 맛있지만 월드컵을 보며 먹으려니 기름지더라도 바삭하게 만들어야 할 것만 같다. 치킨 자리를 대신한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축구 경기는 치킨과 함께’라는 견고한 공식이 내게도 흔적처럼 남아 있다.
팬이 달구어지는 동안 애인은 식탁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중계방송을 켰다. 가스레인지 앞에서 그를 등지고 선 채 뜨거워진 팬 위에 식용유를 두른다. 반죽이 살짝 잠길 정도로 넉넉히 두른 기름을 데운다. 차가운 반죽을 한 국자 떠서 기름 위에 올리자 스피커로 전해지는 함성과 함께 김치전이 지글지글 튀겨진다. 김치와 밀가루가 바삭하게 익어가는 냄새를 맡으며 냉장고에서 차가운 캔맥주를 꺼냈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으로 치킨을 꼽는 남자가 동물을 먹지 않는 여자를 만나 치킨 없는 응원을 시작한다.
한국 경기가 있는 날이면 동네 치킨집마다 주문이 쏟아진다. 모두가 치킨을 먹는다. 모두 먹는 게 아닌데, 모두가 먹는 것처럼 포장된다. 월드컵 시즌마다 치킨 업계는 특수를 누린다. 모두가 좋아하는 음식, 웬만해선 실패하지 않는, 맛없을 수 없는 메뉴라는 굳건한 믿음이 모여 치킨은 안전하고 편리한 선택이 됐다. 세뇌에 가까운 육식 마케팅으로 획일화된 욕망을 읽는다. 공통성은 고유함을 지우며 확대된다.
종종 치킨에서 죽은 닭을 보는 사람은 나뿐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 어떤 튀김옷을 입히고 온갖 소스를 발라도 국내에서만 매월 1억 마리에 가까운 닭이 피 흘리며 죽는다는 사실은 입맛과 즐거움을 반감한다. 닭은 지구상의 모든 새를 합친 것보다 많이 태어나고 많이 죽는다. 공장에서 길러진 닭의 뼈로 지구가 뒤덮인다. 치킨은 ‘인류세’를 나타내는 지표 화석이 될 것이다. 여섯 번째 대멸종으로 향하는 인류에게 치킨은 더 이상 잔치에 어울리는 음식이 아니다.
카타르월드컵은 11월에도 섭씨 30도를 넘는 중동의 더운 날씨를 고려해 최초로 겨울에 열렸다. 월드컵은 여름에 열린다는 공식을 깨고 상황에 맞는 적절한 선택을 했다. 너무 많은 닭을 먹는 시대에 ‘응원할 땐 치킨’이라는 공식도 깨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다 부쳐진 매콤짭짤한 김치전을 둥그런 나무접시에 담아 모니터 앞으로 가져간다. 누군가 내 요리를 먹는 첫 순간은 언제나 조금 긴장된다.
“혹시 맛없다면, 채식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내가 요리를 못한 거야.”
변명인지 강박인지 알 수 없는 말을 덧붙이면 애인은 칭찬으로 나를 안심시킨다.
“먹어본 부침개 중 제일 맛있어. 팔아도 되겠다.”
치킨 없이도 경기는 즐겁고 동점골은 짜릿했다. 대한민국은 가나를 상대로 3 대 2 패배를 겪었지만 포르투갈을 꺾으며 극적으로 16강에 진출했다. 죽은 동물을 제물처럼 올려두지 않은 새벽이었다.
글·그림 초식마녀
*살리는 밥상: 비건 유튜버 초식마녀가 ‘남을 살리는 밥상으로 나를 살리는 이야기’를 그림과 함께 4주마다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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